"지구가 자전하는 속도는 시속 1,300km라고 한다. 그런데 그 안에 살고 있는 우리는 전혀 그 속도를 느끼지 못한다. 우리의 성장도 지구의 자전과 같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자신과 비교해 보면 매이 조금씩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있다." -마지막 186P-
나와 딱 10년 차 작가의 삶에 책을 읽는 내내 공감 버튼을 수없이 누르고 있었다. 페미니즘과 가부장제에 반기를 든 부부의 라이프 스타일이라는 문구에 꽤나 센 사람들이겠구나 싶은 생각을 하며 한 문장 한 문장 읽어 내려가지만 어딜 봐도 센 사람들 같지 않아서 나의 예감이 틀려서 서운해해야 될지 다행이다 해야 될지 갈피를 못 잡았지만 점점 이야기가 중반으로 갈수록 왜 페미니즘이라고 하는지 가부장제에 반기를 든다는 표현을 썼는지 이해하는 마음이 커져갔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은 내게 큰 기대를 했다. 장녀여서, 말 잘 듣는 딸이어서 부모님은 언제나 내게 기대라는 이름의 부담을 주었다. 그리고 나는 언제나 그 부담스러운 상황을 큰 반항 없이 받아들였다. 부모님의 말씀처럼 그것이 당연하다 여겼다."-31p
작가는 딸 둘의 장녀이다. 지금은 사람들의 생각이 많이 변했다 느끼지만 내가 태어났던 80년대와 별다르게 차이가 없는 90년대생 아들을 낳아야 제구실할 수 있다 할 정도로 남아선호 사상이 심했고 남녀 비율이 차이가 많이 나던 시절에 딸 둘의 장녀로 태어났다는 건 어른들이 말하는 살림밑천이 될 확률이 희박했다 다행히 작가의 부모님은 그 정도의 생각을 가지신 분들은 아니었지만 깊숙이 내재되어 있는 여자로서 혹은 여자이기 때문에 해야 되는 것들에 대한 기대는 여타 다른 부모님과는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한 환경은 작가의 삶 구석구석 전반적으로 많은 영향을 미쳤고 그것은 사회에 나가서도 순간순간 발목을 잡는 듯 느껴졌다. 첫 직장에서의 말도 안 되는 대표의 폭언에 자신의 잘못인 것 같다고 생각하는 부분에서 나도 감정이입이 되어 소리치고 싶을 정도였으니깐 말이다. " 왜 그런 말을 듣고 있어? 확 질러버리라고 " 말이다.
"아란 선생님, 다음 주에 더 큰 지진이 올지도 모른다는데, 위험하니깐 우리 집에서 자고 가소." -45p
지금이니깐 나도 같이 쌍욕을 하고 열 받고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이 작가에게 들었지만. 나의 20대 사회생활을 보면 나도 작가와 같은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언어성폭력 , 현재에 들어서면서 많은 이슈가 되고 그게 잘못되었다는 걸 교육하고 인지시키면서 그나마 이 정도였지 작가와 같이 나 역시 회사를 다니면 수많은 언어성폭력을 당했었다. 더 웃긴 건 그게 언어성폭력인지를 나조차도 몰랐다는 것이고 그 말들에 민망하긴 하지만 한마디 못하고 그저 웃기만 했다는 것이다. 작가도 해야 할 말은 담아두고 괜스레 분위기 이상해질까 봐 애매한 대답만 했다.
페미니즘은 흔히들 여성의 전유물로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근데 이 책에서는 여성이거나 남성이거나 보다 작기의 역량에 맞게 그 대가를 받고 대우를 받아야 하며 양성평등에 대한 책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나 역시 페미니스트라 말하기엔 부족하지만 약간의 페미니즘을 의식하는 한 사람이다. 여자의 권리신장이 아니라 남. 녀로 나누어지는 편 가르기가 아니라 성별 상관없이 직업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의 합당한 책임과 그리고 권리가 주어져야 하며 차별받지 아니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페미니즘, 조금은 거추장스럽고, 부담스러운 것, 사실 페미니즘에 대해 인지한 시점에서는 이 단어가 내 세상을 이렇게 크게 변화시키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페미니즘은 나의 삶을 물들였고 내가 나답게 살 수 있는 길을 내주었다. 아주 서서히, 하지만 단단하게"-50p
나는 딸이 셋이다. 아이를 셋을 낳을 줄 몰랐고 더군다나 딸만 셋을 낳을 줄 몰랐다. 아이들과 함께 다니다 보면 5명 중 2명 정도는 꼭 물어보는 말이 있다. "아들 낳으려다 셋을 낳았나?" 주로 어른들께서 물어보는 것이 대부분이고 그분들은 그렇게 물어보고 난 뒤에 병 주고 약 주듯이 다른 말씀을 하신다. " 딸이 최고다 딸이 최고야 아들 다 소용없다" 어느 장단에 춤을 출 것인지는 내가 선택하게 된다. 난 후자의 말보다 전자의 말에 춤을 춘다.
아들이든 딸이든 그냥 나에겐 자식이고 그 자식이 딸이라서 혹은 아들이라서 좋아하는 것이 아니기에 차라리 첫 번째 질문에 열과 성을 다해서 대답을 하고 있다.
"나는 결혼식에서 내가 '꽃처럼' 보이지 않기를 바랐다. 이따금 아버지에게서 남편으로 넘겨지는 신부의 모습이 종종 꽃처럼 보였다. 나는 결혼ㅅㄱ에서도'나'를 잃고 싶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사람을 선택한 것은 나 자신이다. 그저 예쁘기만 한 '꽃'이 아닌 신랑과 동등한 존재로, 결혼식뿐만 아니라 그 이후의 삶도 나란히 걸어갈 것임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결혼식 때 신랑과 동시 입장하기로 했다." 97p
이 기나긴 한 문장에서 어쩌면 "페미니즘" 이란 걸 다 표현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누군가의 딸, 아들이고 사회의 소속된 한 사람으로서는 부정할 수 없지만 그 안에서 나다움을 잃지 않는 것 그리고 "나"로서 스스로를 표현하고 또 대우받는 것 그게 우리가 원하는 "페미니즘"의 지초가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결혼 역시 남들 다하는 그런 생애 첫 결혼식이었지만 작가와 같은 생각을 하지는 못했다. 있는 그대로 말한다면 나는 "꽃" 이 되고 싶었고 그래야 한다고 믿었다. 남들이 다 그렇게 결혼식을 했으니깐 다르게 한다는 것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렇다고 후회되는 건 아니지만 내 딸들이 결혼을 선택한다면 기꺼이 "꽃"이 아닌 "나"로서 결혼할 수 있도록 독려해주고 싶다.
작가의 취업준비와 그리고 불합격, 불합격 이후 자신이 진짜 원하는 걸 찾아가는 과정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J ' 는 그냥 남편이라기보다 협력자로서의 역할에 정석을 보여주었다. 남편을 만나게 된 것 역시 "페미니즘"이라는 공통의 관심사였지만 단지 여성 해당 여성연대가 아닌 작가를 한 사람으로서 봐주고 가부장적 모습보다는 조언자와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는 사람이었다. 작가 역시 그런 긍정적인 에너지에 힘입어 다시금 다른 이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할 수 있게 해 준 것 역시 'J ' 였다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고 싶은걸 한 가지로 정의하기엔 어렵지만 그 의미는 한 가지로 생각할 수 있었다. 어떤 사람이라도 자신의 삶에서 "자신"을 뺀 상태로 삶이라 말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스스로 자신의 자리를 만들고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목 "우리가 알아서 잘 살겠습니다"는 어른이 보기에 건방지고 "지깟것들이 알긴 뭘 알겠어" 라기보다는 "남" 이하는 대로 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갈 줄 아는 세대라는 깊은 뜻을 담을 수 있다.
어른들의 지혜도 분명히 필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필요한 건 경험이고 이 경험은 타인의 경험이 아니라 나의 경험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언은 그저 조언에서 끝나는 것이고 결정은 스스로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MZ세대의 대한 안 좋은 인식은 덜어 낼 수 있었고 나의 지난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고 또 앞으로 살아갈 나의 날들과 나의 아이들의 시간을 그려 볼 수 있었던 시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