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딸을 돌볼 때였다. 아침에 두 아이를 등원시키고 셋째까지 밥을 다 먹이고 나니 너무 배가 고파 남아있는 순댓국에 밥통에 있던 마지막 밥을 잔뜩 말아서 먹으려고 앉는 순간 아이가 그릇을 엎어버렸다. 순간 화가 난 나는 이제 갓 돌쟁이 된 아이에게 모든 화를 퍼부었다. 더 이상 밥은 없었고 너무 배고픈 내가 밥 한 끼 먹지 못하는 걸 아이 탓으로 돌려버렸다. 그 자리에 “나”는 없었고 “엄마”만 있어야 했다.
◆“누구나 가슴속에 등불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두운 방에서 물건을 찾으려는데 잘 보이지 않습니다. 이쯤 어딘가에 있을 것 같아 더듬어보지만 잡히지 않습니다. 결국 핸드폰 손전등을 켜고 물건을 찾습니다.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218p “
나보다 다른 이름으로 살아온 시간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특별한 일이 벌어지지 않는 이상 다른 이름을 떼어 낼 수 도 없다. 이 책은 그 다른 이름들의 삶 속에서 나를 찾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내가 온전하고 스스로를 살펴줘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작가의 말에 무척이나 공감이 된다. 아이에게 내가 아주 필요할 때는 이 모든 걸 몰랐다. 아이가 태어나면 자동으로 모성본능이 생기고 엄마의 역할이 담긴 메모리카드가 내 머릿속에 삽입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모든 것들은 당연하다는 말로 내 시간을 파고들었다. 책을 읽는 내내 지난날들이 떠올랐고 그때 이 책을 만났다면 어떻게 달라졌을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상인데 저녁상을 차리다가 결국 눈물이 났습니다. ‘나도 누가 차려주는 밥상 좀 받아보고 싶다.’ 15p “
하루에도 몇 번씩 하는 생각, 주부라면 엄마라면 아내라면 누구나 다 생각해봤을 이야기였다. 그렇게 작가는 자신의 정체성을 알기 위해 펜과 노트를 들었고, 자신을 위해서 질문을 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3년이 넘게 일기를 쓰게 되었고 그 글들은 자신을 돌봐주고 알아봐 주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나를 보살피기 위해 나를 알기 위해 질문을 한 적이 있었나 곰곰이 생각해 보지만 딱히 그런 기억들이 없었다. 물건을 사기 위해 필요한 것인가 아닌가 정도의 생각이었지 ‘나는 나와 친한 사이인가?’ ‘진짜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 등의 질문을 진심으로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책에서는 스스로에게 수많은 질문을 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분명 다른 사람의 글을 읽는 것인데 질문은 나에게 하고 있다. 결코 단순히 읽어 내려가고 그 느낌을 받는 것이 아니라 나를 이해하기 시작하는 그 시작점을 마련한다.
뜬구름 잡는 듯한 질문이 시작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하나씩 알게 되는 질문까지 그리고 자신이 분명 멋진 사람이라는 믿음이 생기게 하는 질문까지 그냥 생각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생각의 틈을 벌려 그 안에 글로 남기는 걸 알려준다. 흡사 초등학생 독후감같이 유치하지만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고 그 감정이 맞지 않다면 왜 그런지 또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는지까지 누구의 도움이 아니라 스스로 할 수이었다.
◆“나의 언어가 많아지면 원하는 삶을 살고 싶어 집니다. 당신은 어떤 인생을 꿈꾸나요? 스스로 적으며 나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165p”
지금까지 뭘 하긴 했지만 그것이 구체화되지 않거나 불확실한 거나 연기처럼 사라진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어졌다. 나 역시 그런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고 지금도 그런 삶을 살고 있다. '이렇게 살아가세요 저렇게 살아가세요'가 아니라 이렇게 하고 싶으시다면 노트 와펜을 들고 글로 써보세요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그래서 한 글자라도 내 감정이 써진다면 그게 나를 위한 첫 시작이 될 것 같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