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 비우는 타이밍

언젠가는

by 다정한온기

연필 덕후, 텀블러 덕후, 스티커 덕후,

난 그런 거랑은 거리가 멀다. 심플 라이프라서? 미니멀 라이프라서? 이런 것과는 전혀 다른

난 끈기와 인내심이 없어서다. 고등학교 때 미술과 친구 중에 친분이 있지는 않지만 아이들 사이에서 특이하게 생각되는 친구가 있었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고, 그 당시에는 굿즈라는 말이 없었지만 애니메이션 컬렉션들을 모으는 친구였다. 겉모습도 평범하지는 않았다. 그 친구는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을 위해서 일본에 자주 갔다 온다고 한다 거기서 사온 캐릭터들,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갖가지 굿즈들을 반 아이들한테 자랑한다고 했다. 난 그 얘기를 듣고 나와는 다른 삶을 사는 그 아이가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 당시 해외여행이 지금처럼 쉽게 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내 기준으로 미술을 전공하며 쏟아붓는 돈들도 대단하다 생각했는데, 공부가 아닌 애니메이션 때문에 그렇게 해외를 수시로 다닌다는 게 나에겐 넘사벽 삶이었으니 내가 그런 생각이 들만도 하다. 그 친구뿐만이 아니라 그때 한참 아이들이 많이 썼던 메이드 재팬 수성펜도 나오는 색상별로 다 갖추고 있는 친구들도 있었고 그 수십 개를 들고 다니며 다이어리를 아주 열심히 꼼꼼히 잘 쓰는 친구들도 있었다.


나도 한번 해보고 싶어 시내에 팬시점 아트박스에서 나름 예뻐 보이는 다이어리를 사서 비싼 일본 펜은 아니었지만 (그 당신 수성펜 하나의 가격이 3000원이었으니 고등학생에게는 고가의 펜이었다) 비슷한 국내산 펜으로 흔히 요즘 언어로 말한다면 ' 다꾸' 를 시작한 것이다. 뭐 결과는 뻔히 보이지 않나?

1월부터 12월까지 날짜 기입 후 내 생일 및 가족 생일을 적어놓고 끝!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지금도 난 마찬가지이다. 어떠한 한 가지에 대한 집중도가 높지 않고, 끝까지 완료하는 기능 없이 태어난 것 같다. 그나마 결혼을 하고 책임감이 생기면서 아이들과 가정에 대한 집중도는 있지만 , 내가 사용하는 가구나 , 물건, 생필품에 대한 의리가 의리의리 하지는 않는 것 같다.

이렇게 길게 좋은 말로 포장하니 그럴듯한 것 같은데 한마디로


"물건을 끝까지 애정 있게 못쓴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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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에게 솔직한 편이라, 내가 가진 단점을 알고 있다. 100% 인정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는 인지하고 있는 편, 그래서 오히려 물건을 살 때 좀 신중한 편이고 반품을 할 수 있는 사이트를 자주 이용했다.



그래도 내가 한 가지 물건을 사서 오래 쓴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 그리고 내 속에 내재되어 있는 생각

'저렴하니깐 좀 쓰다 버려도 아깝지 않은 것 같네'

'이 정도 쓴 거면 돈 값어치 한 거니깐 버려도 될 것 같은데'

그러면서 사들이고 또 쉽게 버리기도 했다. 덕후들의 특징을 보면 물건에 대한 애착이 많다

특정 물건에 대해 사들이지만 결코 그게 버림받는 일은 드물다

일반 사람들이 보기엔 어떻게 저렇게 쌓아놓고 살 수 있지 라고 생각하지만 그 사람들은 자신의 방법이 다 있다


난 덕후도 아니고 내 방식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대부분의 미니멀 라이프를 성공한 사람들이 덕후들과 비슷한 면이 있다. 물건을 사들이는 기준이 있고, 그 물건의 쓰임새는 정확하다. 그리고 버려지는 일이 거의 없다.

이유를 생각해본다면 소유욕이 미니멀 라이프를 하지 않는 사람들보다 적다는 것이다.


나 역시 같은 쓰임을 하고 있지만 여러 개의 물건을 가지고 있던 적이 있다. 그게 소유욕이다. 쓰지 않으면서 가지고 있는 것 , 남 주기는 아깝고 내가 쓰는 건 한정되어 있고, 내가 살 때 쓴 돈을 생각하면 아까워서

쓰임새가 없어도 가지고는 었어야 하는 거다 내 집에 내 서랍에 공간을 내어주면서 왜 가지고 있어야 할까?

먼지가 쌓여 청소해주지도 않으면서 왜 가지고 있어야 할까? 난 끊임없이 생각했다. 내가 물건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이유를 찾았지만 마지막에 나온 결론은



언젠간 쓸 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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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라는 게 정해진 것도 아니고, 기약도 없고, 어쩌면 그 물건이 있었는지 기억도 못하는 날이 더 많을 거다

사실 산 기억조차 못하는 일도 허다하다. 결심은 지금부터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 중에서 언젠가 쓸 거라는 물건을 비우는 결심 말이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 중에 같지만 안 쓰고 있는 물건을 골라보자

그리고 그걸 한 곳에 모아둔 뒤 물건과 아이컨텍을 해본다. 이미 구매한 뒤 1년이 지나도록 안 쓴 것들도 있을 것이고 얼마 전에 샀지만 이미 비슷한 걸 쓰고 있는 중일 수도 있다. 내가 산건 아니지만 비우기 아까워 상자째 넣어둔 것도 있을 것이고, 자동차의 스페어타이어처럼 쓰던 거 고장 나면 꺼내 쓰려고 보관하고 있는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이유를 찾다 보면 대부분 결국

지금! 안 쓰는 것들이다



물건은 계속 변해간다 그리고 기능도 좋아진다 지금 쓰기 좋다고 같은걸 왕창 사놨다가 안 쓰고 버리거나.

아님 서랍 한편 자리만 차지하고 정작 사용하고자 할 때는 집에 있는 것보다 신상에 눈이 돌아간다면

그냥 쓸 것만 사고 고장 나거나 필요하게 되면 합리적 소비를 통해서 구매하는 게 훨씬 이득이다.

내 경험상 대부분 그렇게 산 물건들을 끝까지 쓴 적이 없다. 특히 홈쇼핑에서 산 대량의 청소용품, 그리고 화장품, 아이크림 등은 많다는 이유로 주변에 나눠주거나, 다 사용하지 못한 채 새로운 것들 또 사게 된다. 조금 살림을 하는 사람이라면 다운된 가격으로 중고사이트에 판매를 하기도 하지만 결국엔 내가 소비하고 내가 손해 보는 것이다.


그러니 물건을 비울 타이밍은 지금이다!




내가 생각하는 안단테 같이 느린 미니멀 라이프천천히 느리지만 조금은 확실하게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자로 잰 듯 정확하게 여기서부터 정리, 그리고 이곳은 꼭 몇 번째로 정리 그런 것이 아니라

내가 가장 정리하고 싶었던 곳을 한 곳씩 , 한 공간씩 비워지고 정돈되는 과정을 즐기며 하는 것이다.

조금 느려도 상관없다. 적어도 몇년에서부터 10년 넘게 함께 했던 살림살이들인데 그걸 단숨에 한다면 그건

비우는게 아니고 버리는 거다

이런 과정들이 쌓이면서 비우는 방법도 내가 편한 방법으로 바뀌고, 채우는 것 역시 내가 원하는 것만 채울 수 있다. 다만 그 과정을 기록해야 한다. 서랍 정리하며 내가 무엇을 비웠는지 무엇을 채웠는지 그 기록은 글을 쓸 수도 있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사진을 찍어둔다 그리고 폴더를 만들어 따로 보관한다. 그러고 나서 한참 지나서 사진들을 쭉 보게 된다면 내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비우고, 많은 것들을 정리할 수 있었는지 뿌듯해할 것이다.


이글을 보는 사람들이 미니멀 라이프를 하고 싶은데 시도조차 어려워 자신과는 다른 거라 생각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앞뒤 베란다 빈 공간 없이 쓰고 아직도 많은 물건에 허덕이고 있는 글쓴이도 할 수 있는데

라며 위로받기를 바란다. 나 역시 지금도 한 곳씩 , 한 공간씩 정리하고 비우고 있으니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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