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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끝없는대화 Jul 20. 2021

아빠의 재혼

딸이 보기에 어떻냐고요? 신기합니다

"딸, 아빠가 할 말이 있는데, 잠깐 카페 가서 얘기하자."


몇 달 전, 아빠와 식사하러 만난 나는 영문을 모르고 커피를 시켜서 아빠의 맞은편에 앉았다.


"너도 많이 힘들었겠지만 아빠도 작년에 좀 힘들었어. 마음이 좀 많이 그러던 시기였는데 아빠가 좋은 사람을 만나서 조만간 재혼하려고. 안정을 찾고 싶어. 다음 달에 아빠 집에 들어와서 분양받은 집 완공될 때까지 같이 살다가 이사 가려고 해... 어쩌고저쩌고..."


"아-"


잠시 당황했지만 놀라진 않았다. 약지에 끼워진 커플링을 봤었다. 나는 그런 쪽에서 굳이 묻는 편이 아니다. 어련히 때 되면 말해주겠거니, 먼저 아는 체하지 않는 것이 예의니까. 아빠는 구구절절 나에게 재혼의 경위와 당위성을 설명했다. 제 발 저린 도둑의 변명처럼 들렸다. 뭐가 미안하고 고마운지 잘 모르겠다. 나와는 별개의 일이 아닌가. 동생이 떠나고 엄마가 한 번 애인을 소개해 준 적이 있었는데 헤어지고, 몇 달이 지나서 이번에는 아빠가 재혼한다고 선언한 것이다.


 아빠가 이혼한 지 근 10년이 되었으니 재혼하는 것에 반대할 이유도 없었고 전혀 이상할 것도 아니었다. 이상한 점은, 나에게 허락과 이해를 구하는 자세였다.

 아빠가 다른 사람 만나도 되겠냐, 아빠가 재혼을 한다고 해도 우리 사이는 변치 않는 부모와 자식이니 너에게 무관심하거나 소원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해해줘서 고맙고, 미안하다, 사랑한다...

 

  참 신기한 일이다. 아빠에게 소개받은 아주머니는 참새같이 작고 수더분한 사람이었고, 그냥 평범한 엄마뻘 아주머니였다. 교양이 없지도, 딱히 싸하지도 않은 괜찮은 사람이었다. 내 또래의 아들만 하나 있는 이혼한 분이었는데 딸이 없어서 나를 예뻐한다. 이상하게 어른들은 다 나를 예뻐하신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면 마냥 아기 같고 귀엽다는데, 정말 그런가 보다.  두 분은 존댓말을 주로 쓰는데 생경한 광경이다. 아빠는 엄마와의 결혼생활에서 존댓말을 쓰지 않았다.


 그냥, 아빠가 누군가와 사랑에 빠져서 한 가정을 꾸리기로 결정을 내리고 재혼을 한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산부인과에 갔을 때와 같은 기분을 느꼈다. 아, 아무리 출산율이 낮다고 해도 누군가는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하기 위해 검진을 받으러 오는구나... 아무리 결혼을 안 한다고 해도 누군가는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하는구나...

 연애도 안 하고 결혼에도 회의적인 딸이 보는 아빠의 재혼은 굉장히 신기하고 낯설었다.


 저번 주 토요일, 아빠와 동생 납골당에 다녀왔다. 납골당에 가서 동생의 유골함을 보는 아빠의 표정과 엄마의 표정은 비슷하지만 다르다.

 엄마의 표정은 미안함, 죄스러움, 안타까움, 아픈 아기를 보는 눈빛, 눈물

 아빠의 표정은 패배감, 탈력감, 후회, 고통

 아빠는 재혼에서 어떤 것을 찾으려는 것일까, 무엇이 달라지길 기대하는 것일까.


 부모님의 이혼은 순조롭지 않았다. 이혼 과정에서 싸움은 주로 집 안에서 일어났고, 얼마 되지 않는 재산분할로 언성을 높이고 싸웠다. 말싸움이 격해져 아빠의 몸에 할퀴거나 꼬집은 상처가 나기도 했다. 소란을 들은 이웃이 경찰에 신고하여 두세 번 찾아왔다. 나는 한참 어린 동생을 데리고 방에 들어가 달래고, 가끔 나도 울었으며 차라리 얼른 이혼 과정이 종결되기를 빌었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바뀐 것은 아주 조금의 경제적 어려움과, 삶의 태도, 가치관이었다. 다행히도 엄마가 살림을 잘 꾸리셨는지 나는 어찌어찌 고3 내내 미술학원도 다니고, 대학도 갔으며 동생도 친구들과 비슷한 용돈을 받으며 생활했다. 돈에 조금 예민해지기는 했으나 쪼들린 적은 없다.


 달라진 삶의 태도는, 엄마가 이혼 후 가장이 되면서 나를 동생의 보조 양육자로서 대하기 시작하고, 뭐든 혼자 해결하기를 바랐기 때문에 기댈 곳이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혼자 모든 것을 결정하고, 타인에게 바라는 것이 없어졌다. 많이 불안해했고, 기댈 곳을 찾고 싶었다. 꼴에 또 오만해서 남한테 도움받는 건 싫어했다.


 사랑에 대한 가치관은, 모든 사랑은 식고 모든 연애는 언젠가 끝나며 모든 결혼은 불완전하다고 확립되었다. 연애를 하면서도 언젠가는 끝날 것을 염두에 두고 만났다. 영원히 함께 하자는 말을 비웃었으며 마음을 완전히 주는 것을 경계했다. 내 연애는 매번 격렬하지도, 상대방이나 나를 바꾸려 애쓰지도 않았고 싸움도 없었으며 뜨뜻미지근하게 이어지다가 끝났다.


 그렇게 힘들게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또 재혼을 하는구나... 남의 가정사에 왈가불가할 입장은 아니지만 나로서는 애매한 축하를 보낼 수밖에 없다. 아빠가 꼬장꼬장한 성격인데 두 분이 잘 지내며 사실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좋은 게 좋은 거니까. 두 번째 결혼생활은 행복하시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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