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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끝없는대화 Aug 11. 2021

혼자 여행, 외롭지 않나요?

20대 여자 혼자서 4박 5일 제주도 다녀왔습니다

 퇴사 선언한 당일 오후, 제주도행 티켓을 끊었다. 가슴에 품은 티켓은 한 달간의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퇴사 전의 한 달은 참 외로웠다. 시간도 더럽게 안 가고, 업무 얘기에 끼기도 뭐하다. 전달받는 업무량도 확연히 줄어들고, 컨펌도 성의가 없어진다. 더 이상 이 회사의 미래에 내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기정사실이 되었기 때문이다. 떠날 사람이니 자연스러운 것이었지만 참 외롭고 지루한 시간이었다.


 나는 혼자가 편하다. 혼밥은 그리 잘하지 못하지만 혼자 잘 돌아다니는 사람이고, 집에서 혼자 잘 논다. 자취할 때 외롭다고 느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혼자 여행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이유를 생각해보니, 나는 목적 없이 절대 혼자서 외출을 안 한다. 목적이 없이 혼자 어딘가를 헤메는 나를 상상해본 적이 없다. 목적을 달성하면 즉시 집에 돌아온다. 목적이 빵 사기 같은 별 것 아닐 때도 많지만, 어찌 됐든 목적을 달성하면 즉시 집에 돌아온다. 설상가상으로 심각한 길치라서, 낯선 곳을 헤매는 것이 너무 싫다. 여행은 좋아하지만 길 찾기는 동행인에게 전권 위임하고 졸졸 쫓아간다.


 몇 달 전부터 혼자 여행에 흥미가 생겨서 주변인들에게 경험을 물었다. 추천하는 이도 있었고, 할 일이 없어서 너무 심심하다고 반대하는 이도 있었다. 일단 해봐야 자신에게 맞는지 안 맞는지 알 수 있다고 말해준 친구가 있었다. 기회가 생기자마자 바로 제주도로 갔다. 결론은 최고의 여행이었다. 할까 말까 할 때는 하라는 말이 하나 틀린 것이 없다.



1일 차

도두동-스타벅스(온리 제주 메뉴 먹으러 감) / 도두 해녀의 집 (전복물회. 꼬독꼬독)

용담동-(용연계곡, 동문시장)


2일 차-함덕해수욕장, 서우봉

다니쉬(감자빵- 휴무일 인스타 참고), 오드랑 베이커리(마늘빵)


3일 차-서귀포 칼 호텔(꽤 좋다), 매일올레시장


4일 차- 천지연폭포(절경), 용머리해안, 삼방사, 협재해수욕장(수영하기 좋음)



 이동수단은 주로 버스와 택시를 이용했다. 제주도 버스는 대부분 해안가를 따라 달린다. 수도권의 거미줄 같은 교통망과 달리 한정 없이 돌아간다는 뜻이다. 20-30분에 한 번씩 오는 경우도 많다. 바다 구경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고개만 돌리면 보이는 창밖의 바다구경이 너무 좋았는데 사람마다 지루할 수도 있겠다. 자차를 이용했으면 훨씬 많은 곳들을 구경할 수 있었겠지만, 휴식이 목적이었기에 그럴 생각도 없었다.


 혼자 여행의 장점은 

쉬고 싶으면 쉬고, 

가고 싶으면 가고, 

먹고 싶으면 먹고, 

먹기 싫으면 먹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버스에서 흥미로운 정류장 이름이 들리면 내려서 구경하고, 해수욕장이 보이면 지칠 때까지 수영하고, 맛집을 찾아봐야 한다는 의무감 없이 아무 데나 들어가서 먹었다. (1인 식당도 많다.) 포장해온 고등어회와 호캉스를 즐기고, 영화나 책을 보다가 12시에 곯아떨어졌고, 8시에 개운하게 일어나 지도 어플을 켜서 그날의 일정을 대강 정했다. 동행 없는 여행이 지루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러닝이랑 비슷했다. 단언컨대 국내여행 중 가장 좋았다. 퇴사 후 '자유 도취'에 빠져있어서 더 좋았을 수도 있다. 심심할 줄 알았는데 경치 구경하고, 책 읽고, 글 쓰느라 별 생각이 안 들었다.



 천성적으로 수동적인 나는 혼자 새로운 무언가를 해낼 때마다 자존감이 올라간다. 자기 결정권의 발견은 나에게 가장 두렵지만 짜릿한 것이다. 혼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 그땐 다시 여행을 떠나겠다. 여행을 떠난 그곳에서 모든 선택의 주체가 나라는 것을 깨달으면 다시 돌아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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