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이 글은 언니가 동생에게 하는 일방적인 대화와 자살 유가족의 애도 과정 및 우울증과 심리적 변화과정을 기록한 것입니다. 글의 중간에 당시 작성했던 일기가 삽입되어 있습니다. 시간의 순서에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또는 PTSD,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란 생명을 위협할 정도의 극심한 스트레스(정신적 외상)를 경험하고 나서 발생하는 심리적 반응입니다. ‘정신적 외상’이란 충격적이거나 두려운 사건을 당하거나 목격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외상들은 대부분 갑작스럽게 일어나며 경험하는 사람에게 심한 고통을 주고 일반적인 스트레스 대응 능력을 압도합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국가건강정보포털 의학정보, 국가건강정보포털)
-전 편에 이어서
동생은 작년 초여름 폐쇄병동에 한 달 동안 입원했고 나는 3번 정도 면회를 갔다. 종강을 하고 매일 면회를 가겠다고 다짐하고 학교가 있는 지방 자취방에서 짐을 싸서 본가로 올라갔으나 엄마는 나에게 책임이 있다며 매우 화가 나 있었고 한 집에서 살다가는 어느 날 나를 정말 죽일지도 모르겠어서 머무를 수 없었다. 가까운 외갓집에 잠시 머물렀으나 표현이 유할 뿐 이모들도 나에게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취방에 다시 돌아갔다. 외로운 시간이었다. 본가에 갈 수 없어 어떤 걱정도 행동으로 옮길 수 없었고 애써 괜찮을 거라 나를 속이며 동생에게 한 달 동안 연락하지 않았다. 안일하고도 안일한 생각이었다.
2019. 08. ** (사망 일주일 전)
내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은 들여다보지 않는 것이 좋다.
오늘 꿈을 꾸었다. 가까운지 먼지 모를 미래에서 ( )이의 소원대로 같이 우주에 다녀왔다. 우리가 다녀온 곳은 상대성 이론 때문에 시간이 아주 빨리 흘렀고 그 짧은 기간 동안 지구는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다녀오니 엄마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10살을 더 먹어있었다. 그렇게 다녀온 것이 두 번이었고 20년쯤의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엄마는 많은 일들을 했고 자신이 새로 배운 어떤 학문이 담긴 두꺼운 노트를 보여주었다. 엄마에게는 분노도 원망도 없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었다. 우주에 다녀오는 것은 많은 돈이 들었다. 그러나 엄마는 우리에게 아무런 원망을 하지 않았다. ( )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우주에 다녀왔지만 여전히 우울했다. 그 사실이 견디기 힘들었다.
"( )아, 우리가 정말 왔구나. 어때?"
"모르겠어. 내가 온 게 잘한 짓인지."
절망감이 들었다. 아무리 물을 부어도 식물이 자라지 않는 사막에 자신이 마셔야 할 유일한 물을 부어버린 기분이 들었다. 우주에 다녀오면 ( )의 우울증이 나을 줄 알았다. 그것을 위해 엄마와 자신은 많은 희생을 감수했고 20년의 시간이 흘러버렸다.
꿈에서 깨고 카톡을 확인하니 엄마에게 다섯 개의 톡이 와 있었다. 읽지는 않았다. 읽고 답장하는 것이 내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 내려놓았다 생각하지만 나는 아직도 감당하기 버겁고 상대방에게 상처만 주는 기분이 든다.
동생은 자신의 방에서 손목을 긋고 죽었다. 나는 동생의 장례식 직후 곧바로 신경정신과의 약물치료와 심리상담치료를 받았다. 부모님의 관심과 지원이 하나 남은 자식인 나에게 집중되었고 과거에 치료받은 경험이 있기에 다행히 바로 치료받을 수 있었고 중증 우울증과 불안증, 불면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진단이 나왔다.
세 달쯤은 위험한 상태였다. 현실감이 많이 떨어져 꿈을 꾸는 듯한 시간을 보냈고 웃음이 계속 비어져 나오는 조증 기간도 겪었다. 미각이 한동안 사라졌으며 고기를 반년 동안 마주 보지 못했고 수면제를 먹어도 자주 새벽에 깨서 창밖으로 해가 뜨는 것을 바라보았다. 난생처음 인지능력, 기억력, 집중력, 언어능력 등 전반적으로 현저한 뇌기능의 저하를 겪었다. 긴 글을 못 읽었고 타인의 말을 잘 알아듣기 어려웠다. 졸업작품전시회를 다 준비해놓고 막 학기를 휴학할 수는 없어서 학교에 힘겹게 다녔다. 사소한 정보나 약속, 매주 있는 수업시간, 세탁기를 돌리는 날, 가지고 나갈 소지품, 심지어 부모님 집주소와 비밀번호까지 적어놓은 메모가 플래너와 휴대폰 메모에 남아있다. 자기 통제를 심각하게 잃은 공포에 올해 1월은 폐쇄병동에 단기간 입원했다. 다음 글에 내가 입원한 병동과 동생이 입원한 병동의 생활, 규칙, 차이점을 설명할 것이다.
정말 엄마의 말처럼 동생의 죽음에 내 책임이 있었을까 의심했고, 잊어버릴까 두려워 강박적으로 매 순간 동생의 기억을 절박하게 더듬었다. 동생을 이해해야 한다는 강박적인 생각으로 누가 무엇이 그 애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왜 그랬는지 끊임없이 되짚었다. 너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하나도 몰랐던 것 같기도 했다. 가장 위험했던 문제는 죽으려는 의도가 아닌 어떤 마음으로 그랬는지 이해하려고 손목에 자해를 해보고, 한강 깊은 물속을 들여다보고, 14층 베란다 아래를 내려다보고, 진료했던 병원에 찾아가고, 밧줄을 헹거에 매달아 목을 묶어보고 여러 가지 행동들을 했던 것이다. 그때 나에게는 너무나도 중요한 일이었지만 절대로 정답을 알 수 없는 시험지를 끊임없이 푸는 것이었다. 내가 피부로 느낀 동생의 죽음은 '대화의 영원한 종결'이었다. 출제자에게 대답을 들을 수 없으니 어느 것 하나도 채점할 수 없이 막막한 시간이 흘렀다.
2019. 09. **
( )아, 자살한 사람들은 천국에도 못 간다고 해서 많이 걱정했는데, 상담 선생님이 어린아이들은 죄가 없어서 다 천국에 간대. 그래서 조금은 안심이 됐어.
언니는 아직도 조금은 거짓말 같아. 정말로. 일주일 동안 씹는 음식을 못 먹었는데, 오늘은 밥을 먹어보려고 해. 어제는 몸을 일으켜서 화장실에 가는 것도 힘들었는데, 오늘은 수업도 가고 상담도 받으러 갔어.
2019. 09. **
( )아, 언니 이제 밥 다 잘 먹어. 우주여행을 갔는지, 천국을 갔는지.. 모르겠지만 너는 너무 예쁘고 착하고 누구에게도 잘해주고 사랑받을 만한 아이여서 나쁜 곳에 갔을 거라고는 생각 들지 않아.
네 생일은 4월 29일인데, 탄생화가 동백나무더라. 활짝 만개했을 때 지지 않고 통째로 툭 땅에 떨어지는, 늦겨울에 흰 눈 위에 떨어지는... <중략>
아직 너를 ( )아,라고 입 밖으로 소리 내 말하지 못한다.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 것이 겁이 나서이다.
2019. 09. **
괜찮지 않아도, 시간은 흐르고 인생은 흘러간다. 네가 없다는 것에 문득문득 놀라고 내 시간은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 네가 없는데 세상은 그대로고 나는 내 일상에 억지로 탑승해 이끌려가고 있다. 버겁고 어리둥절하다. 여기가 어딘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손에 잡히는 게 없고 세상에 중요한 일은 하나도 없는 것 같이 느껴진다.
2019. 09. **
어제저녁, 너와 머릿속에서 대화를 했다. 사실, 네가 떠난 이후로 너와 끊임없이 대화했다. 네가 내 안에서 살아 숨 쉬고 있는 것 같았다. 아무튼 너에게, ( )아, 네가 없이 언니가 살아갈 수 있을까?라고 물었고, 너는, 언니는 혼자 살아가기에 최적화된 인간 같다고 내가 그랬잖아, 언니는 살아갈 힘이 있어. 그래서 믿고 그런 거야 라고 대답했다.
우리는 이런 대화를 살면서는 나눌 일이 절대 없었을 거다. 네가 떠나서야 나는 너에게 이 질문을 하게 되었고, 네가 떠나면서 남겨진 사람들을 걱정하지는 않았을, 못했을 것 같고 내 자기 위로 같지만 그 대화가 나에게 힘을 준다. 그래서 오랜만에 빨래도 돌렸고 기운을 차렸다.
아직도 가슴은 미어진다. 가슴이 미어진다, 라는 말은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그것 말고는 마땅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는다. 정말로, 가슴이 미어진다. 칼을 심장에 꽂고 다니는 기분이다. 네가 너무 보고 싶다.
2019. 09. **
유서에 적은 언니 좀 예뻐해 줘라는 부탁 그거 하나 때문에 나는 옛날에 바라 왔던 모든 걸 누리고 있다. 용돈도 많이 받고 뭘 해도 다들 아무도 뭐라 안 하고, 부모님은 나를 너무 신경 쓰고 잘해줘. 네가 이렇게 될지 상상이나 해봤을진 모르겠지만... 다 옛날엔 너무나도 바랬던 건데, 이렇게 혼자 받으니 기쁘지가 않다. 자꾸 쓸 데도 없는데 용돈을 가방에 억지로 넣어주고 먹지도 않는 음식도 챙겨준다. 돈도 음식도 줄어들지를 않는다. 나는 그런 건 다 없어도 괜찮았을 텐데, 너만 있었더라면...
너는 너무나도 착해서 아무도 탓하지 않고 잘 살라고 빌고 갔다. 근데 그게 마음이 너무 아파서 나는 잘 못 지낸다. 근데, 네가 잘 살기를 바랐을 것 같아서 죽지는 못하고 있다. 네 생각하는 시간이 조금씩 줄어들고 네 목소리, 우리가 공유했던 것들의 기억이 희미해지는 것 같아서 두렵다.
2019. 09. **
너는 엄마가 내 탓을 하는 것에 대해 나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그리고 엄마에게 내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줬다. 너는 끝까지 착한 동생이었다. 그게 내 마음을 너무나 아프게 한다. 그게 나를 울게 만든다.
주변 사람들은 나를 많이 챙겨준다. 네 생각만 하고 네가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라고, 잘 먹고 잘 지내고 마음껏 슬퍼해도 괜찮다고 네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괜찮아질 거라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고. 네 탓이 아니라고. 동생은 네가 잘 살았으면 하고 떠났다고. 근데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정말 심리학 책도 많이 읽었고 상담도 다니고 정신과도 다니는데, 무슨 말인지 정말로 하나도 모르겠다. 다 맞는 말이고 나를 걱정해주는 진심 어린 말인데, 정말 하나도 이해가 안 간다. 여기가 어디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2019. 10. **
시간을 다시 되돌린다면, 이랬더라면, 저랬더라면, 널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고 수많은 가정들을 해보지만 마지막은 너를 살리는 게 네가 원하는 것이었을까, 그렇게 아파했던 너를 살려도 됐을까로 끝이 난다. 나는 내가 해도 되나 싶어서 네 물건을 건들지 못하고 마지막 가는 네 얼굴을 만지지 못하고 나보다 가늘고 부드러운 네 머리칼을 만지지도 못했다. 맘대로 너를 껴안고 우는 엄마를 보면서, 아무리 가만히 있다 해도 저렇게 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네 앞에서, 납골함 앞에서는 울지도 못한다. 네가 속상해할까 봐, 나는 네 언니라서 강한 모습만 보여줘야 할 것 같아서, 그래서 울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