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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끝없는대화 Jun 18. 2022

네가 웃는 방식이 기억나지 않아

 우울증 약을 다시 복용하기 시작했다.


 창업 준비기간이 길어지고 방향을 잃으면서 너무나도 지쳤고,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다. 일주일이 넘도록 온갖 물건들이 바닥과 책상에 널려있었는데 치울 수가 없어서 그냥 밟으면서 지나다녔다. 평소에는 거의 매일 저녁마다 항상 책상을 빈 상태로 원상복귀시키고 청소기를 돌렸었는데, 정말로 치울 수가 없었다. 책상이 더러우니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책상에 앉는 것이 겁이 났다.

 해가 뜬 낮은 참 길고 시간이 안 갔다. 시간은 가는데 할 일을 안 하고 깨있는 것이 무서웠고 잠이 쏟아졌다. 밤에 충분히 자고 낮잠을 4시간 잔 날도 있었다.


 어젯밤 꿈에 동생이 나왔다. 누군가와 둘이서 집에 들어온 아주 커다란 벌레를 같이 잡는 꿈이었다. 얼굴을 알 수 없는 그 누군가에게 이런저런 사소한 것들을 시키면서 부탁이야 이것 좀 버려줘, 제발 이런 말들을 했는데 꿈에서 깨고 난 뒤 그런 화법을 썼던 사람이 동생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꿈에서는 동생인지도 모르고, 그저 이것저것 시키기에 바빴다. 얼굴을 쳐다본 적도 없었다. 잠이 깬 후 눈을 뜨지 않고 웅크려서 이불을 다시 덮었다. 다시 꿈을 이어서 꾸려고 노력하다 실패하고, 얼굴을 기억하려고 했는데 기억이 나지 않았다. 네가 웃을 때 새그러운 것을 먹을 때처럼 눈매가 어떤 식으로 휘고 가늘어지는지, 와잠이 어떻게 통통해지는지, 미간이 어떻게 찌푸려지는지, 광대가 얼마나 완만하게 올라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네가 웃는 방식이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 네가 폈던 담배연기가 한여름의 공기를 무겁게 가르고 흩어진 것은 기억이 나는데, 삶의 의욕이 얼마 남지 않은 그 죽고 싶지도 살고 싶지도 않은 그 표정은 기억이 나는데 웃는 얼굴이 기억나지 않았다.


 웃는 얼굴을 잊었으니 너의 손가락이 움직이던 고유의 모습이나 걸음걸이, 둥그렇게 떨어지던 어깨, 무릎, 복숭아뼈 같은 게 잊히겠구나. 이틀 전 꾼 꿈의 내용처럼 무심하게 그런 게 있었나, 기억이 나도 그만 안 나도 그만인 것처럼 흐릿하게 사라지겠구나.


 네가 세상에서 존재했다가 떠난 것이 사실인지 의문이 든다. 이 세상에 벌어졌던 일이 아닌 것 같다. 네가 죽은 그날을 기점으로 우리는 다른 평행우주로 갈라졌고 다른 곳에 여전히 살아있는 네가 있을 것 같다. 고등학교 졸업식을 치르고 스무 살이 되어 성인이 된 기분을 만끽하는 네가. 걸어 다니고 한 사람 분의 숨을 쉬고 코카콜라를 여전히 좋아하는 네가. 어떻게 16년이 넘도록 세상에서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크게 아픈 곳 없던 사람 한 명이 하루아침에 없던 사람이 될 수가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네가 떠나고 누구나 내일이라도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품고 산다.

 정신이 건강할 때는 오늘 하루를 충실하게 살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주지만

 정신이 건강하지 못할 때는 나 자신과 오늘 하루를 덧없게 만든다.


 너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어떻게 아팠을까. 얼마나 아팠길래 그랬을까.

 어떻게 웃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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