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합격 메일을 주세요.

by 채채

| 바라지 않는다는 거짓말 |

가만히 있으면 큰일 날 것 같아 노트북 앞에 앉았다. 갓생까지는 못 가더라도 제 앞가림은 하는 사람이고 싶다. 분주함으로 불안을 덮자는 전략이다. 오늘도 대외활동과 인턴 공고가 올라오는 앱을 켜고,

모집 공지를 모아둔 스크랩 아이콘을 누른다. 이렇게 시간이 지난 줄은 몰랐는데 오늘이 마감이라니.


|평균이라는 이름의 도착지는 매우 멀어서|

최근 자주 방문한 사이트는 글자 수 세기와 맞춤법 검사기. 청춘이라고 하기엔 조금 지루해 보인다. 제출해야 하는 건 자기소개서와 포트폴리오 두 가지이다. 파일명을 ‘러프’에서 ‘진짜 최종’으로 바꾸기까지 노트북과 독대. 마지막 검토를 마치고 결과 발표일을 확인한다.


| 불합격 메일을 달라는 이상한 소원 |

합격자 개별 연락이라는 공지를 보면 한숨과 함께 세트로 떠오르는 것이 있다. ‘이번에는 제발 붙었으면’ 하는 마음 뒷면에 슬픈 문장이다. ‘불합격 메일을 주세요. 세상에 모르는 것 투성이인데 제발 합격과 불합격 정도는 전체 보내기로라도 알려주세요.’ 하는 ‘요즘 MZ’의 비명 아닌 비명 말이다. 면접이라도 보고 싶지만, 그것도 안 된다면 마지막 친절을 베풀어 달라고.



|스팸 등록을 멈춘 이유 |

합격 발표일이면 사람들이 드디어 연애를 시작한 거냐고 묻는다. 답지 않게 계속 휴대폰만 붙들고 있는 게 딱 봐도 궁금한 모양을 하고 있으니까. 그런데요. 차라리 그런 거라면 좋겠는데요. 이제는 스팸 등록 버튼도 섣불리 누르지 않는다.



|받은 메일함을 열 때 |

모르는 번호로 온 전화도 스프링 튕기듯 바로 받는다. ‘이번에는 혹시 몰라.’ 하는 마음이다. 합격이라는 두 글자를 바라는 게 큰 욕심이라면 확실한 세 글자 ‘불합격’ 연락을 달라고. 하지만 결과 발표날 ‘받은 메일함’은 텅 비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모든 결정이 끝났다는 사실이 더 입이 쓰다.


그러니 제발 불합격 메일을 주세요. 언젠가 앞 글자는 사라지고, 합격 두 글자만 남는 날이 아직 한참 멀더라도 작은 소원은 들어주셨으면 하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