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중고 12년간 대안학교를 다닌 대학생의 이야기
엄마 탓을 했다.
왜 대안학교에 보냈느냐고.
나는 설명해야 하는 삶이 싫었다.
20살 이전에는
"어느 학교 다녀?"
"꽃학교요"
"꽃학교? 이름이 특이하네?"
"네, 대안학교예요"
"대안학교? 그게 무슨 학굔데? 뭘 배우는데? 그게 뭐야?"
그리고 가끔은 "그거 문제아들 가는 곳 아니야? 장애인들 가는 곳 아니야?"
라고 따라붙는 수많은 질문들.
그런데 대학교에 들어간 이후에는 설명을 요구하는 꼬리질문들을 차라리 해주었으면 했다.
이른바 '현역'이 아닌 나에게는 다음과 같은 상황이 주어졌으니까.
"몇 학번이야?"
"22학번"
"22학번? 편입생이야?"
"아니, 그냥 22학번이야"
...
그들은 질문 조차 하지 않았다.
나는 현역이 아닌 '그냥 22학번'이라는 이유로 자연스럽게 그들의(사회의) 사고방식에 따라
'3수라는 개고생을 하고 22학번으로 대학교에 들어온 사람'이었다.
그들은 더 이상 묻는 것이 미안하다는 듯이 나를 배려해 준다는 듯이 질문하지 않았다.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라고!! 다른 다른 삶을 살아왔다고!!"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이러한 외침은 내 목구멍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내 몸통 안에서
오른쪽 옆구리에서 왼쪽 옆구리로 튕겨가고
다시 오른쪽 가슴에서 왼쪽 가슴으로 튕겨나가길 반복할 뿐이었다.
그래서 엄마 탓을 했다.
설명해야 하는 삶을 살도록 날 대안학교에 보낸 것에 대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보니 사회가 '최고'라고 여기는 대학교나 직책은 이미 놓친 것이 된 건에 대해,
'일반적이지 않은' 것에 대해.
그런데 더 이상 엄마 탓을 하지 않기로 했다.
엄마 탓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반적이라는 '정상규범'을 만들어 사람들을 평가하는 한국사회의 한계와
노력 없이 달콤한 과일을 먹고 싶은 내 게으름
이 두 가지가 빚어낸 두려움과 짜증에 그저 '탓'할 상대를 찾고 있었던 것일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가까이에 있는 사람의 탓을 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에 그 에너지를
다양성이 존중되지 않는 한국사회를 비판하는 데 쓸 것이고
내 삶을 개척하는데 쓸 것이다.
자유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