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군가를 신뢰하는가? 나는 신뢰받는 사람인가!
[소개글]
회의 기술을 배우러 갔는데, 사람을 배웠다.
정답을 말하는 대신, 질문을 던지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신뢰’란 결국,
기꺼이 약해지는 용기라는 걸 알았다.
이 글은, KOO (구기욱 대표님)의
쿠퍼실리테이션 이니셔티브 232기 수강 후기입니다.
[퍼실리테이션 연수, 나한테 일어난 일]
좋은 기회로 3일 동안 퍼실리테이션 연수를 다녀왔다.
퍼실리테이션이 뭐야?
회의 잘 진행하는 법 배우는 건가? 했는데
결국 사람 이야기, 신뢰 이야기였다.
그리고 내 이야기였다.
Day 1
퍼실리테이션이 그래서 뭐야?라고 하는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문장을 찾아가는 걸 연수 목표로 삼았다.
시작은 리치픽쳐.
우리 조는 50대 농촌 퍼실리테이터 활동 중이신 분,
40대 마케팅회사 20년 차 퇴사자,
나 30대 은행원 10년 차,
20대 조선업 3년 차. 4명으로 구성되었다.
우리가 선택한 주제는 ‘세대 갈등’.
근데 그리다 보니 결국 사람 문제였다.
말로는 애매했는데 그림으로 하니까
훨씬 직관적으로 표현됐다.
한국 사람 특유의 돌려 말하기를 뚫는 도구 같았다.
성공사례로 들었줬던 건,
지방 상가 벽화 프로젝트.
주최 측은 완전 자율성을 주면
‘야한 거, 운동권 그림’ 나올까 봐 걱정했는데
참여자에게 자율성을 주자 오히려 다들 최선을 다했다.
결국엔 대성공으로 이어진 사례..!
보수적인 우리 조직에서도 가능할까?
솔직히 여전히 의문이 들었다.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을 적었을 때,
나는 은행 합격하고 부모님께 알렸던 순간을 썼다.
다른 분들은 아내와의 결혼,
순조로운 퇴직, 성공적인 수능 가채점 순간을 적었다.
근데 충격이었다.
그 순간들 뒤엔
“I’m great. You are not.”이라는
심보(?)가 깔려 있었다.
웃기지만 찔렸다.
결국 기억에 남는 건
나 혼자 잘한 순간이 아니라
남들은 못했고 나는 잘한 그 순간이었다...ㅋㅋㅋ
그리고,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 줬던 순간이 더해졌다.
이어진 질문하기 실습에서는
비난을 형태만 의문문으로 바꾼 나 자신을 발견했다.
리스닝은 그대로 적지 못하고 내식으로 고쳤다.
온전히 듣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인가.
스크라이빙은 재밌었다.
A2 이젤에 포스트잇 붙이고 정리하니
순간순간 쏟아졌던 아이디어가 휘발되지 않았다.
눈앞에서 여러 명의 생각이 모양을 갖췄다.
에너자이징도 신기했다.
지쳐 있던 오후,
박수 한 번, 짧은 게임 하나로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정서는 정보의 문지기.
문이 닫히면, 아무 말도 안 나온다.
Day 2
둘째 날에는 기법을 많이 배웠다.
아니 엄청난 실습이 이어졌다..
육감도 확산법.
골프에서 다한증 아이디어로 연결되는 과정이 신기했다.
말 못 하던 사람들도
“죽고 사는 문제 아닙니다.
언제든지 수정할 수 있습니다” 하니 술술 나왔다.
사람을 말하게 만드는 게 제일 어렵다는 걸 알았다.
창증감제.
줄이고, 늘리고, 새로 만들고, 없애고.
여행이라는 주제랑 잘 맞아서
아이디어가 많이 나왔다.
그리고 표출 단계에서 배운 한 문장.
“표출할 땐 평가하지 않는다.”
진짜 충격이었다.
우린 자동으로 ‘저건 아니지’ 하면서 걸러낸다.
근데 평가를 뒤로 미루니 훨씬 풍성해졌다.
평가를 안 하는 거 같지만 계속 평가하고 있다.
나의 의견을, 상대의 의견을.
평가는 뒤로!!
여행계획 워크숍도 기억난다.
우리 조는 구체적으로 호주 8박 9일,
엄마 아빠 할머니 중2병 딸로 구성하고 시작했다.
추상적으로 시작한 조랑 결과가 정말 달랐다.
주제 정의가 절반이다.
갤러리워크도 신기했다.
같은 주제인데 완전히 다른 결과물.
하지만 둘 다 맞았다.
"모든 참여자는 각자의 최선을 다한다."
성악설을 믿는 나에겐 가장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
성과물 정의는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비전 3가지’가
표어인지, 문장인지, 그림인지.
의뢰자랑 꼭 합의해야 한다.
시간도 마찬가지.
참여자는 150% 하고 싶고
의뢰자는 30%만 원할 수도 있다.
사전 조율이 답이다.
Day 3
셋째 날은 철학.
퍼실리테이터는 메시지엔 중립, 절차엔 개입.
그 타이밍이 중요하다.
모르면 물어봐라.
의사결정권자든,
경험 많은 퍼실리테이터든.
집단사고는 무섭다.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면 그게
진짜 위험하다.
중립과 신뢰는 세트다.
중립을 지켜야
참여자들이 진짜 생각을 낸다.
결국 퍼실리테이션은
갈등을 다루는 의사결정의 기술.
그리고,
“Willingness to be vulnerable = Trust.”
이 말이 머리를 세게 쳤다.
신뢰는 ‘믿음직함’이 아니었다.
기꺼이 내가 약해지는 것.
내가 상대를 믿는다는 건,
그 사람이 날 실망시킬 수도 있다는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는 거였다.
개인적인 성찰
연수가 끝나는 주말에
내가 주관하는 큰 행사를 앞두고 있었다.
팀장님이 여러 번 연락을 주셨다.
“ 이거 확인됐니? 우천 대비했어?”
세심한 배려이셨는데,
순간 ‘나를 못 믿으시나?’ 싶었다.
근데 곱씹어보니,
나도 다른 사람을 못 믿는다.
약해지기 무서워서
모든 일을 꽁꽁 싸매고 내가 다 들고 있다.
그래서 내가 더 힘든 거다.
각자에게 맡기고
발생하는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는 것,
그게 진짜 신뢰인 거다.
(행사는 조언해 주신 덕분에,, 대비해서 잘 끝냈다ㅠ)
퍼실리테이션 회의기법 배우러 왔다가
결국 사람과 인생 얘기를 하게 됐다.
사람은 선하다. 사람들은 항상 최선을 다한다.
그가 그렇게 말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모든 사람은 최선을 다한다.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그 사람이 그렇게 말하는 건 다 이유가 있는 거다.
마치며
퍼실리테이션이 뭔지
아직 잘 모르겠다.
근데 확실한 건,
이걸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회의 기술이 아니라
사람을 이해하는 방식이니까.
[생각거리]
1. 나는 언제 사람을 믿지 못하고, 왜 그럴까?
2. 회의에서 ‘평가를 뒤로 미루기’를 어떻게 해볼 수 있을까?
3. 중립성과 개입, 그 사이의 균형은 어떻게 잡을 수 있을까?
4. 내가 지금 꽁꽁 싸매고 있는 건 뭘까?
모든 사람들이 Koo를 알게 되는 그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