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맹뿌도 살아 있다》-3

[3화] 키보드는 샀지만, 엑셀은 여전히 어렵다

by 달구언니



1. 내가 잘하는 건 함수가 아니라 참는 일

참고로, 나 컴활 2급이다.
MS Office Master 자격증도 있다.
(물론 10년도 더 됐다. 거의 구석기 시절임.)

그래도 뭐, 그 시절에는 나름 당당했지.
자격증 있는 사람이라고.

근데 현실은,
내가 만난 이 복잡한 수식이 가득한

전임자 엑셀판 앞에서

그 하찮은 자격증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누군가 말했다.
“그 키보드론 엑셀 못 해.”
그래서 나는 키보드를 샀다.
기계식, 저소음 적축.

타닥타닥 잘 눌리고, 보기만 해도 일 잘할 것 같은 느낌.

바뀐 건 키보드뿐이었다.


2. 엑셀은 늘 나보다 똑똑했다

나는 엑셀을 잘 못한다.
“엑셀을 잘 다룰 줄 아는 사람”을 엄청 부러워한다.

함수? 뭐든 써보긴 한다.
=if, vlookup, index-match…
그런데 결과값이 안 나오면 숨이 턱 막힌다.

수식이 틀렸을 때 나오는 그 오류 알림,
회사 생활 중 제일 나를 비참하게 만든다.
전지점에서 같이 근무했던 선배님께

초보자를 위한 엑셀 책을 선물 받았다.(ㅎㅎ)



3. 제 실적은 왜 안 나와요?

전화벨이 울리면 일단 겁이 난다.
“뭐지? 왜지? 뭐가 틀렸지?”
대부분은 정중한 문의인데,
그 안에 묻어 있는 실망감이나 짜증이 더 무섭다.

“제 실적은 왜 안 나와요?”
“이거 누락된 거 같은데요?”
“보내신 자료에 우리 지점 빠져 있어요.”

나는 고개를 숙이고 다시 엑셀을 연다.
함수를 다 뒤져도 이유는 안 보인다.
결국 하나하나 다시 입력한다.

문제는 늘 사소하다.
빈칸 하나, 공백 하나, 필터 한 줄.

근데 그걸 알아내는 데
한 시간이 걸린다.




4. 나는 엑셀을 잘 찾는 사람

결국 나는 깨달았다.
나는 엑셀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다.
엑셀을 ‘잘 찾는’ 사람이다.

오류가 나면
Ctrl+F로 함수부터 찾고,
“vlookup 공백 문제” 검색창에 치고,
엑셀 장인들의 고전 블로그에 매달린다.

사실 그게 회사 아닌가.
잘 몰라도, 그때그때 필요한 걸 찾고
기어이 마무리 짓는 사람.

그래서 나는
함수를 몰라도
실적 파일은 완성하고

이미지 만들고
시간 맞춰 메일을 보냈다.

누구도 나한테
“엑셀 못 하죠?”라고 말한 적 없고,
나도 내 입으로
“못 해요”라고 말하지 않았다.




5. 그래서 오늘도 나는 한 칸 한 칸 채운다

회사 일이라는 건 그런 거였다.
완벽해서 하는 게 아니라,
해야 하니까 해내는 일.

함수를 몰라도,
사람 얼굴은 넣었고
메달은 걸었고
메일은 나갔다.

그리고 내일도
실적은 정리될 거고,
엑셀은 또 나를 비웃겠지.

그래도 나는

키보드 앞에 앉아

한 칸 한 칸 다시 채워 넣을 것이다.


그게

회사에서 살아남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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