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맹뿌도 살아 있다》-4

[4화] 말하는 공작새들 사이에서 조용히 버티는 법

by 달구언니



1.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


근데... 말하고 싶지도 않다.

본점은 공작새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나는 그렇게 느꼈다.

사무실 한복판에서
화려한 깃털을 활짝 펴고
“이거 제가 했습니다”
“저 이번에도 결과 냈습니다”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눈에 띄는 사람들이 인정받는 곳.

그리고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2. “제가 했습니다만… 말 안 했습니다”

그날도 실적 메일을 만들었다.
얼굴 사진 넣고, 금메달 걸고,
정리하고, 확인하고, 보냈다.


맡은 업무를 처리했다.

새해맞이 신사업 아이디어를 내고

미팅을 잡았다.


모두가 안된다 했지만

된다는 부서를 찾았다.

함께 한번 해보기로 했다.

그걸 내가 만들고 있었는데.
진짜, 아이디어만 들고 간 거 뼈를 만들고

살을 붙이고 숨을 불어넣어 만들었는데.


이것도 몇 개월 후에 나를 슬프게 만들었다.

어렵고 귀찮을 땐

모두가 안된다고 그걸 왜 해야 하냐고 했는데.

잘 될 거 같으니 모두가 자기가 했단다.

원래부터 생각하고 있었단다.

분하기도 하고

기가 차기도 했다.

그렇지만.. 잠깐 멈췄다가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깨달았다.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

근데 문제는,
말하고 싶지도 않다는 거다.



3. “열심히 한 내가 바보다 싶을 때”

처음으로 공식 행사를 맡았을 때였다.
멘붕 온 선배님을 도와
이름표 하나하나 칼질하고,
동선 짜고, 리허설 돌리고,
그야말로 박박 갈아서 살려낸 행사.

끝나고 들은 말은
“이번에 행사 잘했네. 다들 고생했어.”
한 줄이었다.
그 한 줄로 충분했다고 생각했다.
그땐 정말, 그냥 팀을 위해 한 거니까.

그런데 몇 개월 후, 그게 내 발목을 잡았다.

네가 이런 거 잘하잖아.
그러니까 앞으로 00 업무 전담해 줘.”

그 말이 너무 비참했다.

서비스직 알바 경력 7년,
“사람 응대는 네가 갑”이란 말도 들었고,
팀이 하나 되어 서로서로 돕는 건 좋았다.

하지만 내 책임감과 정성이
결국 남의 뒤치다꺼리를 떠맡게 했다는 걸 알았을 때,
진짜 마음이 꺾였다.

나는 잘 해내고 싶었다.
내가 맡은 건 하나도 허투루 하기 싫었다.
그게 잘못이었다.



4. 나는 조용히 일하는 사람.

뽐내기보다는
제시간에 일 마치고,
다시 검토하고,
빠뜨린 게 없는지 확인하는 스타일.

칭찬보다 안정감,
성과보다 정확도를 중시하는 편.
그래서 더,
공작새들 사이에 있으면 피곤하다.

왜냐면
나는 깃털을 펼치는 법을
배워본 적이 없거든.


지금은 후회한다.

애초에 너무 열심히 했다.

너무 힘들다 징징 거리는 사람에겐

떡이라도 하나 준다.

묵묵히 일해봐야 일만 더 늘어난다.


5. 그래도 나는 지워지지 않기 위해 버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라지지 않기 위해,
‘조용히 제 할 일 잘하는 사람’으로 기억되기 위해
하루하루를 채운다.

누가 봐주지 않아도,
누가 실적을 가져가도,
결국 누군가는 안다.

그 사람이 내가 아니더라도
내가 나를 아니까.

그래서 오늘도
메일을 만들고,
결재를 올리고
무이력을 정리해둔다.


내가 떠난 자리에 오게 될 사람이

조금이라도 편하게 적응할 수 있도록.





6. 누군가는 떠들고, 나는 쌓는다

본점은 여전히 말하는 공작새들이 사는 곳이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속으로 생각한다.

“나는… 꿩 정도 되려나?”

깃털은 안 펴지지만,
소리 없이 날고,
흔적을 남긴다.

조용히, 묵묵히,
나는 나대로 버틴다.



다음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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