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그만 물어보세요..
재이가 아무것도 잡지 않고 서있다가 앉았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발달과정에선 중요한 부분이라 희망이 생겼다. 이 즈음 나는 개월수에 집착했다. 재이는 16개월, 교정일로는 15개월이었다. 걸음마는 16개월 전에 하면 정상발달이라고들 하나, 요즘엔 18개월까지도 정상발달로 본다고 들었다. 그래도 재이의 걸음마가 16개월 전에 나오기를 바랐다. 하지만 나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고, 17개월을 하루 앞둔 날, 나는 앞으로 교정일로 개월수별 발달을 체크하기로 했다. 그렇게라도 시간을 벌고 싶었다. 하지만 교정일로 따져도 16개월까지 걸음마를 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나는 그래 아직 18개월이 되지 않았잖아. 라며 마음을 다독였다.
대근육 발달은 느리지만 키는 또래 아이들보다 컸던 재이. 그래서 더더욱 걸음마 여부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 앞집 할머니도, 아인이 등굣길에 자주 마주치는 할아버지도, 난생처음 보는 사람들도, 교회 언니도, 그리고 시부모님도.
시부모님은 종종 다 함께 모인 저녁시간에 영상통화를 걸어왔다. 그리고 매번 걸음마는 하냐고 물어보셨다. 궁금하고 걱정돼서 물어보신다는 건 알지만, 걸음마에 대한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있을 때라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없었다. 몇 번 참다가 남편에게 말했다. 그만 물어보시라고 전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남편에게 잘 전했다는 답을 받았고, 얼마가 지났다. 그 이후, 시부모님께 영상통화가 걸려오면 자리를 피하곤 했는데 우연히 영상통화를 하는 남편 근처를 지나다가 시어머니가 하는 말을 들었다. 재이 걸음마는 하냐?라고. 마치 나와 아무 상관없는 연예인의 가십거리를 이야기하는 것처럼 가벼운 말투였다.
남편에게 다시 시부모님께 말씀드려 달라고 말했다. 걸음마에 대한 질문이 며느리에겐 큰 스트레스가 된다고. 그리고 며칠 뒤 늦은 저녁, 어머니께 메시지가 왔다. 너무 걱정 말라고, 지인의 손주도 걸음마가 늦었다고, 같이 기도하자고. 답을 바로 할 수 없었다. 나도 이제 결혼한 지 10년이고, 시부모님의 스타일도 알만큼 알아서 걸음마에 대한 질문을 반복적으로 하시는 것도, 가볍게 느껴졌던 말투에도 악의가 없다는 걸 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반응했을까, 왜 이 늦은 시간에 며느리에게 메시지를 보내게 만들었을까. 몇 시간을 고민하다가 나의 마음상태에 대해 조심스럽게 적어 답장을 보냈다. 재이가 걸음마를 떼면 가장 먼저 연락드리겠다는 말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