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위한 시간. 7편

신촌 세브란스 치료 기록.

by 이다래

신촌세브란스병원(이하 ‘신촌’)은 버스를 타고 다녔다. 사실 거리만 가까웠지 버스를 타고 내리면 10분 정도 걸어야 해서 은평성모병원(이하 ‘은평’)에 가는 것보다 더 힘들 때도 있었다. 힘든 만큼 기억에 남는 일들도 많았다. 버스를 탔는데 바로 앞사람이 하나 남은 빈자리에 앉았다. 당황할 새도 없이 맞은편에 있던 여성분이 여기 앉으라며 자리를 내주셨다. 말투도 다정하셨는데, 내가 앉을 때까지 서서 자리를 지켜주기까지 하셨다. 버스에 사람이 많아지고 내 앞에도 한 여성분이 섰다. 태슬이 달린 초록 가방을 메고 계셨는데 재이가 자꾸 태슬을 만지려고 했다. 하지 말라고 손을 잡았더니 그 여성분이 눈치를 채셨는지 재이에게 만져도 된다는 듯 태슬을 잡고 흔드셨다. 내릴 때가 다 되어 앉은 채로 백팩을 메려는데 가방이 무겁고 패딩이 미끄러워서 끈이 한쪽으로 흘러내렸다. 그걸 보던 또 다른 여성분이 가방을 잡아주셨고, 반대쪽 어깨에도 잘 멜 수 있게 도와주셨다. 버스가 정류장에 정차하길 기다리는 사이에 울컥해서 눈물이 났다. 너무나 고마웠던 분들. 가끔은 교통약자석에 앉아서 모른 채하는 사람도 있고, 기어이 내 앞을 비집고 들어와서 버스를 먼저 타버리는 사람도 있었지만 결국은 감사한 기억만 남는다.


세브란스에서는 기구치료가 병행되었다. 치료사님과 30분간의 운동치료가 끝나면 기구치료실에서 30분간 치료가 진행되는 식이었다. 치료내용은 그때그때 달랐다. 오래 서 있을 수 있게 유도하기도 하고, 장애물을 건너게 하기도 하고,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게 하기도 했다. 치료 7회 차 때는 폼롤러 위에서 균형 잡기를 했는데, 치료사님이 재이 발모양이 이상적이라고 하셨다. 그날부터 한동안은 머릿속에 ‘이상적’이라는 말이 떠다녔다. 걸음마를 기다릴 때부터 지금까지 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던 불안의 대부분이 걷히는 기분이었다.


21개월에 들어서면서 재이의 걸음마에 안정감이 생겼다. 덕분에 버스에 내려서 병원까지 걸어가는 길이 험난해졌다. 자기가 가고 싶은 대로 가려고 하고, 걷기 싫어서 주저앉기도 했다. 대신 치료시간은 늘 순탄했다. 치료사님이 의도하는 걸 재이가 어렵지 않게 해내곤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치료 9회 차가 됐을 무렵, 치료사님이 재이의 사경을 발견하셨다.


치료사님은 본인이 왜 사경을 이제야 발견했는지 모르겠다고 스스로를 탓하듯 말씀하셨다. 왜 말 안 했냐고 물을까 봐 변명거리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치료사님은 ”내가 왜 발견을 못했지.. “라는 말만 되뇌셨다. 은평에서도 사경문제를 짚어주었지만 심각하게 다루지 않은 데다가 사경 치료 효과를 보기엔 재이가 이미 많이 커버렸다고 했다. 나 역시 사경이 있던 첫째가 자라면서 차차 좋아졌던 탓에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찌 됐든 재이의 사경치료는 그날 바로 시작되었다.


치료사님은 1인 치료실을 찾아 재이를 데리고 들어가셨다. 굳이 왜 그럴까 생각했는데, 금방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사경치료가 시작되자마자 재이는 이제껏 들어본 적 없는 큰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온몸을 못 움직이게 붙잡고 치료가 진행되는데, 치료사님 말로는 도수치료와 같은 거라서 어른도 힘들어한다고 했다. 그래서 사경치료받는 아이들은 치료사와 절대 친해질 수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우는 재이를 보며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 했는데 치료가 끝나갈 무렵에는 나도 모르게 눈에 눈물이 맺혔다. 2주 뒤에 담당 의사와 진료가 잡혀있고, 그때 치료를 종결해도 되겠다는 말을 들을 줄 알았다. 그런데 갑자기 사경치료라니. 가뜩이나 추워진 날씨가 더 춥게 느껴졌다.


왼: 누나랑 아장아장 / 오: 나를 안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