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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래 Dec 29. 2022

12주, 포도와 함께

12


사람들이 안정기라고 부르는 12주에 들어섰다. 이때까지만 해도 병원에 가는 일이 무서웠다. 혹시나 아이가 잘못됐을까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제일 떨리는 순간은 초음파 화면이 흔들리면서 뱃속의 아이를 찾아 헤매다가 무언가 선명하게 보일 때. 이번엔 잘 모르는 내가 봐도 아이가 지난번보다 자라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놓였다. 그다음 의사 선생님의 “아이가 많이 컸네요.”와 같은 멘트가 이어지고 심장소리를 들었다. 처음 아이의 심장소리를 들을 때보다 이때 들은 심장소리가 더 감동적이었다. 정밀초음파를 끝내고 1차 기형아 검사를 받으러 이동하는 길. 엘리베이터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유산의 두려움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고작 12주인데, 아이에 대한 내 마음이 너무나 커져버렸다.



진료를 받고 며칠 뒤, 문자메시지 한 통을 받았다. 1차 기형아검사 결과 다운증후군 고위험군으로 확인된다고, 다른 검사(염색체검사, 니프티검사)를 받고 싶으면 언제든 내원하라는 내용이었다. 바로 병원에 갔고, 의사를 만나 무려 60만 원이나 하는 니프티 검사를 하기로 했다. 의사, 간호사 선생님이 괜찮을 거라고, 나이 때문에 결과가 그렇게 나올 수 있다고 말씀해 주셨다. 무엇보다 최대한 빨리 결과를 받아보실 수 있게 해 준다는 말이 너무나 고맙게 느껴졌다.


검사를 하고 온 이후부터 나는 핸드폰에서 손을 뗄 수가 없었다. 의미가 없다는 걸 알지만, 포털사이트에 온갖 키워드를 다 검색해가며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히려 노력했다. 재검사에서 정상으로 나왔다는 후기글이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왜인지 나도 그럴 거라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리고 밤만 되면 어김없이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곤 했다. 검사 후 5일이 지난 어느 날, 병원에서 메시지가 왔다.(결과가 정말로 빨리 나왔다!) 결과는 “정상소견”! 메시지를 읽고 또 읽어도 내용은 같았다. 퇴근하고 온 남편에게 메시지를 보여주며 내가 잘못 본 게 아닌지 다시 확인했다. 


이 무렵에 나는 포도를 엄청나게 먹었다. 원래 좋아하던 과일도 아닌데 왜 이렇게 먹고 싶은지. 그래서 아가의 태명은 포도가 되었다. 12주 진료를 받고 오면서 주변 지인들에게도 임신소식을 알리기 시작했고, 너무나 많은 축하를 받았다. 축하해주는 사람들 표정이 하나같이 환하고 밝았다. 덕분에 포도가 나와 영원히 함께 해 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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