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인생을 대신 살아주던 엄마에게, 이제야 쓰는 고백
얼마 전, 한 고등학교 교사가 쓴 글을 읽었다.
그리고 나는, 그 글을 덮고 한동안 눈을 감고 과거 여행을 떠났다.
요즘 학부모들은 지나치게 예민하고,
아이에게 집착하며,
교사에게까지 불만을 쏟아낸다는 이야기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결혼도 안 했고, 아이도 없지만
수백 명의 아이를 10년 넘게 가르쳐 왔습니다.
부모 한 명이 자기 아이 하나 키운 시간보다
제가 가진 데이터가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부모가
"아이를 좀 더 살펴봐 주세요"
"이 부분이 걱정됩니다"라고 말하는 순간조차,
그에게는
교권을 위협하는 신호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미혼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전문성이 가볍게 여겨진다고 느꼈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겉으로는 부모에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했다고 했다.
'당신이 아이 하나 키운 시간보다
내가 아이를 훨씬 많이 봤다.'
글을 다 읽고도 한동안,
마음이 그 글에 머물렀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교사는 많은 아이를 본 사람이다.
하지만,
그 말이 전부도 아니었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데이터로 환산되지 않는 일이다.
그래서 부모의 마음에는,
언제나 숫자로 환산되지 않는 불안이 남는다.
성적 하나에 하루가 흔들리고,
표정 하나에 잠 못 이루며,
아이가 학교에서 힘든 말을 듣고 돌아오는 날이면,
나는 그 하루를 다시 되짚는다.
그 일이 정말 아이의 잘못이었는지,
혹시 내가 놓친 신호는 없었는지.
그리고 결국, 그 아이 하나를 살피려
나 자신의 전 생을 돌아보게도 된다.
'내가 망치고 있는 건 아닐까'
'이 선택이 평생을 좌우하지는 않을까'
'아이를 위해 어디까지 개입을 해줘야 할까'
매일 마음으로 외줄을 타는 일이
부모의 삶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글을 읽으며 생각했다.
지금 이 시대의 교육 문제는
부모가 틀렸느냐,
교사가 옳으냐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 너무 다른 언어로
아이를 사랑하고 있다는 데서
시작된 건 아닐까.
그리고 나는,
도쿄에서 그 답을 조금 배웠다.
한국을 떠나 도쿄에 살기 전까지,
나는 나름 '열심히 사는 엄마'였다.
담임 공지,
수행평가 일정,
학원 단톡방,
하루에도 수십, 수백 개가 넘는 메시지.
그 안에
혹시 우리 아이 이름이 있지 않을까,
놓친 정보는 없을까,
불안부터 검색하던 엄마였다.
아이를 위해서라고 믿었지만,
사실은
내 불안을 관리하는 일이 더 컸다.
그래서 일본으로 떠났을 때,
가장 먼저 든 감정은
의외로 자유가 아니라 불안이었다.
학원을 안 보내도 괜찮을까.
주입식 교육을 놓아도 될까.
아이들이 향후 뒤처지지는 않을까.
나는 부정하고 싶지만, 여전히
'결과로 증명해야 안심하는 엄마'였다.
겉으로는
늘 우아한 백조처럼 보였지만,
수면 아래에서는
누구보다 필사적으로 발을 놀리고 있었다.
도쿄 미나토구,
시나가와 국제학교의 하루는 규칙적이었다.
아이들은 이른 아침 집을 나섰고,
해가 기울어서야 돌아왔다.
하지만 그 하루 안에는
공부만 있지 않았다.
수영, 농구, 축구, 탁구, 야구,
프로젝트, 발표, 토론.
몸과 머리와 감정이
함께 움직이는 시간들이었다.
아이들 학교는 4세~19세까지 다니는 국제학교였는데,
전 학년 수영, 축구, 농구, 탁구, 야구 등 운동수업이
학기마다 의무처럼 포함되어 있었다.
학교는 시나가와역 근처에 있었지만
매주 주 1회 멀리 있는 축구경기장으로
공식적인 일정으로 축구수업을 하러 갔다.
어느 날, 축구를 하고 온 첫째가
땀에 젖은 환한 얼굴로 나를 보며 말했다.
“엄마, 나 오늘 골은 못 넣었는데 엄청 재밌었어.
나는 공격보다 수비에 강한 것 같아!”
그 말이 낯설고, 참 좋았다.
예전의 아이는
항상 결과부터 말하던 아이였으니까.
그 순간, 선명해졌다.
아이들은
관리될 때보다
탐색할 때 더 자란다는 것.
돌이켜보면,
나는 아이를 정말 열심히 키웠다.
첫째는 다섯 살부터 각종 대회.
금상, 특상, 대상.
창의력대회, 영어회화, 피아노, 승마,
태권도, 한자, 각종 자격시험.
아이의 시간은
항상 '결과를 내는 방향'으로 쓰였다.
아이는 잘했고,
나는 뿌듯했고,
우리는 함께 기뻐했다.
그래서 묻지 못했다.
이게 정말 아이의 꿈인지,
아니면 내 불안의 연장선인지.
어느 날,
아이가 코피를 쏟았다.
배도 아팠다. 학원일정이 줄줄이 밀렸다.
몸은 회복되었지만,
펑크 난 수업 보강일정이 줄줄이 몰리니
감당해야 하는 아이도
지켜봐야 하는 나도, 스트레스가 밀려왔다.
그날 밤,
어쩌면 내 사랑이
아이를 힘들게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뒤척였다. 첫째가 11살 되던 해였다.
아이가 코피를 쏟던 날,
그제야 나는 처음으로
내 사랑이 아이에게 짐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도쿄에 오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계속 아이를
시험대 위에 올려놓고 살았을 것이다.
아이의 인생을 대신 살아주듯
전두지휘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결과가 좋았다면,
그게 아이에게 옳은 선택이라고
단정했을 것이다.
도쿄에서 모든 것을 멈추고서야 알았다.
나는 아이를 키운 게 아니라,
내 불안을 해소하는 일을
아이의 시간에 맡기고 있었다는 걸.
솔직히 말하면,
도쿄가 특별해서라기보다
내가 처음으로 멈췄기 때문에
보이기 시작한 풍경이었다.
맹모삼천지교는
아이에게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었다.
삶의 무대와 환경이 바뀌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아이를 밀어붙이고 있었을 것이다.
요즘 나는
성적표를 보기 전에
먼저 묻는다.
"이번 학기, 제일 재밌었던 게 뭐야?"
대답이 끝나면
그제야 점수를 본다.
조금 늦더라도,
조금 돌아가더라도,
아이의 속도를 믿기로 했다.
한나 아렌트는 말했다.
"교육은 아이를 보호하는 일이 아니라,
세상에 건네는 일이다."
그 문장은
도쿄에서 처음으로 현실이 되었다.
도쿄에서 보낸 시간들.
아이들은 자신을 알아갔고,
나는 아이를 믿는 법을 배웠다.
그 시간은 도망이 아니라 확장이었다.
우리 가족의 세계를
조금 더 넓혀준 시간이었다.
아이를 지켜준다는 건
앞서 뛰게 하는 일이 아니라,
아이 스스로 자기 인생을 믿게 해주는 일이라는 걸.
부모의 선택은
바로 성적표에 남지 않는다.
대신,
아이가 자기 인생을 대하는 방식으로 남는다.
그리고 그 믿음이,
평생을 이끌어간다.
그리고 가끔 생각한다.
그때의 선택이
지금도,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조용히 바꾸고 있는 중이라는 걸.
여러분은 아이를 키우며, 혹은 개인적으로 언제 가장 불안해지나요?
자신만의 불안해소 방법이 있다면 공유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