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도시를 지키는 설계
방송인이 되기 전,
나의 첫 사회생활은 전공을 살려 시작했다.
신입이던 시절, 나는 밝은 사람이었다.
동기들과 잘 어울렸고, 일도 재미있게 배우고 있었다.
어느 날 점심시간,
아침을 먹고 출근하느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별생각 없이 말했다.
"안 먹고 출근합니다."
부장이 나를 향해 물었다.
"엄마는 뭐 하시고?"
나는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제가 6시쯤 나오는데, 그 시간에는 주무세요."
그는 잠시 나를 보더니 말했다.
"그게 무슨 엄마냐."
여러 사람이 함께 밥을 먹고 있던 자리였다.
나는 숟가락을 내려놓지는 않았지만,
손의 움직임이 잠시 멈췄다.
그때 엄마는 천식으로 자주 입원하셨고
밤을 지새운 날이 더 많았다.
하지만 그 사정을 꺼내고 싶지는 않았다.
설명하는 순간 내가 변명하는 사람이 되는 것 같았고,
증명해야 하는 사람이 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냥 밥을 먹었다.
그 한 문장을 시작으로
내가 막 세우기 시작한 사회의 도시에
작은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부장은 윗사람들 앞에서는 웃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자신보다 연차가 적은 직원들 앞에서는
유독 차갑고 도도했다.
작은 실수는 부서가 들썩거릴 정도로 크게 말했고,
부서원들이 잘한 일은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소위 '튀는 직원들'에게는
더욱 차가웠다.
냉소적인 말투를 서슴지 않았다.
지금 돌아보면
그 태도는 하나의 방어 구조였던 것 같다.
위로는 유연하게,
아래로는 단단하게.
그는 그것이
자신의 위치를 지키는 방식이라고 믿었을지 모른다.
어쩌면 그의 도시는
처음부터 그렇게 설계되어 왔을지도 모른다.
강해 보이기 위해
거리를 두는 설계.
나는 그때 스물넷이었다.
그는 지금의 내 나이보다 젊었다.
그 당시 나는
나이 차이가 있으니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영역이 있겠거니 했다.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되겠지, 생각했다.
그러나 그 나이를 지나 되짚어 본 그는
여전히 이해되지 않았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만큼은 단단함이라기보다 미성숙에 가까웠다.
어쩌면 그 역시 그 나름의 불안 속에서 버티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 낯선 태도를 이해하기까지
나는 꽤 많은 시간을 걸어야 했다.
그날 이후 나는 방식을 바꿨다.
말수를 줄였다.
하지만 나를 줄이지는 않았다.
꼬투리를 잡히지 않기 위해
사소한 부분까지 점검했고,
맡은 일에서 결과를 내려고 노력했다.
주변의 시선보다
일에 집중했다.
일은 사람과 달랐다.
노력을 험담하지 않았고,
냉소하지 않았고,
쌓이면 결과로 돌아왔다.
나는 굳이
그를 따르던 직원처럼
비위를 맞추지 않았다.
대신
나는 결과로 말하기로 했다.
어느 날 타 부서 임원이 우리 부서를 방문했다.
“이 신입이 우리 회사 임원정보 시스템 다 만들었죠.
참 대단해요. 안 그래, 김 부장?”
그는 별다른 말 없이
임원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그날 나는
누군가를 이겼다는 기분이 아니라
내가 나를 지켰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날의 침묵 이후,
승리는 처음으로 내 쪽으로 기울었다.
도시는 하루아침에 붕괴하지 않는다.
균열은 작은 경계 침범에서 시작된다.
무례함도 그렇다.
처음엔 농담처럼,
그다음엔 평가처럼,
어느 순간엔 단정처럼.
그리고 그 사이 어딘가에서
우리는 한 번쯤 그냥 넘긴다.
설명하지 않고,
문제 삼지 않고,
분위기를 깨지 않기 위해 침묵한다.
그 순간
도시의 설계도는 조용히 수정된다.
무례함은 성격이 아니라
허용된 경계 위에서 자란다.
무례함은 감정이 아니라 방식이다.
상대를 동등한 존재로 보지 않는 태도다.
공개적 깎아내림.
선택적 과소평가.
교묘한 권력 과시.
그리고 그 방식은
한 사람의 기질이 아니라
그가 오래 유지해 온 도시의 구조일 가능성이 크다.
무례한 사람은 모두에게 같지 않다.
반응이 빠른 사람,
성장 속도가 보이는 사람,
존재감이 있는 사람.
그런 사람에게
유난히 날이 서 있을 때가 있다.
무례함은 종종
자기 불안을 덮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타인을 낮추면
상대적 위치가 올라간 것처럼 느껴진다.
그건 건강한 자신감이 아니라
비교 위에 세운 안정감이다.
이 구조를 이해하는 순간
균열은 내 결함이 아니라
상대의 설계 문제로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가 흔들리는 건
말의 세기 때문이 아니다.
설명해야 할 것 같은 순간 때문이다.
해명하고 싶고,
증명하고 싶어질 때
도시의 중심은 비워진다.
무례한 말에 즉각 반응하면
대화의 설계도는 상대 손으로 넘어간다.
첫 번째 공격은 상대가 던진 말이다.
두 번째 공격은 그 말을 내가 믿는 순간이다.
필요한 건 더 강한 말이 아니다.
좌표를 유지하는 일이다.
"그게 무슨 의미죠?"
질문은 방향을 되돌린다.
"그 영역은 제가 판단할 부분 같습니다."
판단권을 회수한다.
"업무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대화의 설계를 재정렬한다.
짧고 단정하게.
설명으로 도시를 흔들지 않고,
설득으로 에너지를 소진하지 않고,
내 좌표만 조용히 고정한다.
무례한 사람은
감정적 반응에서 에너지를 얻는다.
단정한 위치에 있는 사람 앞에서는
그들은 오래 머물 수 없다.
흔들림은 약함의 증거가 아니라
경계가 무너진 자리를 알아차리는 감각인지도 모른다.
무례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내 위치는 설계할 수 있다.
도시의 설계자는
벽을 높이는 사람이 아니라
구역을 명확히 나누는 사람이다.
상대의 태도를 바꾸려 하지 말고
당신의 좌표를 유지하라.
그 한 점이
당신을 소모시키는 관계로부터
당신을 분리해 낸다.
그건 복수가 아니라
재정렬이다.
무례함은 남을 수 있다.
그러나 당신은 그곳에 남지 않아도 된다.
그 순간,
당신은 더 이상 타깃이 아니라
설계자가 된다.
우리의 도시는 말이 아니라
태도로 완성된다.
나는 김 부장을 이기지 않았다.
나는 내 도시를 다시 설계했다.
흔들림은 상처가 아니라
설계가 시작되는 지점이었다.
도시는 설계자를 배신하지 않는다.
당신 인생의 김 부장은 누구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