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어른에게도 안전한 공간 하나쯤은

(마음을 쉬어가는 법 6)

by 희유


엊그제 초등학교 입학식에 다녀왔습니다.

둘째 아이의 첫 학교였습니다.


한국에 와서
처음 시작하는 아이의 학교 생활이라

저도 함께 설렜습니다.


첫아이와 일곱 살 터울이라
문득 7년 전 입학식이 떠올랐습니다.


그때

둘째는 태어난 지 이주된 아기였습니다.


그 아이가 이제 입학을 합니다.

부모의 나이는 아이를 따라간다는 말이 있지요.


저도 다시 둘째와 함께 1학년이 됩니다.


집에서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이인데

입학식에서는 놀랄 만큼 얌전히 앉아 있었습니다.


교장 선생님 바로 앞자리에서

차렷 자세로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있더군요.


주변을 둘러보니

어떤 아이는 몸을 비틀고,

어떤 아이는 뒤를 돌아보고,

또 어떤 아이는 가만히 있지 못하고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아이는

마치 얼어붙은 것처럼 앉아 있었습니다.


조금 긴장한 얼굴이었습니다.




뒤를 돌아보던 순간



행사가 끝나고

아이들이 교실로 이동하기 전

잠깐 뒤를 돌아보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우리 아이도

불안한 눈빛으로 뒤를 돌아봤습니다.


엄마 아빠가 있는지

확인하려는 눈빛이었습니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아이의 얼굴이 갑자기 환해졌습니다.


조금 전까지 긴장으로 굳어 있던 얼굴이

마치 햇살을 받은 것처럼

한순간에 풀어졌습니다.


그 표정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에게 부모는

세상을 버틸 수 있는

안전 기지구나.




돌아갈 곳이라는 것



심리학에서는

사람이 세상을 탐험하려면

반드시 돌아올 곳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애착이론 연구자 존 볼비는

이것을 ‘안전 기지(Secure Base)’라고 불렀습니다.


아이는 부모라는 기지가 있을 때

비로소 세상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멀리 나갔다가도

가끔 뒤를 돌아봅니다.


자신이 돌아갈 곳이

그 자리에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어른의 삶은 조금 더 복잡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어른의 삶은 조금 더 복잡합니다.


어떤 사람은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결혼을 하지 않은 채

혼자 살아가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곁에 가족이 있어도

마음이 기댈 곳을 찾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안전 기지를 사람에게서만 찾으려다

더 지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곁에 있는 사람이

언제나 안정이 되어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안정 기지여야 할 사람이

오히려 우리를 더 지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안전 기지는

누군가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설계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나만의 안전 기지를 설계하는 법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창가에 놓인 작은 의자 하나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베란다의 작은 테이블일 수도 있습니다.


퇴근 후

잠시 책을 펼치는 자리일 수도 있고


조용히 앉아

하루를 정리하는 책상일 수도 있습니다.


일본에서 한국으로 건너오며

한국에 가면 반드시 내 방 하나는 만들어야지

마음먹었습니다.


저희 집에는 방이 네 개나 있고

베란다도 네 개나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저만의 방은 아직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리 하나 비집어 제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주방의 큰 식탁 한 자리를

온전히 제 자리처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가져온

따뜻한 나무 식탁입니다.


그곳에서 글을 쓰고

책을 읽고

가끔은 간식을 먹으며

하루를 정리합니다.



완벽한 서재는 아니지만

지금의 저에게는

그곳이 작은 안전 기지입니다.



중요한 것은

공간의 크기가 아니라


그곳에 앉았을 때

마음이 내려놓아지는가입니다.




많은 어른들이

아이들의 방은 만들어 주지만


정작 자신을 위한 공간은

마련해 두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른에게도 그런 곳이 필요합니다.


지칠 때

잠시 돌아갈 수 있는 자리.




어른에게도 안전 기지가 필요합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여성이 글을 쓰려면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


어쩌면 글을 쓰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 살기 위해서도

자기만의 방이 필요한지도 모릅니다.





봄은

세상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계절입니다.


아이들도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고

어른들도 다시 무언가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가끔 잊습니다.


아이에게 부모가 필요하듯

어른에게도

돌아갈 곳 하나가 필요하다는 것을.


어른은

강해서 버티는 것이 아니라


잠시 돌아갈 곳이 있어서 버팁니다.


그러니 올해는

하나만 준비해 두면 좋겠습니다.


지칠 때

잠시 돌아갈 수 있는


나만의 작은 안전 기지 하나.


어른에게도


작은 안전 기지 하나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니 오늘은
잠시라도 좋습니다.


집 안 어딘가에
나만의 자리 하나를 정해 보세요.


의자를 하나 끌어다 놓아도 좋고
식탁 한쪽이어도 괜찮습니다.


그 자리에 잠깐 앉아
오늘 하루를 천천히 내려놓아 보세요.


어쩌면
그곳이 당신의 작은 안전 기지가 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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