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두 개의 시계가 있다

(마음을 쉬어가는 법 5)

by 희유

어쩌면


같은 시계를 바라본다는 것은,
서로를 완전히 놓치지 않기 위한
조용한 약속인지도 모릅니다.


한국에 돌아온 뒤

하루의 풍경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도쿄에 있을 때는 조용하던 휴대전화가

이곳에서는 계속해서 진동합니다.


갑자기 바빠진 휴대전화


아이들 학교 단톡방 알림,

학부모 공지,

준비물 안내,

각종 일정 메시지.


아이 가방에서는

가정통신문이 한 장씩 늘어납니다.


문제는

그 모든 것을 다 확인해도

가끔은 꼭 하나를 놓친다는 것입니다.


꼼꼼히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가정통신문 한 장을 놓치기도 하고,


학교에서 운영하는

학부모 채널에 가입해 두고도

아이의 학번과 이름을 적는 칸을

뒤늦게 발견하기도 합니다.


단톡방에서는

새로운 메시지가 계속 올라옵니다.


지금 확인하지 않으면

금세 위로 밀려나 버립니다.


누군가의 공지,

누군가의 질문,

누군가의 축하할 소식.


잠깐 다른 일을 하고 돌아오면

대화창에는

수십 개의 메시지가 쌓여 있습니다.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한국에 오니

모두가 함께 보는 시계가 있구나.




두 개의 시계


도쿄에 살 때는

시간이 조금 다르게 흘렀습니다.


조금 느리게 걸어도 괜찮았고

조금 늦게 시작해도 괜찮았습니다.


제가 설정한

저만의 속도로

하루를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오니

시계의 시간이 다시 빨라졌습니다.


등교 시간,

학원 시간,

숙제 시간,

각종 일정과 마감.


마치 모두가

같은 시계를 바라보며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때로는

누군가 제 시계의 태엽을

마음대로 감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늘 두 개의 시계 사이에서 살아갑니다.


하나는

내 안에 있는 시계입니다.


내 속도,

내 리듬,

내가 편안하게 움직일 수 있는 시간.


그리고 또 하나는

세상이 함께 보는 시계입니다.


학교 시간,

회사 시간,

사회가 정해 둔 속도.


이 두 시계는

늘 같은 속도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같은 시계를 보며 살아가지만,

같은 속도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도
누군가의 속도를
은근히 확인해 보지는 않았나요.

동료의 속도,
옆집 아이의 학습 속도,

때로는
형제자매의 삶의 속도까지.


그래서 우리는

이 속도의 차이 앞에서

스스로를 지치게 만들기도 합니다.


속도가 다르다는 것


그래서 가끔 우리는

지치기도 합니다.


나는 조금 천천히 가고 싶은데

세상은 이미

다음 시간으로 넘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세상은 이미

출발 신호를 보내기도 합니다.


그럴 때면

괜히 뒤처진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생각을 조금 바꿔 보면


함께 보는 시계가 있다는 것은

꼭 나쁜 일만은 아닙니다.


함께 보는 시간의 의미


그 시계 덕분에

사람들은 같은 시간에 만나고

같은 시간에 학교에 가고

같은 시간에 하루의 일을 시작합니다.


우리는 그 시간을 기준으로

서로를 발견하고

서로를 만납니다.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니까요.


나만의 시계만 바라보고 살다 보면

어느 순간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칠 수도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서 생기는

기쁨과 위로,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소명과 가치 같은 것들입니다.


같은 시계가 하는 또 하나의 일


또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함께 보는 시계는

뒤처진 사람에게도 하나의 기준이 됩니다.


누군가는 조금 늦게 걷고

누군가는 조금 빨리 걷습니다.


하지만 같은 시간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완전히 길을 잃어버리지는 않습니다.


조금 늦어도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같이 보는 시계는

간섭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같은 시간에 출근하고

같은 시간에 학교에 가고

같은 시간에 움직여야 하는 삶.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을

다른 면에서 바라보면

때로는 보호가 되기도 합니다.


누군가 평소와 같은 시간에 나타나지 않으면

사람들은 묻습니다.


"무슨 일이 있나?"


그 질문 속에는

관심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관심은

사람을 다시 공동체 안으로

불러들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들고 살아가는 두 개의 시계



어쩌면
같은 시계를 바라본다는 것은

서로를 완전히 놓치지 않기 위한
조용한 약속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두 개의 시계를 함께 들고 살아갑니다.


하나는

내 안의 시계.


나의 속도와

나의 리듬을 지켜주는 시간.


그리고 또 하나는

함께 보는 시계.


사람들과 연결되고

서로를 발견하게 해 주는 시간.



우리는 같은 시계를 보며 살아가지만
같은 속도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이 두 개의 시계를 함께 들고

살아가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오늘

여러분의 두 시계는

같은 속도로 가고 있나요,

아니면 서로 다른 속도로 가고 있나요.



오늘 하루만큼은

내 마음의 시계태엽을

내 속도에 맞게

조금 더 부드럽게 감아보는 하루였으면 좋겠습니다.





이전 11화마른 우물에서 사랑을 길어 올리는 그대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