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이 누군가의 미래가 될 때
7개월 만에 고국에 갔다가,
다시 일본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상했다.
처음으로 '한국앓이'가 없었다.
고향을 등지고 떠나온 지 4년 차였건만,
한국에 다녀오면
그리움은 늘 물처럼 따라왔는데
이번에는 마음이 덤덤했다.
일본으로 돌아와
내가 달라졌다는 걸
알아차린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는 이제, 돌아가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었다.
(물론 나는 언제든 다시 기꺼이 돌아갈 것이다.
다만, 더이상 향수에 얽매이지 않게 되었다.)
여기, 지금 이곳에서도
내 삶을 잘 살아가고 있고,
앞으로도 잘 살아갈 거라는 믿음이
나를 지탱하고 있었다.
며칠 전, 한국에서 보낸
잠 못 이루던 어느 새벽이었다.
다들 잠든 고요한 거실.
엄마의 공간에서
우연히 책 한 권과 마주했다.
나태주 시인의 시집.
그 옆엔 수많은 악보들,
연필로 눌러쓴 필사들,
엄마의 손때 묻은 기타 한 대가
세월처럼 앉아 있었다.
꽤 오랜 기간 보아온 공간인데,
그 새벽에 처음으로
'엄마가 이렇게 곧고 열정적이고 아름다운 사람'이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만의 시간을, 언어를,
소리를 품고 살아가는 엄마.
그 모습은
일본에 와서 '작가'가 되겠다고
애쓰던 내게
묵묵한 황금열쇠 하나를 건넸다.
나는 엄마를 닮았다.
엄마가 걷던 삶의 자취를
늦게서야 따라 걷고 있다는 걸,
나는 이제야 깨닫는다.
가정 안에서,
아이들의 엄마로,
한 사람의 아내로,
그리고 내 이름 석 자로 살아가는 삶.
그 역할과 현실 사이,
열정과 욕심 사이에서
나는 매일 흔들리고 있다.
그 흔들림 속에서
나는 써야 할 이야기를 쓴다.
때로는 조용히 울고,
때로는 단단히 믿으며.
이제 나는 알 것 같다.
내 삶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이 아이들이 언젠가 나를 떠올릴 때,
"우리 엄마는 자신만의 언어로
세상을 살아낸 사람이었어."
그렇게 말해줄 수 있다면.
나는 참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
내가 살아가는 이 시간은
아이들의 미래가 되고,
내 글은 그들의 기억이 되어줄 테니까.
나는 아직도
무너지고, 방황하고, 흔들리지만
정신 바짝 차리고
이 길을 계속 걸어가려 한다.
곧고 열정적이며 아름다운 엄마의 딸이자,
한 사람의 아내로서,
두 아이의 엄마로서,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으로.
이런 매일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나라는 한 존재에게 준
황금열쇠의 소명을
단단히 지키며 살아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