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하지 않기로 한 하루들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몸을 수련하며 마음도 자랐다

by 희유


“ 서른다섯에 시작한 요가 공부.

누군가는 늦었다 말했지만,

나는 매일을 버티며 스스로를 믿기로 했다.

포기하지 않기로 한 하루들이

결국 나를 여기까지 데려다주었다.“



내 목표는 이루어질 수밖에 없어.

왜냐하면 내 머릿속엔 오직 그 생각뿐이었거든.”




요가강사 자격증을 준비하던 시간,

힘들고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오늘만, 딱 오늘만 열심히 해보자.

언제든 쉴 수 있으니, 내일 쉬자.”

(그리고 그 내일은 매일 반복되었다.)


“잘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저 끝까지 버텨보자.

아이의 기다림과 남편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나는 서른다섯 살에 요가 공부를 시작했다.

사실,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에 어린 나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치유요가협회 자격시험에서

같이 수련한 동기들 중 1등의 성적으로 합격했고,

전국에서 단 두 명만 붙었던 그 시험에서

그 중 한 사람이 되었다.


자격시험 연수로 대전에 머무를 때,

모두가 잠든 밤

나는 단 1시간만 자고 이론 공부와 실기 수련을 반복했다.


불안했다.

나이도 적지 않고, 작은 실수 하나로

5개월간의 준비가 무너질 수 있다는 두려움도 있었다.

그래서 남들보다 더 연습하고, 더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반드시 합격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왜냐하면, 단 한 번도

내가 떨어질 거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내 노력을 믿었고,

진심으로 요가를 좋아했고,

깊이 이해하고 싶어 애썼다.


그 시간들은 분명 힘들었지만

아이도 엄마를 응원하며 고마운 성장을 해줬고,

바쁜 남편도 진심으로 외조해줬다.

몸도, 마음도 깨어나던 시기였다.

나는 그저,

이 길이 내 운명이라고 믿었다.


합격 발표를 받았을 때,

기쁘기보다 덤덤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감정은

스스로에 대한 자랑스러움,

그리고 함께해준 가족과 스승, 도반들에 대한

깊은 감사였다.



강사로서 수업을 시작하고 나서,

나는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누군가는 나를 보며

요가강사 공부를 시작하고 싶다고 말했고,

식당일로 등이 굽은 어르신은

“이 시간만 기다렸다”며

감사의 인사를 전해주셨다.


아들을 의대에 보낸 80세의 할머니는

좋아하는 제과점의 식빵을 건네주시며

말없이 마음을 전해주셨고,

어떤 분은 찐빵을,

어떤 분은 고구마를 전해주시기도 했다.


그 마음들이 너무나 따뜻했다.


목디스크, 이명,

혹은 네 개의 발가락으로 힘겹게 걷는 분까지—

사람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품고

내 수업을 찾았다.


나는 내가 가진 실력 안에서

그리고 지금도 이어지는 수련과 공부를 통해

그들을 진심으로 돕고 싶었다.


처음엔 나 자신에게 집중하며 시작했던 요가였지만,

지금은 상대의 몸과 마음을 바라보게 되었다.


개인 수련 시간은 줄었고,

수업에선 늘 기본 동작을 보여주는 일이 많았지만

신기하게도

내 요가는 점점 더 성숙해지고 있었다.

몸의 쓰임도 훨씬 강해졌고,

무엇보다 마음이 달라졌다.


요가는 더 이상

매트 위에서만 이루어지는 수련이 아니었다.


몸이 아닌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

상대를 이해하고,

자신을 성찰하는 그 과정이

진짜 요가임을 느꼈다.



지금도 나는

무언가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마다

스스로에게 이렇게 다짐한다.


“내 목표는 이루어질 수밖에 없어.”

그리고,

“오늘만 열심히 해보자.

쉬어도 괜찮으니, 내일 쉬자.”


힘들면 좀 쉬어가도 괜찮다.

결국엔 닿을 테니까.

하지만 오늘 하루,

딱 하루만 더 해보자고 다짐하며

나는 또 한 걸음,

내 삶의 깊이를 넓혀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