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인연이 남긴 삶의 태도와 위로
짧은 만남과 장면들이,
내 마음 안에 작은 조약돌처럼 놓여 있다.
때로는 반짝이고, 때로는 무겁지만
그 조약돌들이 모여,
나를 붙들고 내가 더 깊이 뿌리내리게 도왔다.
경태, 전미경, 안경미…
어린 시절 친구들이 남긴 흔적은 오늘도 내 글의 뿌리가 되어 흔들림을 붙잡아준다.
초등학교 3학년 때 경태라는 친구가 있었다.
늘 교실 밖에는 그의 어머니가 서 있었다.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긴장한 얼굴로 아이를 지켜보던모습.
아직도 내 기억 속에 선명하다.
어느 날, 경태가 장난을 치다 아이들의 놀림을 받았다.
어머니는 수업이 끝나기도 전에
아이의 손을 잡고 급히 교실을 떠나갔다.
그 뒷모습이 잊히지 않았다.
나는 다음날 쉬는 시간에 용기를 내어
어머니께 다가가 말했다.
"아줌마, 경태는 그냥 장난친 거예요."
짧은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작은 우산이 될 수 있었을까.
며칠 뒤,
어머니는 나와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음식을 내어주셨다.
그날 부엌을 오가던 손길은 지금까지도 마음에 남아 있다.
부모가 된 지금에서야,
그 눈물과 고단함이 어떤 것이었을지,
자신의 아들이 쉽게 어울리지 못하는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한 그 마음도, 이제는 조금 짐작할 수 있다.
그때의 장면은 내 마음속에 첫 번째 조약돌로 남았다.
5학년 때의 전미경은
그 시절 학교 안에서 따로 불리던 교실에 속했지만
가수가 꿈인, 누구보다 활달한 아이였다.
후레쉬맨 주제가를 좋아해 구령대에 올라 큰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면, 선생님과 아이들은 모두 박수를 보냈다.
그 순간만큼은 누구도 그녀를
‘특별한 반 학생'이라 부르지 않았다.
무대 위의 주인공, 환하게 웃는 열 두살의 아이였을 뿐이다.
하지만 또 다른 장면도 있었다.
비 오는 날, 운동장에 주저앉아 비를 한껏 맞으며
엉뚱한 모습으로 있던 그녀를 아이들은 놀라며 피했다.
나는 우산을 함께 들고,
집이 같은 길목이라 그녀와 나란히 걸어갔다.
친구의 부모님은 고마워하며 간식까지 챙겨주셨다.
나는 환하게 빛나던 무대의 아이와,
비를 맞으며 주저앉아 있던 연약한 아이를 함께 기억한다.
그 두 얼굴 모두가 전미경이었고,
그 순간 우리는 같은 우산 아래 있었다.
그날의 기억은 내 마음에 두 번째 조약돌로 남았다.
중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안경미는 뇌수막염을 앓은 후유증으로 말이 어눌했고, 표정을 짓기 힘들었으며,
걸음도 절뚝거렸다.
담임선생님은 나에게 "한 달만 짝을 해 달라"라고
부탁하셨고,
나는 반장이었기에 그 역할을 맡았다.
함께 지내보니, 그녀는 몸만 불편했을 뿐
누구보다 성실하고 사려 깊은 친구였다.
그녀와 함께하며 알게 되었다. 다르다고 생각했던 친구가
사실은 나와 같은 마음을 지녔다는 것을.
중학교 2학년이 되던 해, 반이 갈라지면서 지내던 어느 날,
안경미는 우리 반 교실문을 수줍게 열며 내게 도톰한 편지를 전했다.
그 안에는 작은 조약돌 하나가 들어 있었고,
돌 위에는 불편한 손으로 정성껏 적은 티가 나는,
“우"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정”은 본인이 간직하겠다고 편지에 적혀 있었다.
나는 그 편지를 오래도록 간직했다.
대학생이던 어느 날,
전철역에서 화장한 얼굴이지만
여전히 어눌한 걸음으로 서 있는 익숙한 얼굴을 보았다.
우리는 동시에 서로를 알아보았다.
그녀는 OO대학교의 특수교육과에 입학했다며
느린 말로 전해주었다. 그렇게 인사를 나누고 헤어지며,
나는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그 순간 내 눈에는 절뚝이며 걸어가는 그 친구의 뒷모습이 세상 누구보다 씩씩하고 빛나 보였다.
안경미가 내게 직접 건넨 그 돌은, 내 마음속에 세 번째 조약돌이 되어 자리했다.
나는 학창시절에 늘 반장이었고, 회장이었고, 전교회장이기도 했다. 그 자리가 훈장이라기보다, 내가 만난 친구들에게 도움이 되는 자리라서 좋았다.
그래서 고3 때까지도 그 감투를 감사히 여기며 적극적으로 임했다.
덕분에 그 특별한 교실의, 특별한 친구들과 가까이 지내도 친구들이 낯설어하지 않았고, 그 자리 덕분에 더 많은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었다.
다만 앞에 서야 하는 일이 많다 보니, 여학생들 사이의 다정한 속삭임 같은 친밀함은 내겐 조금 부족했는지도 모르겠다.
친구들은 그런 나를 두고 “멋있다”, “대장부 같다”라고 말하곤 했다.
돌아보면 나는 그들의 무게를 다 알지는 못했다.
하지만 외면하지 않는 눈,
곁에 서 있는 발걸음은 배울 수 있었다.
아마 그래서일까.
지금도 글을 쓸 때면,
내 안에 놓인 조약돌들을 하나씩 꺼내 단어를 고른다.
그 돌들이 모여 오늘의 나를 만들었고,
내 글에 뿌리를 내려준다.
삶이 흔들릴 때마다 나는 그 조약돌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오늘도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흔들림을 견디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응원한다.
오늘 이 글을 읽는 당신 역시,
자신만의 무게로 하루를 견디고 있을지 모른다.
그 마음 곁에, 작은 조약돌 하나를 건넨다.
읽는 당신 마음에 이 글이,
따뜻한 조약돌이 될 수 있기를.
- 현달드림
** 여러분 마음에 놓인, 기억의 조약돌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