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웃음을 지켜낸 이름, 부모님

당신의 웃음을 지켜준 이름은 누구인가요?

by 희유



"내가 한결같이 웃을 수 있었던 건, 부모님의 마르지 않는 염려와 눈물이 내 삶의 비구름을 대신 막아준 덕분이었다. 내 웃음의 무게를 이제야 깨닫는다."


"웃음에도 뿌리가 있다는 걸, 나는 부모님의 편지에서 배웠다."




일본에 오기 전, 아버지가 어머니께 연애 시절부터 보내신 편지를 본 적이 있다.


수십 통, 어쩌면 백 통이 넘을지도 모르는 봉투 속에는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삼 남매 각자가 첫 직장을 얻기까지의 시간이 빼곡히 들어 있었다.


걱정 많은 어머니를 향해 "우리 OO 이는 잘할 거다. 당신이 늘 고생이 많다." 하고 토닥이던 아버지,

그 말에 기대어 다시 힘을 내던 어머니.


그 편지는 단순한 연애의 기록이 아니었다.


부모가 될 사람들의 두려움과 다짐, 그리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우리를 향한 축복 같은 기록이었다.




영원히 부모님인 줄만 알았던 두 분.

하지만 그들도 한때는 남자와 여자로서 서로에게 기대며 부모가 되어가는 길 위에 있었다.


그중 한 통에는 이런 대목이 있었다.


“우리 아이가 첫 직장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니 참 기분이 묘하오.

아장아장 기고, 아빠라고 부르며 어설피 달려오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한데, 그만큼 우리도 나이가 들었나 보오.

그동안 집안일이며 자식들 뒷바라지하느라 고생이 많았소. 나는 늘 당신에게 고맙고, 현명한 당신을 존경하오.

아이 앞길을 두고 근심이 크겠지만, 너무 염려 말구려.

상처받고 힘들까 봐 애가 타는 당신 마음, 나도 잘 알지.

그래도 우리 아이는 충분히 잘 해낼 것이오. 지금까지 당신이 그렇게 키워왔잖소.”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늘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호탕한 전략가라 믿었던 아버지의 또 다른 얼굴을.


편지 속 아버지는 여렸고, 서로에게 기대는 두 분은 지금의 나보다 어릴 때조차 오히려 더 단단했다.





아버지 사업이 잘 풀리지 않던 때, 우리는 도시의 커다란 아파트에 살다가 2년쯤 지방으로 갑작스레 이사를 했다.


초등학교 입학 전의 일이다. 나는 네 살부터 기억이 생생해서, 다섯 살에서 일곱 살 무렵의 그 시절이 특히 또렷하다.


그 시절은 어른들에게 고단한 시간이었을 테지만, 내게는 지금도 가장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마당이 넓은 기와집. 지붕 사이에 제비가 둥지를 틀고 종종 눈도 안 뜬 새끼가 떨어지곤 하던 장면.

아버지 자전거에 매달려 유치원까지 가던 길의 바람.

엄마가 맨드라미꽃으로 쪄 주시던 떡.

아카시아, 실비아 꽃을 따 쪽쪽 꿀을 빨아먹어 본 기억.


텔레비전의 시골풍경으로 보던 장면이 내 앞에 펼쳐지는 순간, 나는 극도로 흥분했다. 설레었다.

아이의 눈에는 모든 것이 햇살과 놀이로만 번졌지만, 부모의 어깨에는 빚과 책임이 얹혀 있었다.


같은 시간은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부모에게는 시련이었고, 내겐 동화였다.


“아이의 기억은 햇살을 담고,

부모의 기억은 눈물을 품는다.”



뒤늦게 알았다.

내가 부족함을 모르고 자라난 것은, 부모님의 눈물과 흉터가 나를 대신해 막아낸 덕분이었다는 것을.


부모의 고단함은 아이의 웃음으로 번역된다.




이런 고백은 부끄럽지만,

나는 미소가 예쁘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올라간 입꼬리 덕에 환하게 웃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

세월이 지나서야 얼마나 큰 선물이었는지 알게 된다.


내 웃음은 결코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내가 웃을 때마다 그 웃음 뒤에는

부모님의 편지와 땀과 희생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이제 부모가 된 나는, 그 무게를 조금은 이해한다.

내 아이가 웃을 때마다, 나 또한 어떤 고단함을 기꺼이 감내하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여자아이의 첫 절기에 히나인형을 장만해 집 안에 모시는 전통이 있다. 마치 부모가 아이에게 바치는 부적처럼, 그 인형은 ‘이 아이를 지켜줄 것’으로 믿어지는 존재다.


나는 일본 땅에서 그 전통을 바라보며, 부모님이 내게 남긴 편지와 우리 집의 기억이 그 인형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형이 그 자리에 묵묵히 서서 아이를 보호하듯, 부모의 사랑은 나의 기억 한편에 자리해 나의 웃음과 눈물을 지켜준다.


나는 한국식 가족성에 익숙한 채 일본에 왔지만, 여기서는 ‘독립’이 미덕이란 말을 자주 들었다. 부모와의 거리를 유지하는 게 성숙한 관계라는 관념이 사회적으로 보편화되어 있다. 그런 문화 속에서 나는 미소 뒤에 숨은 부모의 노고와 눈물을 더 오래 생각하게 되었다.


부모와 자식이 서로를 붙잡기보다 서로의 공간을 존중하는 문화 속에서, 나는 더욱 간절히 그 사랑의 소리를 기억하고 싶어진다.


한국에서는 부모와 자녀가 자주 마주하고 말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일상이지만, 그 일상이 있는 사람도 그 사랑의 무게를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한국 사회 역시 고령화와 1인 가구의 증가로 부모-자녀의 관계가 점점 달라지고 있다


웃음의 뿌리는 결국 기억 속에 놓여 있는 작은 부적이고, 그 부적을 간직하고 이어가는 일이야말로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 아닐까.




나는 되돌려 드리고 싶다.


어릴 적, 비가 오는 날, 우산이 없을 때,

비를 맞지 않고 피하는 법을 가르쳐주셨던 그 마음을.


지방으로 이사하며 잠시 차가 없을 때

자전거에 태워주시며 아빠 등을 껴앉고 달리던 그 순간,

느려서 오히려 더 자세히, 오래 볼 수 있음을 알려주신 그 마음을.


이제는 부모님께 작은 쉼터가 되고, 비를 가려주는 우산이 되고, 곁에서 함께 달려드리는 자전거가 되어드리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내 아이가, 나를 통해 또 다른 따뜻한 기억과 단단한 지혜를 품을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부모님의 편지에 담긴 사랑을 이어가는 길일 것이다.




사랑은 결국, 기억 속에서 다음 세대로 옮겨 심는 씨앗이다.

그리고 그 씨앗은 부모님의 손에서 내 손으로,

다시 내 아이의 손으로 전해질 것이다.


그 씨앗이 이어질 때, 부모님의 사랑은 내 안에서 다시 숨 쉬고, 또 내 아이의 웃음 속에 살아날 것이다.

나는 오늘도 그 웃음을 이어받아, 내 아이 앞에 환히 웃는다.


"그 웃음 속에 부모님의 이름을 새기며."


그 이름을 기억하는 한, 우리는 다시 웃을 수 있다.




**당신의 웃음을 지켜준 이름은 누구인가요?**


그 이름이 부모님일 수도 있고,
형제일 수도, 친구일 수도, 혹은 선생님이나 전혀 뜻밖의 누군가일 수도 있습니다.


내 인생에 나를 믿어주는 단 한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 힘으로 충분히 웃으며 자라날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