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다시 한번 이별 중이다.

시간이 지나도 남는 건 결국 나 자신이었다.

by 희유

첫사랑이란, 어쩌면 기억의 가장 부드러운 색일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나면 감정의 질감은 흐려지고,
남는 건 오직 하얗게 바랜 기억뿐이다.


나는 언제나 현실의 사람으로 살아왔다.
사랑할 때는 있는 힘껏 표현했고,
이별의 순간에도 미련을 남기지 않았다.
그리움이 찾아오면 피하지 않고 끝까지 바라봤다.
그것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7년 후, 10개월 후, 20년 후.
각기 다른 누군가가 다시 연락을 해왔(었)다.
그들 모두 다른 이름, 다른 사연이었지만
그 속엔 묘한 닮음이 있었다.


에스엔에스가 발달하며,
나는 누구에게나 '발견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때때로 그들 중 누군가는 우연처럼 나를 찾아냈지만,
사실 그들의 연락은 현재의 나에게가 아니라,
그 시절의 나에게 쓴 편지에 가까웠다.


대부분은 도쿄에서 살아가는 나를 보고,
놀라워하기도, 그리워하기도 했다.
그 당시엔 그토록 쿨했던 사람들이,
이제 와서 마치 나의 안부를 걱정하듯 말했다.


도쿄의 내가 잘 지내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놓인다고,
이제는 자신도 한결 편해졌다고.
그 말투에는 어딘가 보호자 흉내를 내는

어색한 온기가 섞여 있었다.


사실 그런 말을 들으면,
어제 먹은 파스타가 체하는 기분이 든다.
익숙한 향이지만, 다시 삼키긴 부담스러운 맛처럼.


그들이 그리워한 건 내가 아니었다.
그 시절 사랑하던 자기 자신,
그 시절의 온기와 가능성,
그 시절의 '살아 있던 감정'이었다.


나는 매해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어쩌면 더 단단하고,
조금은 더 근사한 사람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편지는 내게 닿지 못했다.
그들이 찾은 건,
이미 오래전에 지나온 나의 한 장면이었으니까.


이별은 나를 들여다보게 한다.
사람을 잃고 나서야 보이는 건
그때의 미숙한 나, 아직 자라지 못한 마음이었다.
시간은 그 미숙함에 빛을 비춰주었다.


그래서 이제는,
오랜만에 들려오는 그 소리에
조용히 미소 짓는다.


"그 시절의 우리는, 충분히 아름다웠어."


그들은 지금 또 한 번 이별 중이다.
그때의 자신과, 그리움의 잔상과.
나는 그저 조용히, 진심으로
그 이별을 축복할 뿐이다.


이 글은 사랑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네 인생 이야기.


결국, 사람은 이별로 늙지 않고,
이별을 이해하면서 어른이 된다.


금목서.

** 금목서 (金木犀, Osmanthus fragrans var. aurantiacus), 키녹세이(きんもくせい)


문득 창밖으로 금목서 향이 스쳤다.
보이지 않아도, 그 향 하나로 계절을 기억하게 하는 꽃.

사람의 인연도 어쩌면 그렇다.
보이지 않아도, 남겨진 마음의 향으로 이어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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