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도쿄는 '아이 의료비 0원'이 가능한가

도쿄에서 아이를 키워보니 비로소 이해하게 된 것들

by 희유


도쿄에서 아이를 키우는 동안,

아이들의 병원비를 내 본 적이 없다.


"성인이 될 때까지, 병원비와 약값이 정말 싹 다 무료라고?"


그때마다 늘 손에 들고 다녔던 것이 바로

'아동 의료증(医療証)'이었다.


아이 둘을 키우면서 병원비, 약값, 치과 비용까지

모두 '0원'이라는 경험은
솔직히 말해, 사람을 버릇 나게 한다.
너무 편해서, 너무 감사해서,

가끔은 친절한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들께

괜스레 죄송스러운 마음마저 들었다.


아이들이 치과를 가든, 피부과를 가든, 약을 짓든

그저 아동 의료증만 가지고 가면,

일사천리로 처방되는 약까지 싹 다 무료로 지어오다니!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면서
마음속에서는 이런 감정이 스르륵 올라왔다.


"이제는 모든 비용을 내가 다 부담해야 하는구나."


그리고 자연스럽게 또 다른 질문이 뒤따랐다.


"한국은 왜 이런 제도를 서울만 적용하면 반발이 생기고,
일본은 왜 도쿄만 이런 혜택을 줘도 조용할까?"


도쿄에서 실제로 살아보며 느낀 차이는,
단순히 '돈을 얼마나 쓰느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보다 더 깊은,

두 나라가 사회를 바라보는 방식 자체가 달랐다.


물론 완전한 제도를 가진 나라는 없다.

어느 나라든 강점이 있으면

그만큼의 한계도 함께 따라오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과의 일상에서 마주한 순간들을 빌려

두 도시가 품은 구조의 결을 나만의 속도로,

조용히 들여다보고자 한다.


도쿄에서는 이 작은 카드 한 장이 아이들의 의료비 부담을 거의 지워준다.




도쿄는 하나의 "작은 국가"처럼 움직인다


서울과 도쿄는 규모가 비슷해 보이지만
정치적 단위는 전혀 다르다.


도쿄 인구는 약 1,400만 명.
경제력과 자치권은 지방정부를 넘어선다.
기업 본사가 몰려 있고, 예산 규모도 국가 단위에 가깝다.


그래서 일본 사람들은 도쿄만 특별한 정책을 펼쳐도

이렇게 말한다.
"도쿄니까 가능하지."


도쿄가 '예외적인 도시'라는 인식이

이미 자리 잡혀 있는 것이다.


반면 한국은 중앙집권 구조이기 때문에
서울이 파격적인 정책을 펼치면
곧바로 전국 단위의 정치 논쟁이 생긴다.




일본은 차이를 '경쟁'으로 보고,

한국은 차이를 '불평등'으로 본다


도쿄가 아이 의료비를 전액 지원한다고 해도
일본의 다른 지역은 이렇게 반응한다.
"도쿄는 도쿄니까. 우리는 우리 방식으로 고민해야지."


지역 간 차이를 자연스러운 결과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왜 서울만? 지방 차별 아니야?"
이런 정서적 반응이 더 빠르다.


왜일까?


— 일본은 오래전부터 지역이 각자 방식으로

경쟁하며 성장해 왔다.
 그러니 세금과 제도, 서비스가 달라도

'그럴 수 있다'라고 받아들인다.


— 반면 한국은 전국이 비슷한 기준을 공유해야 한다는

기대가 크다.
 교육·복지·의료가 '함께 맞춰가는 것'이라는

감정이 깊게 스며 있다.


그래서 같은 정책을 시행하더라도
국민이 느끼는 감정과 해석이 완전히 달라진다.




일본에서는 '아이 지원 = 도시의 생존 전략'


도쿄에서 살며 가장 크게 느낀 건,
일본이 아이 한 명을 매우 귀하게 여긴다는 사실이었다.


초저출산, 초고령화, 노동력 감소.
세 가지 위기가 동시에 드러난 사회에서
아이를 지원하는 일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 전략이 된다.


그래서 도쿄는 의료비 완전 무상이라는 큰 결정을
'따뜻한 복지'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도시를 위한 투자'로 바라본다.


한국 역시 저출산 문제를 겪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사회적 논의가 종종

'누가 더 혜택을 받는가'라는

형평성 문제로 빠르게 이어지곤 한다.


이는 한국 사회가 오랫동안 공동체적 기준과 평등한 분배를

중요하게 여겨온 문화적 배경과도 맞닿아 있다.


여기서 두 나라의 관점이 갈라진다.




세금 구조가 다르다: 누가 부담하고 누가 누리는가


도쿄의 무상 의료는
도쿄 내부의 세금으로 해결된다.


— 소비세(부가세) 10%
— 기업 본사의 지방세 수입이 매우 큼
— 도쿄 안에서 재원이 순환됨


혜택을 누리는 사람과 비용을 부담하는 사람이

같은 지역 안에 있으니, 크게 시끄러워질 일이

없는 것도 자연스러웠다.


반면 한국은 지방세 비율이 낮아
서울이 파격적인 지원을 결정하면
중앙정부 예산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


서울만 혜택을 받아도
부담은 전국이 나누는 구조라
당연히 논쟁이 생긴다.




일본의 개인주의는 '타 지역 무관심'을 만든다


도쿄에서 살다 보면 자주 놀라곤 한다.

다른 지역이 어떤 혜택을 받는지,

사람들이 거의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점이다.


누가 어디서 어떤 지원을 받는지,
그것이 내 감정과 연결되지 않는다.


이 개인주의적 문화는
지역 복지 차이에 대한 반발을 낮추는 중요한 배경이 된다.


반면 한국은 공동체적 문화라
다른 지역의 정책에도 감정이 쉽게 연결된다.


— "왜 저기는 되고 우리는 안 돼?"
— "형평성이 어긋난다."


사회가 움직이는 방식 자체가 다르다.




그래서 결론은, 제도 자체가 아니라 구조의 차이다


도쿄의 무상 의료가 특별한 것이 아니라
그 제도를 가능하게 하는 사회의 구조가 다르다.


— 도쿄는 준국가급 지방정부
— 일본은 지역 차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사회
— 아이 지원은 복지가 아니라 생존 전략
— 세금 부담이 지역 내부에서 순환되는 구조
— 개인주의가 타 지역 논쟁을 줄이는 문화


이 모든 배경이 합쳐져
도쿄는 '도쿄만의 복지'를 자연스럽게 누릴 수 있다.


반면 한국은
전국적 균등 서비스,
중앙집권적 의사결정,
형평성 중심의 정서를 가진 사회라
특정 도시만 앞서가는 정책을 허용하기 어렵다.




도쿄를 떠나며, 나는 이런 질문을 품게 되었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동안
병원비 걱정이 없다는 건
육아의 가장 기본적인 축을 단단히 지탱해 주는 일이었다.


그 축이 사라진다고 생각하면
조금 두렵고, 조금은 아쉽다.


그렇다고 한국이 당장 일본처럼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두 나라의 구조도, 문화도, 역사도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질문은 계속 남는다.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아이를 키우고 싶은가?"
"지역 간 형평성과 국가의 지속 가능성은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도쿄에서 살며 내가 배운 건
무상 의료라는 제도 자체보다
그 제도를 떠받치는 사회적 사고방식과 합의의 구조였다.


도쿄에서의 시간은 제도보다

'구조'를 바라보는 시선을 내게 남겼고,

그 시선은 한국으로 돌아가는 지금에도

조용히 영향을 주고 있다.


그리고 이 두 세계를 모두 겪은 사람으로서
나는 앞으로 한국에서 다시 아이를 키우며
또 다른 답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가 머무는 자리가 바뀌면 삶의 속도와 결도 달라지고,
그 변화는 결국 우리가 바라보는 세계까지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흔들어놓는다.


그 변화의 흐름 속에서
나는 다시 묻게 될 것이다.
우리가 어떤 사회를 꿈꾸는지,
어떤 방식으로 다음 세대를 지켜내고 싶은지를.


그리고 아이들과 다시 살아낼 한국의 일상 속에서,

나는 또 다른 구조와 또 다른 질문을 만나게 될 것이다.


삶은 결국, 우리가 어디에 사느냐보다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더 깊어지는 법이니까.





작가의 이전글나를 소비해 주는 사람들, 왜 이렇게 예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