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소비해 주는 사람들, 왜 이렇게 예쁠까?

단골보다 더 강력한 관계, 작가에게는 독자다.

by 희유

요즘 들어 장사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된다.
단골에게 밥을 사주고, 피자를 돌리고,

사소한 안부에도 진심으로 반응하는 그 마음 말이다.
예전에는 그저 "장사 수완이 좋네"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 속에 있는 더 깊은 결을 알아버렸다.


장사를 오래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어디에 닿아 있는지

가장 선명하게 아는 사람들이다.


누군가가 찾아와 물건을 사고, 음식을 먹고,

서비스를 받는다는 건 단순한 거래가 아니다.


그 사람의 시간을 내어
*'당신의 결과물을 내 삶에 들인다'*는 조용한 승인이다.


그런 사람들을 단골이라 부르는 이유는,
결국 그들이 내 삶의 의미를 반복해서

확인시켜 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존재를 받아주는 사람들


나는 요즘, 글을 쓰면서 비슷한 마음을 느끼고 있다.


누군가가 내 글을 읽고, 하트를 누르고, 댓글을 남기는 일은
세상에 수없이 많은 콘텐츠 중에서
잠시라도 나를 선택해 준 순간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상상보다 훨씬 더 깊은 울림을 준다.


사람은 결국
자신의 존재를 받아주는 사람에게 마음이 간다.


장사하는 사람이 단골을 사랑하는 것처럼,
작가는 자신의 문장을 소비해 주는 사람에게 애착이 생긴다.




정말 솔직히 말하면


정말 솔직히 말하면,
내 일상 안부에 더해 내 글까지 함께 반응해 주는 사람들이 더 예쁘게 느껴진다.


물론 안부도 진심으로 고맙다.
하지만 읽고 반응해 주는 일은 전혀 다른 결이다.


그들은 내 시간을,
내 감정의 결을,
내 하루의 작은 결을 따라 움직이는 마음들을
조용히 자기 하루 속으로 가져간다.


그리고 동시에,
그들 역시 자신의 시간과 감정의 결, 하루의 잔향을
내 쪽으로 천천히 초대하는 것과 같다.


이런 교류는 결국
서로가 서로의 삶에 잠시 맞닿아

결이 포개지는 순간처럼 느껴진다.


서로의 시간을 조용히 주고받고,
마음의 결이 스치며 온도를 나누기 때문에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더 깊은 애착이 간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반응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반응 속에 담긴 시간과 정성, 감정의 결이다.


여기서 말하는 '소비'는 관계의 거래가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조용하고도 깊게 건네고

받아들이는 일에 가깝다.




장사와 창작은 결국 같은 마음에서 시작된다


장사하는 사람이 단골을 보며
"저 사람들 때문에 버틴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나 역시 가끔 생각한다.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나는 오늘도 나를 이어갈 수 있다"라고.


창작은 외로울 때가 많고,
글은 누군가에게 도달해야 비로소 완성이 된다.


내 문장을 기꺼이 받아주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나는 내 안의 감정들을 꾸준히 꺼내어 건넬 수 있다.


그 누군가가 나의 존재를 소모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해 줌으로써 살아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마음을 줄 수밖에 없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우리가 사랑하는 건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을 통해 내가 살아 있다고 느끼는 순간이었다.


단골을 사랑하는 장사꾼도,
독자를 사랑하는 작가도,
결국 같은 마음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누군가가 나를 소비해 주는 일,
이건 돈도, 수익도, 통계도 아닌
'존재의 교류'다.


그 교류가 나를 지탱하고,
나를 쓰게 하고,
내 삶의 의미를 조금 더 환하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나를 소비해 주는 사람들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내 삶이 더욱 쓸모 있다고
조용히 말해주는 사람들이니까.

물론 자신의 가치는 스스로 밝혀야 한다.

그리고 당신의 한마디는 그 빛 위에 조용히 겹쳐져

서로를 더욱 빛낸다.




작가의 한 줄 코멘트


"나는 오늘도,

내 문장을 받아준 당신 안에서 함께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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