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가 다리 두 개인

떠돌이가

by 달랑무

지역마다 가로수가 색다르다. 버즘나무나 이팝나무, 배롱나무, 은행나무, 느티나무, 벚나무…. 환경과 기후에 맞는 나무의 생태가 다 다른 것처럼 가로수도 그만의 조건이 있다고 한다. 미적으로 수형이나 잎의 모양, 색채가 아름다울 것, 소음을 줄이거나 대기를 정화할 수 있을 것, 바람에도 강해 잘 쓰러지지 않아야 하고, 겨울에도 푸르름을 유지할 수 있을 것 등. 차선이 넓어지면서 가로수로 오래 기능하던 나무를 주민의 동의 없이 잘라버리는 일을 두고 말이 많았던 지역도 있다. 여름이면 그늘이 될 뿐 아니라 늘 같은 자리에서 제 역할을 하던 나무가 하루아침에 베어지면 허전함을 넘어 말 없는 생명에게 가해진 행정의 폭력 앞에 우두망찰일 때도 있었다.

어느새 해가 조금씩 길어진다. 어둑해지는 길을 걸어 지인과 약속한 장소로 간다. 나직한 수형의 특이한 나무들이 줄을 서 있다. 네온사인 불빛이 비쳐 도톰한 잎사귀에 윤기가 돈다. 한쪽으로는 바다로 이어지는 내가 흐르고, 그 사이로 물고기가 튀는지 동심원이 그려진다. 짠 내가 가까운 곳으로, 해가 드는 곳으로 몸을 돌리며 자랐을 나무가 단단히 휜 모양이 마치 그가 견뎌온 세월을 말해주는 듯하다. 오가는 사람들의 어지간한 속사정은 또 얼마나 듣고 삼켰을지. 그러고도 저런 자태라니 직립의 나로선 감히 닮기 어려운 경지이다.

나무뿌리는 아마도 산발일 터다. 모르긴 하지만, 누군가 말하길 가지가 퍼진 만큼이 뿌리라고 했다. 그 말이 아니더라도 흔들리지 않고 서 있으려면 뿌리가 어마할 거라는 건 보지 않아도 짐작한다. 가끔 보도블록 울퉁하게 뻗어 있기도 하고. 바람이 흔드는 대로, 손이 흔드는 대로 흔들릴 거면 태풍 한 방이면 벌써 사라졌겠지.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 근처 공원에 앉아있다. 가까이 보려고 애쓰지 않아도 지나가는 사람들 사이로 셀 수 없는 나뭇잎이 파라라 흔들리는 걸 보고 있다. 지나는 길에 무심코 고갤 들었다가 눈 맞춤도 했었다. 바람과 빗방울 하나에도 화답하는 나뭇잎들은 생명에 공명하는 신호다.

규칙적이지 않은 흔들림은 묘한 고요함을 준다. 예상하지 못하는 방향으로의 흔들림은 어떤 움직임도 괜찮다는 안도감도 준다. 아무리 그래도 뿌리가 움직이진 않는다는 걸 아니까. 속까지야 흔들리지 않는다는 걸 아니까. 겉으로야 무심한 듯하지만, 지나는 시간을 차곡차곡 기록하고 있을 나무. 생명을 지키느라 때마다 흔들리는 나무는 태풍 한 번 지날 때마다 뿌리 하나 더 내렸을 거고, 추울 땐 죽은 듯 숨을 죽였을 거다. 새로운 계절마다의 나이테를 하나씩 그리고 있는 나무는 혹시 꿈쩍 않는 돌이 되고 싶은 적은 없었을까. 비바람에 일일이 답을 하려니 속 시끄럽기도 했을 텐데.


뿌리가 다리 두 개인 나는 가지라 해봐야 팔 두 개와 몸통 하나, 복잡한 머리 하나 있다. 이런 나도 어느 날은 돌 되고 싶고, 바람처럼 떠돌고 싶을 때 있다. 태풍 한 방이면 바스러질 얕은 뿌리를 가진 덕에 떠돌거나 떠다닐 순 있어서 가끔은 나무에게 미안하다. 감히 상상하지 못할 뿌리를 기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