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사가 급할수록 멈춤이 필요해
대설인 토요일 아침이었다. 차를 타고 출근하다 정지신호에 섰다. 이 사거리 건널목은 경사로면서, 빨리 달리나, 느리게 가나 늘 정지신호를 받는 곳이다. 사람들이 많지 않은 곳치고 대기신호가 긴 건널목. 몇 번은 자전거 타고 가는 사람들이 미끄러져 넘어지는 걸 본 적도 있고, 사고를 마주친 적도 있다.
추운 아침 시간, 자전거를 타고 경사로를 내려온 한 사람이 멈췄다. 모자, 마스크, 두툼한 옷, 무장을 단단히 했다. 자전거의 앞과 뒤에는 바구니를 달았다. 보통은 초록불 신호가 보이면 멀리서부터 달려와 휑하니 건넌다. 사람이 많지 않은 곳, 더구나 춥고 이른 시간에 자전거로 건넌다면 더욱 그럴 거다. 그를 보고 있던 나는 그가 멈추기에 '진행 신호로 바뀌었나 보다' 하고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려다 다시 멈췄다. 아직 초록이었던 것.
신호가 아직 여유 있는 걸 확인하고 난 다음에야 다시 페달을 밟고 건너는 사람, 대설 아침에 온몸으로 바람을 맞는 사람. 가림막 하나 없는 자전거를 타고 추운 아침에 어딘가를 향해 야무진 페달링을 하는 사람. 경사로를 내려가는 사람은 누구나 속도감을 느낀다. 바퀴를 굴리는 사람이라면 더 쉽게, 더 빨리 건너려고 서두르기도 한다. 그런 익숙한 풍경을 봐오던 나는 오늘 그 사람을 보고 그래, 저래야 하는 거지! 하는 생각을 했다.
앞뒤로 바구니를 매었으니 무얼 싣고 다닐 준비가 된 사람이다. 필요하다면 추위쯤 괜찮고, 잘 챙기면 된다. 어떤 방법이든 나를 움직이게 만드는 동력은 '필요'다. 쓸 것이 되는, 쓰임이 되는 필요를 만들고 방법을 만들어 실천하는 사람. 가속 붙는 경사로에서 건너도 되는 상황이지만 일단 멈춰 가속에 제동을 걸 줄 아는 사람. 다시 출발하는 사람. 절제된 사람이다. 쉽고 빠른 방법을 알지만, 그 사실을 아는 자신을 경계할 줄 아는 사람. 그 사람이 궁금해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바라봤다.
초록은 건너가도 좋다는 만인의 신호이기도 하고, 좌우를 살피라는 경계의 신호이기도 하다. 경사로를 내려가는 자전거는 달리기 쉬운 도구의 표식이라는 인정이기도 하고, 경사가 급할수록 멈춤이 필요하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온몸으로 필요를 살필 땐 이렇게 나를 잠시 멈추고 주위를 돌아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