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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 and R Dec 27. 2018

이제는 써야 된다

    여행은 설렌다. 여행 장소를 정하고, 교통편을 정하고, 숙소를 정하고, 여행하는 순간까지 모든 순간이 설렌다. 여행하는 상상만 해도 설렌다. TV에서 다른 사람이 여행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설렌다. 여행이 설레고 좋다는 것을 알지만 잘 가지 않는다. 못 가는 게 아니다. 안 가는 거다. 돈이 많지 않아서 해외여행은 못 가지만, 국내여행을 할 정도는 있다. 심지어 시간은 많다. 대학교 자퇴하고 직업도 없는 마당에 시간이 없을 리가. 돈도 시간도 문제가 아니지만 가지 않는다.

    나는 왜 여행을 가지 않을까? 하나 딱 걸리는 게 있다. 여행이 사치로 느껴진다. 여행 자체를 사치로 보는 게 아니다. 나 자신이 여행을 할 만한 상황에 있는 놈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다. 아무것도 보장된 게 없는 상태에서 여행을 떠나는 건 그냥 남들이 여행하니까 따라 하는 거밖에 안 되는 거 같아서다. 적어도 나한테는.

    정말로 여행을 좋아하면 사치로 느끼지 않고 여행을 떠나겠지만, 내가 남들보다 특별히 여행을 좋아한다고 말할 만큼 좋아하는 건 아닌 거 같다. 남들이 평균적으로 좋아하는 수준으로 좋아하는 정도? '나중에 더 여유가 생겼을 때 꼭 여행해야지' 하는 정도?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런 게 하나 더 있다. 영화다. 좋아하는 배우들(믿고 본다고 하는 배우들? 송강호, 황정민, 하정우 등)이 출연하는 영화는 대부분 본다. 마블 영화도 챙겨보고, 가끔 SF영화나 로맨틱, 코미디, 음악 영화도 본다. 근데 1년으로 따지면 20편이 되지 않는다. 이 정도를 가지고 영화를 특별히 좋아한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책은 다르다. 책은 특별히 좋아한다고 말할 자신이 있다. 못해도 일주일에 2권은 읽는다. 1년으로 치면 약 100권 가까이 된다. 책을 대하는 내 모습만 봐도 여행이나 영화와는 다르다. 남들이 좋아한다고 무조건 따라 하지 않는다. 여행이나 영화는 남들이 좋다고 말한 곳을 가보고 또 보게 된다. 여행이나 영화를 보는 안목이 없다고 해야 될까? 주관이 없다고 해야 될까?

    그런데 책은 그렇지 않다. 베스트셀러에 그렇게 민감하지 않다. 오히려 베스트셀러를 기피한다.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들이 스테디셀러가 되는지 두고 본다. 그 책들이 나중에 스테디셀러가 되면 그때 비로소 관심을 갖는다. 스테디셀러가 됐다고 그 책을 바로 사지는 않는다. 왜냐면 그렇지 않아도 읽고 싶은 책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베스트셀러를 바로 읽지 않는 데는 다른 이유도 있다.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들은 대부분 새 책들이다 보니 중고가 없어서 가격이 부담스럽다. 도서관에서 빌려 보려고 해도 대출예약 건수가 20건 이상이니 빌려서 읽기도 힘들다.

알라딘 장바구니에 담아놓은 책들


    나는 어쩌다 책을 좋아하게 됐을까? 사실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했던 건 아니다. 동화전집이나 위인전 등 여러 전집들이 있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더 읽고 싶어 하지도 않았고, 책에 특별한 관심을 표하지도 않았다.

    처음에는 도피였다. 대학교 생활이 녹록지 않으니 현실을 도피하려고 책을 읽었다.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는 게 힘들었다. 고등학교까지는 수학을 좋아한다고 생각했고 곧잘 했다고 생각했는데, 대학에서 배우는 수학은 완전히 달랐다. 학교 공부 말고 다른 걸 하면서 죄책감이 덜한 게 책이었다. 게임을 하면 죄책감이 심하지만, 그 시간에 책을 읽으면 죄책감이 덜했다. 공부는 아니지만 뭔가 인생에 도움이 되는 걸 하고 있다는 막연한 생각 때문이다.

    그렇게 공부할 시간에 조금씩 책을 읽었고, 그러다 책만 읽었다. 책에서 만나는 다른 세상이 좋았다. 조금 과장해서 책을 읽으면 여행하는 기분이 든다. 현실을 피해 책으로 도망가고 있었다. 무턱대고 책으로 도피했던 게 지금까지 이어졌다.


    그렇게 읽다 보니 머릿속에 정리되지 않은 여러 가지 생각들이 맴돌았다. 학교 공부도 점점 어려워지고 학교 생활은 점점 더 힘들어졌다. 졸업 후 하게 될 생활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아졌다. 그러다 문득 작가라는 직업을 생각해봤다. 책을 좋아하니까 글 쓰는 것도 좋아하지 않을까라는 미친 생각을 했다. 책을 그렇게 읽었으면서 이런 멍청한 생각을 했다. 책 읽는다고 모두가 다 통찰력이 생기지는 않는다. 그것도 모르고 글쓰기에 들어갔다. 당연히 재미가 없었고, 재미가 없으니 하지 않았다. 글쓰기를 위해 여러 번 다짐하고 여러 번 시도했지만, 모두 물거품이었다. 내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른 모습을 상상하면서 열정을 이끌어냈지만 잠깐이었다. 실천이 없으니 허황된 목표였고, 망상이었다.

    '브런치북'에도 여러 번 응모했다. 그런데 제대로 심사받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브런치북' 심사 기준인 15편 이상을 쓴 적이 없기 때문이다. 작가에 대해 생각한 건 24살부터다. 근데 벌써 28살도 끝나간다. 여태까지 쓴 글을 다 합쳐도 10개가 채 되지 않을 거다. 5년간 10개면 1년에 2개를 쓴 꼴이다. 이러면서 작가? 작가 같은 소리 하고 있다.

    지금은 초조함을 많이 느낀다. 이 나이 먹고 대학교 졸업장도 없고, 기술도 없고, 남들 다 있는 스펙 하나 없고, 정말 깨끗한 백지상태다. 책만 읽어서 머리에 생각만 많고 정리도 안되고, 망상만 많아졌다. 그래도 간절함이 통하길 바란다. 간절한 마음으로 솔직하게 쓰니 글쓰기도 나름 재미있다. 조금은 즐길 수 있겠다. 베스트셀러가 되는 상상을 지금이라고 안 하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 한다. 이런 상상 없이 내가 왜 글을 쓰겠는가. 하지만, 더 이상 그렇게 망상만 하고 앉아있을 수는 없다.

    아무튼 나는 글쓰기라는 곳으로 들어왔다. 뭔지도 모르고 생각도 없고 그냥 무턱대고. 앞으로 내가 겪은 일들을 바탕으로 솔직하게 써보려고 한다. 간절함과 진정성이 통하길 바란다. 내가 설득되지 않은 말은 절대 하지 않겠다. 그건 가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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