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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 and R Mar 11. 2021

죄는 집착으로부터

『천국과 지옥의 이혼』 - C.S. 루이스

한 줄 평: 하나님을 알아가는 기쁨이 하나님을 대체하지 않기를...


천국과 지옥이 언제 결혼했지?

    '천국과 지옥의 이혼'이라니... 제목부터 신선하다. 이혼이라는 단어를 쓰려면 결혼이 전제되어야 한다. 천국과 지옥이 언제 결혼을 했단 말인가? 결혼은 하나가 되는 걸 뜻한다. 천국과 지옥이 하나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 C.S. 루이스는 천국과 지옥이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여긴 것인가? 하나가 될 수 있지만, 천국과 지옥은 하나가 되어서는 안 되기에 이혼이라는 단어를 쓴 건가? 이 책의 머리말을 읽어보면 C.S. 루이스가 책 제목을 《천국과 지옥의 이혼》이라고 지은 이유를 알 수 있다.


    우선 C.S. 루이스는 천국과 지옥이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여기지 않았다. 즉, C.S. 루이스는 애초에 천국과 지옥의 결혼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책 제목에 이혼이라는 단어를 쓴 이유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천국과 지옥의 결혼》이라는 책 때문이다. C.S. 루이스는 천국과 지옥이 하나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대의 산물이자 상대주의의 산물로서 《천국과 지옥의 결혼》이라는 책이 나온 것이다. 윌리엄 블레이크의 책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C.S. 루이스의 책 머리말을 통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음을 추측해볼 수 있다. '선과 악은 뚜렷하게 구분할 수 없다. 악도 조금만 조정되면 선이 될 수 있다.' 즉, 선과 악은 한 끗 차이고 선과 악은 결혼한 것처럼 하나라는 것이다. 어떻게 바라보냐에 따라 선이 될 수도 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C.S. 루이스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이런 생각을 부정하고 선과 악의 뚜렷한 대비를 보여주기 위해 이 책을 썼다. 결혼할 수 없는 두 대상인 천국과 지옥을 억지로 결혼시켜버린 윌리엄 블레이크와 상대주의의 논리를 전면 부정하기 위한 책이 바로 《천국과 지옥의 이혼》이다.




책의 배경 설명

    이 책은 공상 문학이다. 사후 세계를 묘사한 작품으로 천국과 지옥이 이 책의 배경이다. 하지만, C.S. 루이스가 이런 형태의 사후 세계를 믿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C.S. 루이스도 이를 방지하기 위해 순전한 상상의 산물이라고 머리말에서 밝히고 있다. (단테의 신곡이 떠오르긴 하네)


    누구인지 뚜렷하게 밝혀지지 않은 주인공이 꿈에서 사후 세계를 경험한 후 그 꿈을 회상하며 기록한 형식으로 되어있는 작품이다. 꿈이라는 건 이 책 마지막 장인 14장에서 밝혀진다.


    이 작품은 지옥으로 묘사되는 곳에서 시작된다. 거기에는 유령들이 사는데 사실 그들은 자신들이 유령이라고 생각하지 못한다. 그들 중에서 원하는 사람들은 버스를 타고 천국으로 갈 수 있다. 하지만 간다고 끝이 아니다. 그곳에서 천국을 받아들인 사람들 즉, 자기를 부인하고 완전하게 하나님께 의지하는 사람들만이 천국에서 살 수 있다. 끝내 자기 부인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은 다시 지옥으로 가게 된다.




천국은 현재 우리의 물질세계보다 더 물질적인 세계다

    우리가 흔히 착각하는 것이 있는데 천국은 죽고 나서 우리의 영혼이 슝~ 날아가서 살게 되는 영적인 곳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톰 라이트를 통해 기독교의 궁극적인 희망이 이 땅에서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이고, 그 나라는 영적인 곳인 동시에 완벽하게 물질적인 곳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성경은 예수님의 부활이 첫 열매이고,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우리도 예수님과 같이 부활할 것을 약속하고 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단순히 영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먹고 마시기도 하셨다. 동시에 벽을 통과하신 것처럼 공간에 제약을 받지 않는 몸이셨다.


    이처럼 천국이 단순히 영적이기만 한 곳이 아니라 물질적인 곳이기도 하다는 것을 C.S. 루이스 또한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이 작품을 보면 아직 천국을 받아들이지 못한 유령들(주인공 포함)은 천국에서 투명하게 묘사된다. 그리고 아주 연약한 풀 위를 걷는 것조차 그들에게는 가시밭길을 걷는 것처럼 큰 고통으로 다가온다. 유령들의 몸은 얼룩이라고 묘사된다. 꽃이 주인공의 발을 뚫고 솟아있다고 묘사된 부분도 있다. 만약 이런 천국에서 비가 오거나 벌레가 유령들 얼굴로 날아들기라도 한다면 유령들에게 그보다 더한 재앙은 없을 것이다. 왜냐면 그대로 유령들을 뚫고 지나가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유령들은 천국에 있는 작은 풀 조차 휘게 할 수 없을 정도로 무에 가까운 존재들로 묘사된다.


    또 다른 등장인물은 '견고한 영들'인데, 이들은 천국을 받아들인 사람들이다. 동시에 그들은 유령들이 천국을 받아들일 수 있게 돕는 역할을 한다. 그들은 풀을 휘게 할 수도 있고, 벌레나 비를 무서워할 필요가 없는 존재들이다. 천국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엄청난 빛을 내뿜으며 동시에 완벽한 몸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대부분은 유령들과 견고한 영들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견고한 영들은 유령들이 집착하고 있는 그 대상을 내려놓게 하기 위해 설득한다.




눈치채기 쉬운 집착

    C.S. 루이스는 이 책을 통해 인간들의 집착이 죄의 근원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결국 예수님이 말씀하신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것, 그것이 천국을 받아들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사람들이 집착하는 대상은 다양하다. 자녀, 남편 혹은 부인, 자존심, 일 등 우리가 공감할 만한 대상들이 이 책에 묘사되어 있다. 유령들은 계속 그 대상을 추구한다. 그 대상으로 자신의 마음을 채우려고 한다. 견고한 영들은 그걸 버리라고 말하지만, 유령들이 집착을 놓는 과정은 매우 힘든 과정이다. 유령들에게는 집착하는 대상이 인생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간혹 견고한 영들의 말을 받아들인 것처럼 보이는 유령들도 있다. 하지만, 자기가 집착하는 것을 얻기 위한 도구로 천국을 받아들이려고 한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제가 뭘 하면 되죠? 어서 말해 보세요. 빨리 시작해야 아들도 빨리 만날 수 있을 거 아니에요? 전 준비됐어요."

    "하지만 팸, 그런 마음가짐으로는 이 과정을 시작할 수 없다는 걸 모르겠니? 너는 하나님을 단지 마이클을 만나기 위한 수단으로만 취급하고 있어." (121)


    자녀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지 못하고 하나님을 도구화하려는 어리석은 유령이다. 어리석다고 말했지만, 이런 집착에서 자유로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눈치채기 어려운 집착

    이 책이 특별히 좋았던 건 우리가 눈치채기 어려운 집착까지 예리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읽는 족족 찔리면서 C.S. 루이스의 놀라운 통찰에 취했다. 앞서 이야기한 자녀에 대한 집착은 공감은 많이 되겠지만, 겉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눈치챌 수 있다.


    내가 취한 부분은 눈치채기 어려워 자기기만적인 집착의 묘사다. 남들도 속이지만 동시에 자신도 속이는 그런 대상들을 예리하게 밝히고 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는 데 지나치게 관심을 기울인 나머지, 주님이 존재하는 일 외에는 다른 할 일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기독교를 전파하는 데 너무나도 몰입한 나머지 그리스도는 아예 쳐다볼 생각도 하지 않는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잃어버린 자선 사업가. C.S. 루이스의 말을 빌리면 이런 집착은 '덫 중에서도 가장 교묘한 덫이다.'


    이 부분에서 폭풍 공감을 했다. 나는 기독교 서적을 읽고 리뷰를 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성경과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하는 기쁨을 누린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더 솔직하게 생각해 보면 하나님한테는 관심도 없으면서 하나님에 대해 말하는 데만 몰두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가 기독교 서적 리뷰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하나님을 사랑해서일지 모르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님'보다 '하나님에 대해 말하는 것'을 더 사랑하는 쪽으로 변질되지 않았나 싶다.


    결국 우리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고 신뢰하려면 이런 집착들을 깨닫고 내려놔야 한다. 그런 집착들이 비록 하나님과 관련이 있는 일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하나님과 관련이 있는 일이라고 해서 그 일이 하나님을 대체하도록 놔둬선 안 된다.




예리함 그 자체

    C.S. 루이스의 책 중에 내 만족을 충족시키지 못했던 책은 없지만, 그중에서도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를 특히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인간의 본성과 죄성을 예리하게 짚어주기 때문이다. 이 책 또한 인간의 마음 깊숙이 숨겨져 있는 모습을 예리하게 찌르고 드러내는데 탁월한 역할을 하는 책이다. C.S. 루이스의 예리함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을 몇 개 소개하고 책 리뷰를 마치겠다.


    천국을 받아들여서 견고한 영이 된 아내와 아직 유령인 남편 사이의 대화 내용 중 남편의 말이다.

    "집에 남은 마지막 우표로 자기 어머니한테 편지를 쓰게 해 주었는데, 나도 편지를 쓰고 싶어 한다는 걸 알았으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구. 나는 아내가 그 일을 마음에 담아 둘 거라고, 그래서 내가 얼마나 이기적이지 않은 사람인지 기억해 줄 거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150)

    집에 우표가 하나 남았는데, 자기도 편지를 쓰고 싶었지만, 아무 말 하지 않고 아내에게 양보했다는 것이다. 그 일을 통해 자기가 이기적이지 않은 사람이라는 걸 아내가 알아주길 바란 것이다.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는 부분이다. 이렇게 사소한 선행조차 누군가 알아줬으면 하는 게 인간 마음이다. 취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루이스의 예리함을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부분은 사장과 직원의 대화에서다. 생전에 사장이 직원보다 더 괜찮은 사람이었던 것 같다. 사장은 남에게 피해도 끼치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살았다. 반면에 직원은 살인자다. 그런데 사후 세계에서의 둘의 위치는 예상과는 다르다. 사장은 아직 유령인데 반해 살인자인 직원은 견고한 영이 됐다. 그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는 사장은 따지기 시작한다. 사장이 따지는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난 자네와 내 처지가 정반대가 될 거라고 생각했어. 난 평생을 반듯하게 살아왔어. 난 내 권리를 찾고 싶을 뿐이야. 엄청난 자비를 베풀어달라는 게 아니라구." (42~43)

    이때 직원의 말이 아주 예리하다. 직원의 말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사장님 스스로 괜찮게 살아왔다는 그 생각만 떨쳐버리시면 됩니다. 저는 여기서 제 권리를 찾은 게 아닙니다. 저는 살인을 저지르고 난 뒤부터 저 스스로에게 기대를 할 수가 없었어요. 스스로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없다는 생각, 그 생각이 모든 것의 출발이에요. 지금 당장. 엄청난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구하세요." (41~43)

    결국 사장이 직원보다 바르게 살아왔지만, 자신의 그 저주받을 선행이 천국을 거부하게 만드는 장애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바리새인처럼 말이다.




마무리

    좋다. 그리고 설렌다. C.S. 루이스의 책을 다 읽지 않았다는 게 설렘으로 다가온다. 넷플릭스에서 아주 흥미진진한 드라마를 봤는데 시즌 2가 아직 남아있는 기분이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를 시작으로 『순전한 기독교』, 『고통의 문제』 그리고 『천국과 지옥의 이혼』까지. 모두 예리하고 읽는 이로 하여금 스스로의 악한 모습을 깨닫고 깊은 사색에 빠지게 만드는 훌륭한 책이다.


    하지만 더불어 주의할 점이 하나 떠오른다. 이 책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고 내 죄악된 모습을 깨닫는 기쁨이 넘치지만 그 기쁨이 하나님보다 우선되어서는 안 된다. 책을 읽는 기쁨도 하나님보다 우선되면 결국 집착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오직 하나님만을 진심으로 바라고 싶다. C.S. 루이스의 책을 읽는 기쁨이 하나님을 대체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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