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축이 사라진다면

당신의 삶에서 시간을 빼본 적이 있나요?

by 달하

며칠 전 특정 단어들과 "어린이"라는 단어를 조합해서 사용하는 것에 "마음이 불편하다"는 내용의 글을 보았다.

주식에 어린이란 단어를 조합해 주린이.

부동산에 어린이라는 단어를 조합해 부린이.

누군가는 "부린이"라는 말을 그저 본인의 지식이나 경험이 적다는 "겸손"의 의미 정도로 사용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 어린이는 미숙하다는 의미로 그들을 얕잡아 보는 태도가 담겨있다면, 또 다른 누군가는 충분히 불편할 만하다.




어린이는 미숙한가?

어린이가 시간이 지나 어른이 되면 완숙하다고 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내가 나의 아가보다 완숙한가?

우리가 기준 삼기 좋아하는 효율성과 경제성의 측면에서 아가와 나를 단순히 비교해보면, 그저 나는 아가보다 무언가를 많이 빨리 해낼 수 있으니 효율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의 의식 저변에 비교의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는 "효율성"은 시간의 측면에서 온다.

하지만 아주 재미있는 사실은, 우리는 우리의 삶이 놓인 좌표에서 선택적으로 시간의 축을 뺄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곳, 또는 우주를 우리는 3차원의 공간으로만 말할 수도 있고, 여기에 시간을 더해 4차원의 시공간으로도 표현할 수 있다.

시간의 축을 더할지 말지는 우리의 자유이다.

(우리가 가져다 쓰기 좋아하는 과학에서도, 현대 물리학자들도 시간이 실재하네마네, 차원이 더 있네 마네하며 각자의 생각들을 즐겁게 나누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에서 시간의 축을 없앤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사실, 변하는 것은 없다. 내 생각만이 자유롭게 변할 뿐이다.

아가가 시간이 흘러 자라면서 더욱 성숙해지겠지라는 생각은 "아가는 지금 자체로 완전하다"로.

따라서 미래에 더욱 온전하고 완전한 사람이 되길 기대하고 있는 나 역시도 지금 자체로도 완전하다로.

생각의 내용이 변할 뿐이라 한편 안심이다.


또한 생각 속에서 시간의 축이 사라지면 재미있는 생각들이 나타날 공간이 생겨난다.

"시간이 지나니 늙는다"가 차지하고 있던 공간에 "그렇지 않을 수 있겠다"란 생각이 슬쩍 고개를 들고, "함께 한 시간이 오래되었으니 사랑이 식었겠지"가 "그렇지 않을 수 있다"로 대치된다.


새로운 생각들은 우리를 더욱 재미있는 곳으로 이끌 것임은 자명하며, 이 모든 것은 우리의 자유로운 선택이다. 아마도 나는, 그리고 우리는 새로운 생각들이 나타날 공간을 의식하고 이것을 넓혀가는 일에 조금 더 마음을 담아야 되지 않을까?


시간의 축이 사라진 곳에서 우리들의 변화된 시선이 서로에게 가 닿으며, 새로운 면들을 만들어 내기를 즐겁게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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