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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하 Apr 15. 2024

시간이란 말이지

눈에 불이 번쩍 들어와 함께 에세이레터를 발행하는 ANDA 친구들에게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멋진 묘비명이 생각났거든요.

- 똑똑. 제가 죽거든 묘비명을 '시간과 생각의 비밀을 찾던 자, 이곳에 잠들다.'라고 해주세요.

제 말에 이혜는 본인 것은 '사랑을 말하던 자. 사랑으로 돌아가다.'라고 해달라고 화답했습니다. 꿍짝.

시간이 지나고 그때 남겨뒀던 카톡 메시지를 다시 보며 시간과 비밀을 '찾던 자'라기 보다 '찾은 자'라고 할걸. 하고 있네요. 찾을 수 있을까요?


저는 시간이 궁금했습니다.

시간은 존재하는 것일까?나, 어떻게 현존할 수 있을까? 같은 것들이 말이죠. 어제와 내일, 과거와 미래는 무얼까? 같은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습니다. 제 궁금증의 시작은 첫 명상수업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명상 선생님 '향기'가 이렇게 말했어요. '지금 이 순간만이 있습니다. 그러니 현재에 머무세요.‘라고요. 빌 게이츠도 한다는데 나도 해볼까라고 가볍게 시작한 명상 수업에서, 최고 난제에 맞딱드렸습니다. 선생님에게 묻고 싶었죠.

선생님, 지금 이 순간에 어떻게 머무는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저는 지금 이 순간에 머무르려면, 시간이 머물 수 있는 거야?라는 질문부터 해결해야 하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일단 질문을 던지자 생각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생각을 이리저리 궁글리다 보니 오늘이 기억이 되면 어제이고, 오늘을 상상한 것이 미래이며, 어제나 오늘은 사람들이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명명한 것에 지나지 않더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쿨한 척 한 문장으로 썼지만 그 생각은 제가 머리를 감을 때나 잠들기 전, 새벽시간 노트를 끼적일 때도 찾아왔습니다. 너무 바빴습니다. 병원에서는 일해야지, 집에 오면 아가 돌봐야지, 틈틈이 시간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지 말이죠!


고군분투해서 시간의 비밀을 알았을 때, 저는 유레카를 외쳤고 노트에 크게 적었습니다. 나는 이제야 알겠다. 야-호!

뒤늦게 알았지만 '과거와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명제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했더군요. 미리 검색부터 해볼 걸 싶었습니다.

시간이 뭐라고 이렇게나 고민했을까 싶었는데, 이때가 제 삶의 전환점이었습니다. 메가톤급으로요. 보통은 생각을 반추해 보아야 이게 나한테 영향을 미쳤구나 하게 되는데, 즉 보통은 아는데 시간이 걸리는데, 이 '생각'은 즉시 알아차려졌습니다. 느낌이 좀 다르더라고요.

시간이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로 선형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내는 것이 정말 오늘뿐이구나라는 생각이 몸에 확 와닿으니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내가 살아내는 시간, 그 순간과 찰나가 갖는 밀도가 이전과는 다르게 느껴졌어요. 자연스럽게 자신이 '하루 단위'에 얼마나 만족했는지가 매우 중요해졌습니다. 가능하면 순간의 단위까지도요.


삶에서 '흐르는 시간의 축'이 사라지는 것은 재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 생각이 좀 더 자유로워졌달까요. '미래'에 더욱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지라는 생각이 사라지자, 당연하게도 지금 자체로 괜찮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늙지'나 '함께 한 시간이 오래되면 사랑이 식어' 같은 문장에도 '그렇지 않을 수 있겠는데'라는 대척점이 생겼습니다. 내가 시간의 흐름을 허용함으로써 생각했던 확실한 결과 같은 문장들에 반감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당연해서 한 치의 다른 극을 허용하지 않았던 사유들이 점점 힘을 잃었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 할 공간이 생겨났습니다. 갇혀있던 생각들이 훨훨 나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모든 사람의 시간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내가 시간에 부여한 의미만이 달라졌는데도 내 삶이 움직이는 모습이 달라졌습니다.


하지만 이 시간의 축은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완전히 사라지지 않더라고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시간이 지배하는가 싶을 정도로요. 그래서 저는 매일 삶에서 선형의 시간을 없애려 애씁니다. '내가 과거를 이렇게 후회하고 있구나, 내가 미래를 이런 생각으로 불안해하고 있구나.'하고 의식하고 애써야 하지만, 이렇게 힘써보는 것이 내가 만들어 논 유리장벽을 깨고 나가게하는 몸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에크하르트 톨레는 책 <에크하르트 톨레의 이 순간의 나>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과거와 미래가 필요하지 않을 때에는 언제든 과거와 미래에 대해 무관심해지는 연습을 하세요. 일상생활 속에서 가능한 자주 시간의 차원에서 한 걸음 물러서보세요."(p.44)


지금 이 순간, 오늘만이 내게 허용된 날이라는 이 느낌은 살아가며 자연스럽게 왔다가 또 갔다가 하겠지요?

오늘도 유레카를 외쳤던 그날의 느낌을 떠 올리며 붙들어봅니다. 시간이라는 그 공공연한 비밀을 말이지요.

당신이 알고 있는 시간의 비밀이 있나요?

여기, 시간의 비밀을 찾던 자로 끝날 묘비명에 한숨짓고 있는 저에게 시간이 당신에게만 속삭인 이야기를 들려주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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