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함을 알려준 사람

by 달하

다정함을 알려준 사람

언제부터였을까?

스스로에게 다정해진 것은.

10대때는 스스로에게 정이 없었다. 과체중에 여드름이 빼곡한 얼굴에는 쉽사리 정을 주기가 어려웠다.


살을 빼면 내가 혼자 좋아하던 그 친구가 나를 좋아하게 되지 않을까?

살을 빼면 삶이 좀 더 드라마틱하고 재미있어지지 않을까?라고 기대하며,

수능을 마치고 10 킬로그램을 뺐다.

놀랍게도 삶은 살을 빼기 전이나 후나 별 차이가 없었다.

어느 드라마에서처럼 좀 더 즐겁고 다이내믹한 일들은 살을 빼도 벌어지지 않았다.

체중을 감량하기 전에는 살을 뺀 이후의 삶을 상상이라도 해볼 수 있었는데, 이제 상상해볼 수 있는 것도 없다고 생각하니 조금 슬퍼졌다. 살을 괜히 뺐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내 삶이 이렇게 지루하다니, 더 이상 살을 핑계 삼을 수도 없었다.


20대에는 공부를 하기에 바빠, 자신을 포함한 그 누구에게도 다정해질 틈이 없었다. 그렇다고 비정하거나 무정하지도 않은 그저 그런 삶들이 이어졌다.


그렇게 20대가 가고 30대 초반에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이 사람에게는 초능력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나의 단점을 단점으로 보지 않는 능력이었다.

하루는 "왜 늘 그렇게 하체를 꽁꽁 가리고 다녀?"라고 물어,

엄마가 "너는 하체비만이니까 하체를 잘 가리고 다녀야 돼."라고 했다고 대답했던 적이 있었다.

피식ㅡ 그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지어졌다.


"하체 비만이어도 안 가리고 다녀도 되는데."


내가 기대했던 "너 하체비만 아닌데."라는 남자 친구로서의 모범 대답은 아니었지만, 내 단점을 단점으로 보지 않는 그의 초능력이 한 마디 말을 타고 나에게도 전달되는 것 같았다.


이후 그와 결혼을 하고, 우리의 작은 사람인 18개월 아기와 함께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지금, 나는 스스로에게 또 타인에게 퍽 다정해졌다. 그리고 이제는 그의 말 한마디가 내 안의 다정함을 일깨우는 마법이었음을 어렴풋이 느낀다. 그리고 또한 나의 말 한마디, 댓글 하나, 카톡 메시지 한 개가 다른 이의 다정함을 일깨울 수 있는 마법이 될 수 있음을 알고 있다.


내가 느꼈던 느낌이 당신에게도 전달되길.


다정함의 물결이 거대히 넘실거리는 그곳에서, 그 물결에 몸을 맡겨볼 수 있게 되길 상상해본다.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아무래도 좀 더 신나는 삶 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