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엠 그라운드, 자기소개하기
벌써 기억에서 흐릿해진 우리들의 첫 만남을 생각하면, 서로를 경계하던 낯선 얼굴들이 떠오른다. '범상치 않은 기운이 흐르는군, 도대체 어디서 뭘 하다 온 사람일까'. 서류면접 후 세 번의 인터뷰, 그리고 그 사이 치러진 시험까지 생각하면 적어도 다섯 번의 관문을 통과하고 만난 사람들이었다. 나 또한 그 문턱을 넘어 이 자리까지 왔지만, 나를 제외한 모두가 대단한 사람들 일 것만 같고, 나 혼자 왜소해진 것만 같은 느낌에 숨 죽인 채 주위만 둘러보던 기억이 난다.
내가 기억하는 동기들의 첫인상은 대부분 2011년 2월 1일, 그러니까 우리의 입사일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완성되었다. 그날은 우리의 첫 발표 일정이자, '자기소개'를 주제로 한 발표가 있었던 날이기 때문이다. 다듬어지지 않은 파워포인트 실력으로 한 껏 멋을 낸 서로의 장표를 보는 것도 흥미로웠지만, 그 속에 숨겨진 재기 발랄한 아이디어를 찾아내는 것이 여간 재밌는 일이 아니었다. 그중에서도 단연 일등은 가브리엘로 불리는 민영 오라버니의 발표였다. 입사서류 영문명 란에 '가. 브. 리. 엘'이라는 성당 세례명을 적어, 졸지에 유학파 인양 회사에서 내내 영어 이름으로 불리게 된 우리의 최고령 동기. 수줍은 말투에 워낙 말수가 적어, '저 사람은 무슨 말을 할까'하고 모두를 주목시킨 장본인이었다.
"저는 BMW 같은 신입사원이 되겠습니다!"
이게 무슨 소린가. 평소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다른 오라버니의 우렁찬 목소리도 놀라웠지만, 난데없이 BMW라니.
"B, 변화하자. M, 미치자. W, 확 뜯어고치자!"
저 세 문장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까. 남일 같지 않아, 더욱 정이 가는 발표였다. 평범한 나를 어떻게든 면접관 앞에서 기억에 남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우리 모두 부단히 고민해봤기 때문이다. 민영 동기님의 노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이 밖에도 우리 사이에서 끊임없이 회자되는, 주옥같은 자기소개들이 있다. 우진이의 언어유희가 돋보이는 '오라클의 미라클맨', 재전이의 '고객'과 '니즈(Needs)'가 백만 번 들어가는 자기소개, 사랑스러운 창원 소녀 경아의 '따뜻한 시골 여자, 따시녀' 이야기, 그리고 술자리에서 더욱 환영받던 보람이의 발랄한 인사법 '정. 보. 람. 입니다-'가 바로 그것이다. 다들 하나 둘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아 기르고 있지만, 우리는 아직도 서로를 처음 만난 그 순간의 모습들을 더 진하게 기억하는 것 같다.
약 1년 여 간의 교육 기간이 끝날 때 즈음, 우리는 서로의 첫인상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달라도 너무 달랐다고. 세상에 별난 아이들을 다 불러다 모아놓은 듯, 정말 제각기 유별나다는 것이 우리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이 말인즉슨, 다들 본인조차 평범치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물론 서로를 이해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다름을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를 존중해주면서, 우리는 나름 사회인으로의 멋진 첫걸음을 내딛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