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에는 집에서 재밌는 영화 한 편을 고르는 데에 시간을 들인다. 요즘엔 좀처럼 집중되는 드라마나 영화를 찾기가 왜 이리 힘든 지 재미진 영화 한 편에 위스키 한 잔 하기가 왜 이렇게 어려운 걸 까.
매일 밤 한참을 리모컨을 정신없이 눌러댄 덕에 드디어 며칠 전 흥미진진한 드라마 한 편을 발견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보는 중이다. 덕분에 한파주의보가 울리는 추운 겨울 방구석에서 술 한잔 즐기는 재미가 쏠쏠하다.
얼마 전에 글렌피딕 15Y DE를 한 병 들여서 히스 씨와 한 잔씩 기울이곤 한다. 글렌피딕은 기분이 좋아지는 술이다. 아니 항상 컨디션이 좋은 날 마셔서 그런 걸까.
구태여 위스키를 찾아보지 않아도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이름이라는 것은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그만큼 사람들이 많이 찾아 마신다는 거고, 호불호가 적다는 거다.
실제로 내 주변에도 위스키를 즐기지 않는 사람들임에도 글렌피딕 한 잔쯤은 어디선가 맛본 거 같다고 하거나 한 잔 마셔본다면 꼽는 대중성이 높은 위스키이다.
안타깝게도 글렌피딕은 이제야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기에는 그 역사가 꽤 깊기에 나의 추억을 기록하기에 앞서 몇 자 가져와야겠다.
사슴모양의 로고를 갖고 있는 글렌피딕은 게일어로 사슴(fiddich), 계곡(Glen)이라는 뜻으로 스페이사이드 지역에 자리하고 있으며, 1886년 윌리엄 그랜트가 더프타운에 증류소를 세운 것을 시작으로 1887년 크리스마스부터 위스키를 생산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처음 9명의 자녀들과 시작하여 현재에도 가족기업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창업자의 5대손이 이어가고 있다.
1920년 미국의 금주법 시대에 다른 곳과 달리 증류기를 추가 구입하고 설비를 늘린 일화는 글렌피딕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로 이로 인해 금주법이 폐지되고 급격하게 싱글몰트가 인기를 끌면서 품질은 하락하고 가격이 높아지는 다른 싱글몰트와 달리 품질과 가격을 방어함에 따라 위스키 시장의 점유율을 크게 높일 수 있었다고 한다.
타 싱글몰트들에 비해 가성비가 좋다고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 아닐까 싶다. 또한 글렌피딕은 오크통을 다른 증류소에 팔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독병을 즐겨 찾는 우리에게는 조금 아쉽기도 하고 그렇기에 더 특별하게도 느껴지는 이유이다. 그러니까 글렌피딕은 독병을 찾기 힘들다.
글렌피딕에 대한 추억이라 하면 히스 씨의 생일날을 잊을 수 없다. 사치스럽다고 할 수도 있고, 하이볼 러버인 우리에게는 자연스러운 주문일 수도 있다.
어찌 되었던 하이볼의 찬사를 그치지 않는 우리들도 글렌피딕 21 하이볼은 처음이었는데, 사실 그동안 먹은 하이볼들을 생각한다면 그리 호들갑을 떨 일도 아니다.
모든 걸 떠나서 이 날은 손에 꼽을 정도로 즐거운 날이었던 것이다.
단지, 그날 맛봤던 몇 가지 칵테일과 위스키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맛이 글렌피딕 하이볼이었고, 역시나 위스키러버인 우리에게는 하이볼이 입맛에 잘 맞았다.
당연히 그만큼 좋은 기주로 만들었기에 그만한 풍미가 나온 거겠지만, 어찌 되었든 이 한 잔은 우리에게 그날의 추억을 떠올리는 하나의 매개체역할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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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렌피딕 또한 타 브랜드와 마찬가지로 12년부터 15, 18, 21, 30년 등 다양한 라인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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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의 글렌피 딕 21년 그랑 리제르바는 프리미엄 라인인 'Grand Series'에 속하는 제품으로 오크통에서 21년 숙성 후, 몰트 마스터가 직접 디켄딩 작업과 약 4개월의 럼 캐스크 추가 숙성을 진행한다.
럼 캐스크의 영향을 받아 글렌피딕의 기본 원액의 청량 한 과일에 럼 캐스크의 열대 과일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프루티 한 볼륨감이 극대화되는 특징으로 생강, 무화과, 바닐라 등을 느낄 수 있다.
드디어 돌아와 독병이 없다는 사실을 충분히 달래어주는 한 병을 꼽아보자면 글렌피딕 15Y 디스틸러리 에디션이다. 면세점 한정판으로 나왔는데, 가성비 좋다는 소문에 지금까지도 찾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여기에 들리는 얘기를 더하자면 글렌피딕 15Y 디스틸러리 에디션이 출시된 시기가 코로나19의 여파가 완연하던 때라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나중에 입소문을 통해 알음알음 아는 사람들이 늘었고, 결국 희소성이 더해져 술쟁이들의 애를 태우는 위스키가 되었다는 일화이다.
원래도 맛이 좋은 위스키의 DE 51%라니 위스키 애호가라면 궁금할 수밖에 없다. 위스키를 어느정도 아는 사람이라면 글렌피딕이 51%라는 것만 들어도 궁금증을 자아낼것이다.
게다가 가격도 10만 원대 초반으로 가성비까지 겸비한 제품이다.
기존 15Y 캐릭터랑은 달라서 호불호가 있다는 평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주 마음에 들어 하는 술이다. 증발량이 좀 있긴 했지만 지금 와서는 보기 힘든 술을 좋은 가격에 구해서 술을 업어온 날 하루종일 기분이 좋았다.
글렌피딕 15Y DE는 버번캐스크와 올롤로소 쉐리오크에 숙성되었다. 그러고보니 나는 버번은 별로 안 찾는 데 버번캐스크는 좋아라 하는구나 싶은 새삼스러운 사실을 오랜만에 일깨워준 위스키이다. 첫 향도 괜찮지만 조금 지나서 올라오는 상쾌한 사과향이 또 기가 막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