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고통받는 사람은

by 달리아

내 삶에서 고통은 여러 얼굴들로 찾아왔다. 크고, 작은 고통이 나를 할퀴고 지나갈 때마다 나는 벌어진 상처를 만지며 고통의 뿌리를 더듬었다. 때로는 죽고 싶을 만큼 힘든 순간들도, 세상에 혼자인 것만 같은 막막하고 아득한 순간들도 있었다. 1년에 가까운 극심한 우울증을 겪으며, 가장 힘들었던 것은 '나 혼자만 그런 것 같다.', '영영 여기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다.'는 단절감과 막막함이었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을 것 같아 마지막 힘을 모아 쳤던 발버둥에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고통을 온몸으로 겪어내어 타인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아는 친밀한 타인들의 연결과 연대 안에서 나는 다시 숨을 쉴 수 있었다. 히말라야 자락에서 만난 이들은, 내가 지금껏 살아온 것과 다른 새로운 삶의 길이 있음을 알려주었다.


길 위에서 나는 '지긋지긋한 고통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지?', '삶과 죽음의 의미는 무엇인지?' 무겁게 가라앉아있던 시간 동안 도저히 답을 알 수 없었던 질문들을 마음껏 던졌다. 그 여정에서 참 많은 존재들을 만났고, 그럴 때마다 이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낯선 이에게도 친절과 미소를 보내는 히말라야 사람들을 만나며, 나는 진정 내가 원했던 것이 고통이 아닌 사랑과 행복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많은 만남과 배움 속에서 내 안의 설움과 얼음들이 녹으며 울음이 쏟아지는 나날들이 이어졌다.


우울증이라는 검은 구름 속에 갇혀있을 때, 혹시라도 내가 여기서 나가게 되면 나와 같은 아픔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무언가를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때는 모든 것이 끝이라고, 출구 없는 어둡고 좁은 방에 묶여있다고 느꼈기 때문에, 이런 날이 진짜 올지 몰랐다.


갇혀있고, 묶여있던 것들에서 풀려나며, 눈과 귀와 가슴이 열리는 만큼 나는 고통과 상처로부터 자유로워지고, 기쁨과 행복의 감각을 되찾아갈 수 있었다. 그 뒤로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오며, 치유의 원형에 대해 고민해보게 되었다. 순간적인 위안과 해소가 아닌, 좀 더 지속적이고 깊은 치유와 변화를 위한 방법을 찾게 되었다.

그러면서 누구에게나 일상에 자궁 같은 방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온갖 자극으로부터 보호받고, 온전히 휴식하며, 거듭날 수 있는 시공간 말이다. 그렇게 두려움에서 힘으로, 상처에서 사랑으로 나아갈 힘을 얻을 수 있는 곳을 그리다 브런치라는 곳을 알게 되었다. 글을 통해 누군가에게 온기와 빛을 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 남기는 글들 안에서 누군가가 쉬어 가며 자신 안의 빛과 사랑을 비춰볼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다. 아래의 시처럼 오래 고통받으며, 아팠던 시간 동안 나의 안팎에서 전해졌던 사랑과 지혜가 누군가의 차갑고 아픈 가슴을 덥히고 위로할 수 있는 온기로 전해질 수 있기를, 마음 모아, 기도한다.




오래 고통받는 사람은 알 것이다

지는 해의 힘없는 햇빛 한 가닥에도

날카로운 풀잎이 땅에 처지는 것을

그 살에 묻히는 소리 없는 괴로움을

제 입술로 핥아주는 가녀린 풀잎


오래 고통받는 사람은 알 것이다

그토록 피해 다녔던 치욕이

뻑뻑한 사랑이었음을


소리 없이 돌아온 부끄러운 이들의 손을 잡고

맞대인 이마에서 이는 따스한 봄


오래 고통받는 이여

네 가슴의 얼마간을

나는 덥힐 수 있으리라


- 이성복, '오래 고통받는 사람은'



02화 고통의 뿌리를 찾아서 (brunch.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