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무표정한 얼굴로 바쁘게 걸어 다니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 역시 습관적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하루 종일 여러 일들에 시달리고, 사람들에게 치인 탓인지 현기증이 일어났다. 지하철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꾸역꾸역 밀려들고 있었다. 내 자리를 찾으려 버둥거리다가, 지하철 창에 비친 짜증스럽고 건조한 내 얼굴을 보았다.
성냥을 그으면, 금방이라도 불이 붙을 것 같은 얼굴이었다. 순간, 어지럽고, 아득한 느낌이 들어,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만 싶었다. 서울이라는 바쁘고 큰 도시 속에서 지하철이나 버스 속을 휩쓸려 오가며 , 나는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바쁘다, 바빠”를 외치며 회중시계를 보고 뛰어다니는 토끼가 된 것 같기도 했다.
'지금 나는 어디로 가고 있나?'
라는 질문이 떠올랐다.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에 들어가고, 취직을 하는 '남들과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가다, 누군가 쓴 대본대로 연기하고 있는 듯한 내가 갑자기 낯설어진 순간이었다.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전까지는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긴 시간 동안 학교를 다녔지만, 나는 내가 어디로 향해 살고 있는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이처럼 휩쓸리듯 살아가는 중에도, 분명한 것은 나는 늘 행복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행복하기 위해 공부를 했고, 좋은 대학과 직장에 들어가고자 했고, 그를 이루기도 했지만,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나뿐 아니라 주변의 사람들도 하나같이 행복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모두들 공허하고, 외롭고, 우울하고, 고통스러운 마음을 안고선, '다들 이렇게 사는 거지'라며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뭔가 잘못되고 있다고 느낄 때마다, 내 안의 깊은 곳에서 '나는 누구이지?',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거지?', '사랑과 행복은 무엇이지?'와 같은 질문들이 올라왔다.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보지만 아무 하고나 나눌 수 없는 삶의 질문들은 계속 나를 붙잡고 늘어졌다. 때론 그 질문들은 나를 버겁고, 힘들게 만들었지만, 더 이상 피하지 않고 그 답을 찾아보고자 길을 나섰을 때 나는 변화했다.
세상은 내게 삶과 사랑을 가르쳐주는 학교가 되었고, 내가 만나는 모든 존재들은 나의 스승이 되어주었다. 내 존재와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고자 하는 간절한 열망은 내게 많은 길을 열어주었고, 온몸과 마음과 영혼으로 마주한 질문들은 나를 담금질하고 성장시켜 주었다.
마음속의 풀리지 않는 모든 질문들에 대해 인내를 가지라.
질문 그 자체를 사랑하라.
지금 당장 해답을 얻으려 하지 말라.
그건 지금 당장 주어질 수는 없으니까.
중요한 건 모든 것을 살아 보는 일이다.
지금 그 문제들을 살라.
그러면 언젠가 먼 미래에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삶이 너에게 해답을 가져다줄 테니까.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에게 주는 충고'
릴케의 시에서처럼 질문에는 인내가 필요하다. 질문을 던진다고 해서, 당장 답을 얻을 수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질문은 내가 익숙하게 가던 걸음을 멈추게 한다. 나라는 믿었던 것에 균열을 내어, 더 넓은 차원의 나를 이끌어낸다. 내 삶에서 내가 품었던 질문들은, 봄비의 두드림처럼, 나를 둘러싸고 있던 작고 좁은 세계에서 나를 깨우는 울림이었다. 그에 귀 기울이며 나아갔을 때, 나는 내 삶에서 잊고 있던 것들을 기억해내고, 잃고 있던 중요한 것을 되찾게 되었다.
이어질 글들은 내 영혼과 마음을 뒤흔들었던 질문들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고통의 뿌리를 찾아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온몸으로 찾아다녔던 순간들에 대한 기록이다.
03화 나는 누구인가? (brunch.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