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by 달리아
단 한 번 침묵하지 않을 수 없던 적이 있습니다. 누군가 내게 이런 질문을 던진 때입니다.
'당신은 누구인가요?'

- 칼릴 지브란




"당신은 누구인가요?"

"당신은 누구인가요?"

"당신은 누구인가요?"


인도 북부, 히말라야 자락의 명상센터에서, 내 앞에 앉은 푸른 눈의 여자는 지치지도 않고, 같은 질문을 내게 던졌다.


"이 oo입니다."

"여자입니다."

"대한민국 사람입니다."


몇 번 대답을 하고 나자, 질문과 대답 사이의 침묵이 점점 길어졌다.


"당신은 누구인가요?"

멈추지 않고 계속 질문을 이어가는 여자가 괜히 야속하고 미워졌다.


"땡!"

서로의 역할을 바꾸라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온 얼굴과 몸에 펀치를 맞다가 휴식 시간 종소리를 듣는 권투 선수의 기분은 바로 이런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복수를 하는 듯한 마음으로 같은 질문을 연이어 던졌다.

"당신은 누구인가요?"

시간이 지날수록 내 앞의 여자의 얼굴도 달아오르며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땡!"

다시금 맑은 종이 울려 퍼졌다. 종소리가 사라지고 나서도 한참 침묵이 이어졌다. 모두가 종을 치는 막대기로 머리라도 맞은 듯, 멍한 얼굴이었다. 갑자기 아득한 두려움이 몰려왔다.


'지금까지 나라고 생각하고 믿고 살아왔던 나는 누구란 말인가?'


나의 이름, 역할, 성격이나 얼굴 생김새, 몸의 모양, 옷, 귀걸이 등 장신구, 직업이나 나이 등은 나의 일부인 것 같긴 했지만, 나를 온전히 설명하고 나타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누구인지 도저히 말할 수도, 알 수도 없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내 온 존재가 산산이 부서지고, 해체되고,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당연히 잘 알고 있다고 여겼던 나 자신에 대해 생긴 의문은 밖으로도 확장되었다. 정말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까? 아니면, 다들 나처럼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며 살아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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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고 굳게 믿고 있었던 것들이 사실 내가 아니고, 결국 나라고 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자 허무한 동시에 모든 틀에서 벗어난 것 같은 자유로운 양가적인 감정이 생겨났다. 나라고만 생각했던 ‘첫째 딸’이나 ‘한국인’ 등의 수식어도 마치 입고 있던 옷처럼 벗겨져 나가는 것만 같았다. 양파껍질처럼 벗겨도, 벗겨도 계속 질문은 이어졌고, 결국 나는 나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당신은 누구십니까?’라는 질문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내면적 질문으로, 그리고 ‘나는 과연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모르겠다.’라는 것이 나의 솔직한 대답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살아오면서, 항상 무언가를 하려고만 했지, 무언가를 하고 있는 나에 대해 궁금했던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당신은 누구인가요?”

라는 질문이 내 안에서 ‘나는 누구인가?’로 바뀌어 계속 메아리쳤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그 질문을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던진다.

"당신은 누구인가요?"





<나>

김광규


살펴보면 나는

나의 아버지의 아들이고

나의 아들의 아버지고

나의 형의 동생이고

나의 동생의 형이고

나의 아내의 남편이고

나의 누이의 오빠고

나의 아저씨의 조카고

나의 조카의 아저씨고

나의 선생의 제자고

나의 제자의 선생이고

나의 나라의 납세자고

나의 마을의 예비군이고

나의 친구의 친구고

나의 적의 적이고

나의 의사의 환자고

나의 단골 술집의 손님이고

나의 개의 주인이고

나의 집의 가장이다


그렇다면 나는

아들이고

아버지고

동생이고

형이고

남편이고

오빠고

조카고

아저씨고

제자고

선생이고

납세자고

예비군이고

친구고

적이고

환자고

손님이고

주인이고

가장이지

오직 하나뿐인

나는 아니다


과연

아무도 모르고 있는

나는 무엇인가

그리고

지금 여기 있는

나는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