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스러운가요? 그렇다면 아주 좋은 일입니다. 혼란은 큰 발전이니까요. 혼란은 특정한 관점에 대한 집착을 깨고, 더 넓은 차원의 경험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표시입니다. - 밍규르 린포체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은 밖으로만 향해왔던 관심을 안으로 돌려 내 삶을 돌아보게 했다. 10대 때는 성적과 등수가 곧 나였다. 학생이었던 때에 나는, 고기의 품질을 매기듯, 성적으로 등급이 나누어졌다. 좋은 성적이 나와도 불안했고, 등수가 떨어지면 괴로웠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도 크게 달라지는 게 없었다. 영어점수나 자격증 등의 나의 스펙이 곧 내가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숫자로 나의 위치를 가늠하고 경쟁하는 것이 너무도 싫었지만 그것에서 벗어나는 법도 몰랐다.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준다.'
고 버젓이 텔레비전 광고를 하는 세상에서, 내가 사는 곳, 내가 입는 옷, 나의 소유물들은 곧 내가 누구인지 보여주는 것이었다. 잘 보이고 싶은 마음으로 신상 구두와 명품 가방 등을 가져보기도 했지만, 물거품처럼 금세 사라지는 느낌들은 더 큰 욕망을 부추겼다. 재미있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거나 게임을 해도, 친구들이랑 신나게 수다를 떨어도,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항상 그림자처럼 알 수 없는 허전함과 깊은 상실감이 따라다녔다. 어딘가에 휩쓸려 무엇인가 통째로 잃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한 공허함을 잊고자 연애도 해보았고. 꿈결처럼 행복하고 달콤한 순간들도 있었다. 하지만 나의 결핍을 채우기 위한 관계는 고통으로 끝날 수밖에 없었다.
때때로, 나는 동굴에서 겨울잠 자는 동물처럼 불도 켜지 않고 어두운 방 안에서 웅크린 체, 내면 깊은 곳에서 울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길은 내가 걸어야 할 길이 아니다.’
하지만 막상 그 길 외에 내가 걸어야 할 길은 없을 것 같았다. 모든 것이 막연하고, 멀고, 또 어두웠다. 남들은 모두 너무도 잘 걷고 있는 길을 걸어가지 못하고 멈춰서 뒤처지고 있는 나 자신이 못마땅하고 원망스럽도 했다. 어른들은 좋은 대학만 가면 이런 모든 것이 해결되고 행복할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대학에 오니 더 치열한 경쟁이 기다리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따지고 싶지만, 모두가 시치미를 떼고 모르는 척 살고 있어서 물어볼 이조차 없었다.
나는 어른이 되기에는 너무도 모르는 게 많았다.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 행복은 어디에 있는지, 삶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지도 못 한 채 나는 어디론가 휩쓸려가고 있었다. 이런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고서는 나는 한 발짝도 못 움직일 것만 같은데, 어떤 보이지 않는 손이 나의 등을 서서히 떠밀어 현실의 벼랑에 밀어 넣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에 저항하고자 하려고 했지만 실제로는 무엇을 하는 시간보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머리 안이 더할 나위 없이 복잡하고 치열해질수록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생각과 관념 속에 갇힌 나날들이 이어졌다. 조그마한 자취방에 누워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서...’
라고 시작되는 가시나무 노래를 수없이 반복해서 들으며 잠이 들기도 했다.
그러다가 가끔은 무엇인가를 상실한 느낌이 굉장히 치명적으로 들었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거지?'라는 질문은, '그럼, 나는 누구이지?'라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은 금세 일상의 분주함에 파 묻혀버렸다. 세상에는 바쁘게 살면서 지켜야만 하는 시간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표는 비단 학교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어떤 나이가 되면 대학을 가야 하고, 결혼을 해야 하고, 또 아이를 낳아 가정을 꾸리고 하는 것들은 실로 누구나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삶의 시간표였다. 내 주변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대로 살고 있었기에 나 역시 당연히 그처럼 살아야 할 것만 같은 압박감이 나를 짓눌렀다.
내가 그에 대해 질문하려 하면 사람들은 내게 그렇게 상식적인 것도 모르냐는 듯 이상한 눈초리를 보냈다. 하지만 내가 진정으로 궁금했던 것은 바로 그 ‘상식적인 것들’이었다. 이를 따르지 않으면 상식적이지 않은 이상한 사람이 되는 사회 속에서 나는 너무도 외로웠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리면서 동시에 그에 의문을 던지며 부모님에게, 친척들에게, 친구들에게 잘 보이기 위한 삶이 아니라, 내 자신만의 삶을 살아내고, 또 만들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이런 나의 생각을 쉬이 실천하지 못했었다. 다수가 걷는 길을 따랐을 때 얻게 되는 안정성을 넘어설 수 있는 용기와 확신이 부족했고, 불만보다 불안이 컸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는 방식을 어정쩡하게 흉내 내었었다. 그러나 좋은 학점과 안정된 직장, 비전이 있는 남자 친구, 보다 예쁘고 매력적인 외모를 얻으려 노력하는 만큼 나는 나에게서 낯선 타인이 되었고 내 삶에서 나는 없어져 갔다. 그렇게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것 같은 나날 속에서, 나는 내 인생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인생을 연기하는 듯 살았다.
나는 혼란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