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이라는 검은 구름

by 달리아

고통은 소나기처럼 한꺼번에 몰려왔다. 여러 생각들과 고민들은 거미줄처럼 나를 옭아매었고, 대학 시절 내내 만나던 남자 친구는 이별을 통보했다.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곳에서 잠시 일을 하기도 했지만, 현실 속에서 나의 이상은 철저하게 무너졌다. 그즈음, 한 고등학교 동창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공부도 잘하고 많은 것을 갖추었던 그녀는 학창 시절 때부터 내게 늘 경쟁상대로 자리 잡고 있었다. 20대 때 죽을 수 있다는 것도, 모든 것을 가진 듯한 이가 삶을 포기했다는 것도 내게 정말인지 너무나도 큰 충격적인 일이었다.


'어차피 죽을 것이라면 삶의 모든 행위에는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라는 질문에 모든 것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나는 도망치듯 교환학생으로 대만으로 떠났다. 하지만 대만 우기의 습한 날씨와 말이 잘 통하지 않는 곳에서의 외로움에 나는 더 우울해졌다. 우울하고 막막한 감정은 늪처럼 나를 삼켜 결국 일상생활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되었다.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극심한 우울증'이라는 이유를 쓰고 휴학을 했다.


한 순간에 바보가 된 듯했고, 죄책감과 무기력감이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 그런 내 모습과 상황이 현실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너무도 끔찍해서 하루의 대부분 잠을 잤다. 점점 꿈과 현실의 구분이 모호해져 갔다. 의미 있고 즐거웠던 일도 서서히 사라지고, 모든 느낌과 감각도 무뎌졌다. 깜깜한 암흑 속, 축축하고 차가운 검은 구름은 나를 조여 와 모든 빛들이 가려지는 것만 같았다. 더 이상 삶에 아무런 희망이 없었다.

Photo by Michał Mancewicz on Unsplash

하루 종일 그렇게 나무토막처럼 누워 전혀 움직이지 않다가, 가끔 단 음식을 한꺼번에 쏟아부었다. 스스로 통제 능력을 완전히 상실한 체 아무 생각 없이 꾸역꾸역 단 것들을 입 속으로 밀어 넣으면서 가끔

‘아, 내가 정말 왜 이럴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때면 먹던 음식을 뱉어내고 나서 너무도 서글퍼서 눈물을 뚝뚝 흘렸다. 숨쉬기조차 버거웠다.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다시는 예전처럼 웃지도 못하고, 친구들과 얘기도 못하고, 외출조차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먹고, 자는 일 외에 유일하게 했던 일은 인터넷 검색 사이트에서 자살, 우울증, 편안하게 죽는 법 등을 알아보는 일이었다. 하지만 가끔 내 방문을 열어보시며 안절부절못하시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 도저히 그럴 수는 없었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는 햄릿의 고민처럼 나 역시 삶도 죽음도 선택하지 못한 채 그 사이에서 매달려있었다. 몇 달 사이에 10kg가 넘게 쪄서 몸이 퉁퉁 부어 있었다. 어느 날 거울을 봤는데, 열꽃으로 뒤집어진 피부, 부어서 작아진 눈, 무엇보다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무겁고 부정적인 내 모습을 보고 너무 놀랐다. 모든 것을 도저히 다시 돌릴 수 없을 것 같아 숨죽여 울었다. 스스로가 괴물처럼 느껴졌다. 마치 끝이 없는 블랙홀 속에 갇혀 영영 나오지 못할 것만 같았고, 그 누구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1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우울증을 앓는 동안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세상에서 나만 이렇게 바보처럼 살고 있다는 생각이었다. 실로 내 눈에는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너무도 잘 살고 있어 보였다. SNS나 블로그에 올려진 행복하게 웃는 얼굴의 사진들과 좋은 소식들이 가득했다. 인터넷이나 기사에서는 사회에서 최연소로 어떤 성공을 이룬 사람들의 환하고 행복한 모습이 보였고, 스포츠 스타의 기록도 날로 높아져가며, 다들 자신의 길에서 무엇인가 성취하고 나아가고 있었다. 반면에 나만 뒤처지고,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것 같은 열등감과 불안감은 나를 더 작게 만들었다.


어느 팝송의 가사처럼, 나에겐 세상의 끝이 온 것 같은데, 아무렇지 않게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이 야속했고, 내가 없어도 너무나도 잘 돌아가는 세상이 끔찍하게 무서웠다. 빛 한 줄기 들지 않는 검은 구름 속에 영영 갇혀 살 것만 같은 막막함에 숨을 쉴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