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시작 : 다시, 빛으로

by 달리아

우울증 치료를 위해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병원에서 타 온 약을 먹으면 더 잠이 왔고, 흔히 우울증에 도움이 된다고 하는 '햇빛을 보며 걷는 것' 등은 시도조차 할 수 없었다. 어느 날은 공황발작이 일어난 뒤, 몇 시간 동안 의식을 잃은 적이 있었는데, 부모님이 내 이름을 부르짖는 소리를 듣고서야 정신을 차렸다. 나를 보며 다리를 뻗고 통곡을 하고 있는 부모님을 보고서, 나는 죽더라도 다른 곳에 가서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길을 나섰다. 무작정 기차와 버스를 타고 흐르는 데로 다니다가, 처음 보는 여자분의 집에 가게 되었다.


내가 찾아갔던 지인분께 내가 우울증으로 힘들어한다는 것을 듣고서, 그녀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내게 자신의 집에 지내라고 했다. 그녀는 초등학생 아이와 함께 사는 싱글맘이었다. 무작정 따라왔던 낯선 곳에서 밥을 얻어 먹으며 며칠이 지났는지도 모르게 지내던 어느 날 밤, 거실에 나갔다가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차를 마시러 나왔다고, 내게도 한 잔 마시겠냐고 했다. 물이 끓고, 건네받은 허브차를 마시는데, 그녀가 담담하게 자신의 얘기를 꺼냈다.


결혼과 가정폭력, 이혼을 하고서도 찾아올까 봐 무서워서 호신용 무기를 놓지 못하는 큰 공포, 그에서 벗어나기 위해 받은 상담과 나아지고 있는 일상... 그녀는 자신의 고통과 치유의 여정을 담담하게 풀어놓았다. 그런 그녀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으며 내 안에 가득했던 어둠 사이로 빛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나를 제외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나만 이렇게 힘든 것이 아니었구나.'

라는 자각은 내게 큰 위로로 다가왔던 것이다. 그전까지 나를 도우려고 했던 사람들은 우울증 전의 나의 모습이나 어떤 정상의 기준을 가지고 나의 상태를 병이나 이상 증상 등으로 보는 느낌이었지만 그녀에게는 그러한 판단이나 기대가 없었다. 그저 자신의 고통을 솔직하게 풀어놓았을 뿐이었는데, 내 안의 바위처럼 딱딱했던 고통이 건드려지고 헤쳐진 틈으로 다시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아픔이나 고통이나 상처가 없는 사람이 누군가를 치료하고 낫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아픔과 아픔이 안고,

상처와 상처가 만나고,

외로움이 외로움을 달래고,

고통과 고통이 서로를 쓰다듬는 자리에서

치유가 일어남을 체험했다.

Photo by Elia Pellegrini on Unsplash

그렇게 고통의 연대에서 생긴 힘은 누워만 있던 나를 다시 일어나게 만들었다. 그러고 나서 다시 돌아보니, 나와 비슷한 증상을 겪는 이들이 너무도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면서 나는 우울증이 나 개인만의 잘못과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우리 모두가 사실은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한다는 것을 느끼며, 그 방법을 너무도 찾고 싶었다.


‘그렇다면 세상에 정말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 있을까?’


지금까지 내가 살던 좁은 세계에서 만나보지도 상상하지도 못한 존재가 어딘가에서 나를 기다리고만 있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다시, 길을 나섰다.




착해지지 않아도 돼.

무릎으로 기어 다니지 않아도 돼.

사막 건너 백 마일. 후회 따윈 없어.

몸속에 사는 부드러운 동물들.

사랑하는 것을 그냥 사랑하게 내버려 두면 돼.

절망을 말해보렴. 너의. 그럼 나의 절망을 말할 테니.

그러면 세계는 굴러가는 거야.

그러면 태양과 비의 맑은 자갈들은

풍경을 가로질러 움직이는 거야.

대초원들과 싶은 숲들.

산들과 강들 너머까지.

그러면 기러기들, 맑고 푸른 공기 드높이.

다시 집으로 날아가는 거야.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너는 상상하는 대로 세계를 볼 수 있어.

기러기들. 너를 소리쳐 부르잖아. 꽥꽥거리며 달뜬 목소리로.

네가 있어야 할 곳은 이 세상 모든 것들

그 한가운데라고.


- 메리 올리버, '기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