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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아 Apr 07. 2024

밥 해주고 싶은 마음

엄마가 봄나물과 밑반찬을 한 박스 가득 보내주셨다. 풍성하고 맛있는 반찬들을 우리 가족만 먹기에 아까워 동네에 사는 이웃 언니와 아이들을 초대했다. 언니가


"엄마 반찬 부럽다."


고 하길래 얘기를 나누다 보니 언니 어머님께서 몇 년 전 돌아가셨다는 걸 알게 되었다.


먹먹한 가슴으로 바지락냉이된장국을 끓이고, 머위를 데쳐 밥을 차려먹었다. 밥을 먹고서는 장조림과 계란두부부침 등 밑반찬들을 나눠 담아 언니의 가슴에 안겨주었다. 반찬에 담긴 사랑과 정성이 언니의 허전한 가슴과 그리움을 채워주길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대학생 때 나의 자취방은 '서초동 하숙집'이라 불렸다. 그때부터 나는 음식들을 해서 고시원에 살거나 자취하는 친구들에게 나눠주는 게 기뻤다. 그 뒤에 집에 다녀간 지인들로부터 '친정집', '외가댁'에 온 것 같다거나, 요즘에 잘 쓰지 않는 '인정이 많다.'는 얘기도 듣게 되었다. 그것은 내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들을 아낌없이 이웃에 나누시는 부모님의 삶이 자연스레 내게 베인 덕인 것 같다.


나는 어릴 때, 천식이 무척 심해 숨이 자주 넘어가 응급실에 자주 다녔다. 숨이 목까지 차올라 삶과 죽음을 오가는 기분을, 홀로 뛰지 못하고 덩그러니 구경하는 남는 외로움을, 몸의 고통에서 전해지는 두려움을 너무 일찍 알게 되었다. 동시에 이리저리 뛰어다니시며, 전국에 좋다는 약들을 찾아 먹이셨던 부모님과 치료에 도움을 주셨던 많은 분들을 통해 알게 되었다. 사랑이 나를 살렸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어릴 때부터 아프고 힘든 사람들을 보면 잘 지나치지 못했다. 길가의 굶주린 동물들을 집으로 데리고 와서 먹이고, 슬프고 외로운 존재들을 보면 안아주고 싶었다. 주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게 좋았고, 사람들을 웃게 하는 게 좋았다.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말과 행동으로 마음이 이어지는 순간들을 사랑했다. 슈바이처나 마더테레사, 설리번 선생님처럼 사랑으로 헌신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치열한 입시 교육 이후 대학생이 되어 혼란과 방황과 우울증 등으로 점철되었던 20대 초에 처음으로 참여했던 명상에서 안내자 선생님께서 그런 내 얘기를 들으시고서는,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고,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고 싶은 그 마음이 보살의 마음이다.'


라고 하셨던 기억이 난다.


거의 20여 년이 지난 지금 떠올리다 보니 '보살은 보살피는 사람'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다른 존재들을 안기 위해 벌렸던 두 팔은 내 안의 고통과 상처까지 감싸주었고, 가슴이 열리는 만큼 나는 더 행복해졌다. 남을 사랑하는 마음은 결국 나를 사랑하는 마음과 둘이 아니기에, 누군가를 사랑할수록 내 가슴은 마치 여러 강줄기들을 받아들이는 바다처럼 커져가고 있음을 느낀다.


사랑으로 가는 이 길은 사랑이 목적지인 동시에 길 그 자체이기도 하다. 나는 누군가에게 밥 해주고 싶은 바로 이 마음으로, 남은 생을 살아가고 싶다. 

최승자 시인의 '무한을 향해 스스로 열리는 꽃봉오리'라는 표현처럼, 무한한 사랑 속에서 끊임없이 피어나는 존재가 되고 싶다.


'세상에 모든 눈물이, 절규가, 아픔이, 고통이 사라지는 날까지... 한 존재도 포기하지 않고,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오래오래 해왔던 매일의 기도가 봄밤의 매화향처럼 그윽하게 깊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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