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우울증이 시작된 것은 교대 4학년에 재학 중이었을 때였습니다. 당시 입학과 동시에 진로가 정해진 교대의 시스템이 답답했고, 다른 길을 찾아보고자 대만으로 교환학생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덥고 습한 낯선 땅에서, 고등학교 동창의 자살 소식을 듣고서는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20대 때 죽을 수 있다는 건, 상상을 못 했던 일이었고, 어차피 죽을 건데 무언가를 배워서 뭐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마 기간의 지하실 곰팡이처럼 마음에서 번져가던 우울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습니다. 언어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힘든 마음을 터놓을 상대도 없었습니다. 높은 건물에서 뛰어내리거나 달리는 차에 뛰어들고 싶은 자살 충동이 들고나서야 저는 전화기를 붙잡고서 엄마와 교수님께 살려달라고 했습니다. 교환학생을 끝마치지 못한 채 한국에 돌아온 저는 9개월 동안 말을 하지 않고 부모님 댁에 틀어박혀 지냈습니다. 다시는 그전처럼 살 수 없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모든 것이 끝이었다고 생각하며 절망의 바닥에 잠겨 있던 저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저를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제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며 손을 잡아준 사람들, 저만 이렇게 아픈 것이 아니라며 마음을 연결해 준 사람들 덕분에 저는 삶을 계속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고통의 연대 속에서 저는 다시 살아갈 힘을 얻어 일상을 회복해 가다 <달라이라마의 행복론>이라는 책을 읽고 히말라야로 가게 되었습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달라이라마가 “당신은 행복합니까?”라는 질문에 확신을 가지고 그렇다고 대답하는 대목이 놀라웠기 때문입니다. 그전까지 살아오며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을 만난 적이 없기에 더 궁금했습니다. 저는 무엇보다 행복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떠난 곳에서 저는 티베트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낯선 이에게도 따스한 미소와 친절을 보여주는 이들이었습니다. 몇몇 티베트인들과 친해져서, 그전에 제가 우울증을 앓았다고 하니, 그들은 제게 ‘우울증이 뭐냐?’고 반문했습니다. 티베트말에는 ‘자책이나 죄책감’이라는 단어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어릴 때부터 세상의 모든 존재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배우며, 모든 존재가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하기를 기도한다고 합니다.
늘 남들보다 잘하고, 경쟁에서 이겨야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었던 환경에서 자라왔던 저는 처음에는 그것이 충격적으로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그전까지 세상에 홀로 있는 것만 같은 단절감으로 고통받던 저는 다른 존재들과 내가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보고 느낄수록, 그리고 나와 모든 존재가 행복하기를 바랄수록 행복해진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한국에 돌아와 교사가 된 저는 교실에서 예전의 저와 비슷한 증세의 아이들을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계속되는 시험과 비교, 경쟁 속에서 아이들은 불안했고, 우울했습니다. 그렇게 아픈 아이들 뒤에는 아픈 부모가, 아픈 부모 뒤에는 아픈 세상이 있었습니다. 열정을 가지고 아이들을 가르치시던 선생님들도 각종 민원과 업무들로 나날이 몸과 마음이 지쳐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 고통의 덩어리가 너무나 크게 느껴져서 숨이 막혀왔고, 다시 우울해졌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제가 가르치던 5학년 아이가
‘선생님, 죽고 싶어요.’
라는 말을 했습니다. 저는 무언가가 단단히 잘못되었다고 느꼈습니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이토록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데, 이처럼 불행한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저는 진정으로 행복하고 싶었고, 제가 만나는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많은 고민 끝에 저는 교사를 그만두고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이 세상을 학교 삼아, 그전까지 다녔던 학교에서 배우거나 가르치지 못했던 행복에 대해, 삶의 이유에 대해 찾고 배우고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떠난 길에서 저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책으로만 알았던 달라이라마, 틱낫한, 제인 구달, 베르나르 베르베르, 이해인 수녀님 등 많은 작가분들을 직접 만나 강의를 듣거나 질문을 하기도 했고, 히말라야에서 자기 돌봄과 마음 챙김을 배우고, 다른 나라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마더테레사하우스에서의 봉사활동을 통해 사랑을 배우고, 호스피스와 난치병 아이들과의 시간을 통해 죽음 앞에서 더 빛나는 삶을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제가 지구별 학교에서 배운 것들을 나누게 되면서 저는 우리 모두가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며 깊이 연결되었을 때 진정으로 행복해진다는 것을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랑이 바탕이 되어야 할 교실은 점점 불안이 가득한 곳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며칠 전 일어난 끔찍한 사건 앞에서 교사와 학부모와 교육 관계자들은 서로를 탓하고 비난하기도 합니다. 교사나 교육 현장에 대한 불신으로 더 많은 감시와 통제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보았습니다.
그렇게 서로를 손가락질하고 옭아매기에 전에, 우리는 학교가 어쩌다 이런 비극의 현장이 되었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학교는 세상의 축소판'이라는 것을 잊지 말고,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봐야 합니다. 부모가 아이를 죽이고, 자녀가 부모를 죽이며, 묻지마 살인 사건이 매일같이 일어나는 세상을 만든 것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봐야 합니다.
어릴 때부터 시작되는 입시 교육과 그 뒤로도 평생 끊임없이 이어지는 비교와 경쟁, 갈수록 커지는 빈부격차, 편을 나누며 서로를 공격하는 혐오 정치가 우리를 얼마나 불안하게 하고, 우리의 마음을 얼마나 망가뜨리고 있는지 이야기를 나누어야 합니다. 승자독식 시스템 속에서, 나만 잘하고 잘 살면 된다는 이기주의가 이 세상을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위해 밤늦도록 일을 하며, 아이들을 저녁까지 학교나 학원에 맡겨야 하는지, 우리가 전력을 다해 향하고 있는 곳에 행복이 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고통의 뿌리를 점검하지 않는다면 비극이 계속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늘로 간 하늘이의 죽음을 깊이 애도합니다. 여덟 살 작은 아이가 얼마나 놀랐을지, 얼마나 아팠을지를 생각하면 온몸이 떨리고, 가슴이 미어집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작고 어리고 순수한 아이들을 보호하고, 지키기 위해서는 어른들과 이 세상이 변해야 합니다. 단절되어 있는 마음을 연결하고, 깨어진 신뢰를 회복하며 모두가 함께 책임감을 가지고 아이들을 안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하고 싶어 한다는 진실을 바탕으로 찢어진 그물을 다시 엮는 마음으로, 서로에게 손을 내밀고, 손을 잡아야 합니다.
“진정으로 나, 그리고 우리가 이 마을을 사랑해야 함을 알고 있다면 정말로 아직은 늦지 않았습니다. 우리를 갈라놓는 비열한 힘으로부터 이 마을을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꼭
- 이케다 가요코 구성, C. 더글러스 루이즈 영역, 한성혜 옮김, 《세계가 100명의 마을이라면》(국일미디어, 2002)
#우울증교사 #하늘이 #하늘이학교 #하늘이법 #학교우울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