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높이 날아 별을 안고 싶어'

by 달리아

20대의 한 때 히피처럼 살았던 때가 있었다. 진정한 평화와 사랑을 노래하고 꿈꾸며 세상을 누비던 때가 있었다. 언제든 바람이 부는 곳을 따라 떠날 수 있는 것이 자유라고 느꼈던 때가 있었다. 엄마의 표현으로 옷 같지도 않은 비단천을 온몸에 두르고, 알라딘이 신을 법한 끝이 말려 올라간 신발을 신고 다녀 '인도 점성술사'라 불리던 때가 있었다. 돈과 자본과 현실의 중력에서 벗어나 마법 양탄자를 타고 하늘을 훨훨 날아다니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히말라야의 오지에서 맑고 순수한 얼굴을 한 사람들과 가족처럼 지내기도 하고, 평화공동체 등을 찾아다니며 그곳에서 만난 이들과 비틀즈의 'Imagine'을 목청껏 부르던 때가 있었다. 그렇게 꿈과 환상의 세계에서 머물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히말라야의 한 명상 센터에서 20여 년이 넘게 세상을 떠돌며 명상 수행 등을 하며 살아간다는 미국 국적의 여자분을 만났다. 하지만 그분은 어딘가 늘 예민했고, 짜증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며칠 뒤 둘이 함께 차를 마실 때, 그녀는 내게 함께 그곳에서 머물던 다른 사람들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고, 명상 스승이 자신을 얼마나 아끼는지에 대한 이야기 등을 늘어놓았다. 그다음 날 그녀는 명상 수업이 있는 홀에서 스승이 더 잘 보이는 앞자리에 앉고자 자리를 맡아두었고,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 방석이 옮겨져 있자 주변 사람들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선, 나는 혼란스러웠다. 20년이 넘도록 자유인으로 살아왔다고 얘기하는 이가 보여주는 말과 행동이 실망스러웠다. 그것은 내가 원하는 미래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이 그녀의 많은 부분 중 아주 작은 단면 일수도 있고,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는 이들 중에 평화롭고도 조화롭게 잘 지내는 사람들도 만나본 적이 있지만, 나의 혼란은 사라지지 않았다. 내 안의 깊은 곳에서, 내가 무언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신호음이 마치 경보음처럼 울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길로 나는 또 다른 평화공동체를 방문하는 대신, 내가 살던 곳으로 돌아왔다. 몇 달 만에 발을 디딘 서울은 여전히 복잡했고, 모든 것이 빠르게 흐르고 있었다. 나는 마치 우주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우주인처럼 구부러지는 무릎과 휘청거리는 다리를 잡고선 땅 위에 발을 디디고자 애썼다.


서울에서 며칠이 지나고, 도무지 적응이 잘 안 되고 나를 둘러싼 모든 소리나 공간들이 낯설게 느껴졌다. 나는 기차에 몸을 싣고 밀양으로 귀농을 하신 부모님 댁으로 찾아갔다. 밀양(密陽)은 한자어의 뜻처럼 '태양빛이 빽빽한 곳'이었다. 나는 산과 계곡으로 둘러싸인 부모님 집에 들고나서야, 여러 자극 들고 곤두섰던 몸과 마음이 가라앉는 느낌을 받았다. 며칠 동안 익숙하고 그리웠던 엄마의 밥상을 먹고, 언제든 졸릴 때 잠도 자며 지내다 보니 오랜 외지생활에서 쌓였던 피로가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어떤 날엔, 집 안까지 햇빛이 눈부시게 차오르는 시간즈음 느지막이 일어났는데, 엄마가 안 보여서 마당으로 나갔다. 엄마는 마당에 빨래를 너시고선, 한쪽 옆구리에 빈 빨래바구니를 들고 들어오시는 길이었다. 엄마는 부스스한 머리로 선 나를 보시고선,

이제는 온 마음으로 빨래를 해서 너는 것이 수행이라는 것이 보이냐?


고 고승 던질 법한 질문을 내게 던지셨다. 그 질문들은 그동안 내가 놓치고 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귓가에선 언젠가 들었던 조용필의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라는 노래의 가사가 울려퍼지는 것 같았다.

많은 것을 찾아서 멀리만 떠났지
난 어디 서 있었는지
하늘 높이 날아서 별을 안고 싶어
소중한 건 모두 잊고 산 건 아니었나


그 뒤로 내 삶에서는 여러 변화가 있었다. 나는 내가 멀리 하고 싶었던 현실을, 일상을 살아내는 것의 의미에 대해 찾기 시작했고, 내가 어디에 있던 걸림없이 자유롭고, 행복해지는 삶을 살아가고 싶었다. 그 뒤로 1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는동안, 나는 내가 그토록 떠나고 싶었던 서울의 한 가운데에서 매일을 살아가고 있다. 그 사이 결혼도 하고, 두 아이들을 낳아 기르고, 돈도 벌고, 밥하고, 빨래하는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면서 내가 먼 곳을 바라보며 잊고 있던 가까운 곳의 소중한 것들을 안아가고 있다.




최근에 나는 가끔씩 호흡이 가빠지고, 습관처럼 어딘가 떠나고 싶은 날에는 집근처에 있는 미술관으로 간다. 미술관의 문을 여는 순간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 천장이 높은 여유 있는 공간에 들어서면 마치 오래된 성당이나 교회에 온 듯한 느낌이 든다. 그 안에 전시된 예술작품들을 찬찬히 바라보며 숨을 고른다.


이번 전시에는 켜켜이 쌓인 한지가 작품마다 무늬를 만들고, 차곡차곡 놓인 나무와 금속은 나무처럼 하늘로 뻗어있다. 내 삶의 무늬를, 내가 서 있는 모습을 비춰본다. 내 삶의 모든 경험들은 씨실과 날실처럼 엮이고 쌓여 나라는 사람을, 나만의 삶을 만들어간다.

예전에는 일상을 떠난 먼 곳에서야 나를 바라볼 수 있었지만, 이제는 도시 한가운데에서 나만의 속도와 중심과 리듬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하다. 또한 성속의 경계가 허물어진 자리, 어디서든 맑고 고요한 숨이 이어가고자 한다. 남은 생은 매일 눈과 귀와 몸과 마음을 말갛게 씻고 세상을 보고 듣고 느끼며 일상을 여행하듯, 순례하듯 살아가고 싶다.


미술관을 나서는 길, 내가 두 발을 디딘 이 땅에 더 깊이 뿌리내리며 하늘의 뜻과 사랑을 전하는 삶이기를 기도하며, 다시 일상으로 난 문을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