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간 함께 지냈던 풍순이가 죽었다. 지난가을, 아이들이 곤충체험관에서 만난 애벌레는 번데기에서 장수풍뎅이가 되었고, 그 사이 겨울이 되어 숲 속에 풀어줄 수 없어 이름을 짓고 함께 지냈던 아이였다. 첫째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풍순이의 펼쳐진 날개를 모아주었고, 마지막 인사를 하고 나더니 갑자기 통곡을 하였다.
좋아하던 곤충 젤리를 먹고 떠난 풍순이
“내 친구 풍순이. 하늘나라 가지 마. 계속 같이 살아.”
온몸으로 엉엉 우는 아이를 품에 안고 달래며, 풍순이를 통해 알게 된 놀라고 신기로운 발견들과 함께했던 감사하고 행복했던 순간들에 대해 나누었다. 마침, 퇴근을 한 신랑이 바통을 이어 아이를 꼭 안고서는 이별은 본래 매우 슬프고 힘든 일이라고 함께 공감하며, 슬픔에 들썩거리는 아이의 몸을 충분히 쓰다듬어주고 달래주었다.
그러더니, 자신이 어릴 때 키운 바다 거북이를 바다에 풀어줄 때는 슬펐지만, 거북이가 더 자유롭고 좋은 곳에서 잘 살 것을 생각하면 기쁘듯이, 풍순이가 하늘나라로 가서 더 잘 지낼 것을 상상해보라고 얘기했다. 그런 신랑의 이야기를 들으며, 풍순이와 아이를 위해 조용히 기도하는 마음을 전하는 나의 목과 가슴에서도 울음들이 흘러나왔다. 갑작스러운 이별과 충격에 얼어붙었던 몸, 허용되지 않아 삼켰던 감정들과 그렇게 내뱉지 못해 얼음처럼 차갑게 굳어버린 울음들이 다정한 위로의 손길과 온몸과 마음으로 안아주는 뜨거운 사랑 안에서 서서히 녹아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야기를 듣는 도중, 몇 번을 다시 울음을 터트리며 풍순이를 부르던 아이는 거침없이 울고, 또 슬퍼하는 애도의 시간 속에 있다가, 어느새 울음을 그치고, 자신을 안고 있던 아빠를 꼭 안아주며
“아빠, 사랑해.”
라고 말하며, 아빠 품에서 나와 섰다.
“엄마, 아빠도 너를 정말 사랑해. 우리 사랑하며 살자.”
나는 무릎을 낮춰 아이를 한 번 더 꼭 안아주고, 아이가 먹고 싶다던 어묵탕을 끓여 저녁을 차렸다.
“따뜻한 국물을 마시니 기분이 좋아졌어.”
다소 무거워진 분위기를 전환시키는 둘째의 말에 다시 웃으며, 실컷 울고 난 뒤 말개진 첫째의 얼굴을 바라보며 가슴에서 어떤 말들이 노래처럼 흘러나왔다.
“아이야, 남김없이 울고, 마음껏 슬퍼하렴.
모든 것이 텅 빌 때까지 비우고, 또 흘려보내렴.
두려움이 너를 삼키지 않도록,
죄책감이 너를 가두지 않도록,
슬픔이 너를 가라앉게 하지 않도록,
그래서 네 안에 어떤 응어리도 남지 않도록, 마음껏, 마음껏 울고, 또 슬퍼하렴.”
아이에게도, 내 안의 아이에게도 전하는 말들이 겨울 동안 차갑게 얼어있던 땅들을 어루만지는 따스한 봄비처럼 내렸다.
아이들을 재우고 잠든 아이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메리 올리버 시인의 ‘블랙워터 숲에서’라는 시의 구절들이 떠올랐다.
‘이 세상에 살기 위해서는 세 가지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죽을 수밖에 없는 것들을 사랑하기
자신의 삶이 그것들에 의지하고 있음을 깨닫고 그것들을 가슴 깊이 끌어안기
그리고 놓아줄 때가 되면 놓아주기’
깊이 숨을 고르고, 가만히 시를 되뇌며, 나의 아이들과 신랑, 가족, 이웃, 그리고 나와 연결된 모든 살아있는 생명들의 안녕과 평안을 위해, 그리고 우리 모두가 서로를 아낌없이 사랑하며, 후회 없이 헤어질 수 있기를 기도하였다.
국내외에서 끊이지 않는 사건사고들과 코로나, 기후 위기 등으로 인해 불안과 두려움이 가득한 세상에서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는 것들을 사랑하는’ 그 마음을 어둠을 밝히는 등불처럼 지키고, 키우면서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겨울의 한가운데에서도 눈과 얼음을 녹이는 햇살이 깊이 스며드는 것 같은, 고요하고 따뜻한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