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작고, 멍청하니까

by 달리아

내가 맡은 일들이 지나치게 많아 책임감이 부담감으로 짓눌러질 때, 내 모습이나 상황에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종종 어딘가로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리고 과거에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또 다른 가능성들을 상상하게 된다. 그만큼 오늘의 현실을 살아가는 것은 결코 녹록지 않다. 특히 아이들을 낳고 기르다 보니, 나의 부모님들이 어떻게 나와 동생을 키우셨나 싶을 정도로 할 일들이 너무 많다. 게다가 항상 버팀목이 되어주셨던 부모님은 나이가 들어가시며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하시고, 코로나 시절을 살고 있는 어린 두 아이들은 번갈아가며 잔병치레를 한다. 딸로서, 엄마로서, 아내로서의 역할을 하다 보면,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사고 싶은 것은 자꾸만 뒤로 밀린다. 그러다 여러 일들이 겹치는 날에는 과부하가 걸린다. 오늘이 딱 그런 날이었다.


밤새 기침을 하던 둘째를 밤과 이어진 낮까지 계속 살피며, 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석사 논문을 뒤적이다가, 날이 좀 풀리자마자 소아과에 다녀와서, 병원 진료를 위해 서울에 오신 부모님을 뵙고, 첫째의 어린이집 상담에 다녀오고 나니, 하루에 여러 생을 사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 다시 글을 적기만 해도 숨이 차오를 정도로 많은 이동과 만남과 일들이 있었다.


다행히 아이돌봄 선생님께서 와주셔서 아이들을 맡기며 잠시 숨을 고르고, 몇 주 전부터 신랑과 시간을 맞춰가며 예약했던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댓원스'를 보러 달려갔다. 몸은 고단했지만, 예고편과 포스터 속 여주인공을 보자니, 왠지, 오늘, 꼭 이 영화를 봐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여기서부터 약간의 스포가 있습니다.)


나의 직감은 틀리지 않았다. 세금 때문에 영수증과 씨름하고, 세탁소 일들에 바쁘고, 말이 잘 안 통화고 이해가 안 되는 딸과 현실적으로 도움이 안 되는 남편과 걸음도 제대로 못 걷는 나이 든 아버지 등 여러 사람들과 역할들에 둘러싸인 여주인공은 현실 속에서의 나와 우리 모습을 비춰주었다. 하지만 이에 이어 말 그대로 여러 차원을 뛰어넘는 기상천외한 영화를 보면서, 몇 개의 장면과 대사가 말 그대로 마음에 꽂혔다. 그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대사는 돌이 된 엄마와 딸이 침묵 속에서 나눈 대화였는데, 자막에서

We're all small and stupid.(우리는 모두 작고 멍청하니까)


였다. 엄청난 과학과 기술의 발달로, 마치 인간이 못할 것은 없는 것 같지만, 세상에는 수많은 지식과 앎들과 정보가 넘쳐나지만, 사실 이 넓고 넓은 우주 안에서 우리는 그저 작고,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 같은 존재일 뿐인 것이다. 모든 것이 너무나 광대하고, 모든 것은 변하고, 우리는 언젠가 사라지기에, 우리는 불안하고, 두렵고, 혼란스러워서, 무언가를 더 가지고 싶어 하고, 영원한 것을 갈망한다. 자신의 생각과 신념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서로 싸우고, 서로를 해치고, 전쟁을 일으키기도 한다. 영화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서로 특별한 이유가 없는 데도 대립하고, 치열한 싸움을 벌이던 사람들은 어느 순간 잊고 있던 중요한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는 주인공 남편의 입에서 나온다.


내가 유일하게 아는 것은 우리 모두 다정해야 한다는 거야.
다정함을 보여줘. 특히 우리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를 때 말이다.


최근, 내가 살아가는 세상의 모습이 너무 실망스럽고, 혼란스러운 마음이었는데, 위 대사는 그럴 때일수록 다정함을 보여주라고 했다. 다정함에는 실로, 모든 갈등과 혼란과 장벽을 녹여내는 힘이 있음을 삶에서 여러 번 경험해왔기에, 순간 다정함과 인내로 나라는 존재를 채워주고 견뎌준 많은 고마운 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외국에 우리나라의 선불교를 전파하신 숭산 스님께서는 "Don't know mind"를 강조하셨다. 실로, 내가 안다고 착각하는 순간, 나는 그 틀에 갇히고, 내 주변의 세상과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 하지만 우주의 수많은 차원과 공간에서 내가 안다고 하는 것은 아주 작은 파편에 불구하고, 그마저도 진실인지 모른다. '우리는 질문하다 사라진다.'는 파블로 네루다의 시 제목처럼, 우리 모두는 사실, 무언가를 아는 것이 아니라 질문만 하다 사라지는 작디, 작은 존재임을 기억할 때, 오히려 묶인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음을 느낀다.


파도가 왜 밀려오는지, 어떤 파도가 밀려올지는 몰라도, 파도의 흐름을 타고 마치 서핑을 즐기듯 살아갈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저항이나 걸림없이 온전히 내맡기는 삶에서 오는 평안과 통해있는 것이다.




엊그제 밤, 매일 저녁 아빠와 연극놀이(상상놀이)를 하던 딸이 문득, 이런 얘기를 해서 받아 적었다. 평소에는 자신이 하고 싶은 역할을 정해서 놀이를 하는데, 그날은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나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무엇이든 될 수 있지."


라는 말을 했다. 그 말을 들으며, 순간, 아이들이 삶을 놀이하듯 즐길 수 있는 비결을 전수받은 느낌이 들었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서, 그렇다면, 언젠가는 끝날 이 삶을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할까?


주인공은 말한다.

그럼 그 한 줌의 시간을 소중히 할 거야.


아무리 많은 책들을 읽고, 아무리 많은 스승들을 만나봐도, 결국, 이 문장으로, 지금 이 순간으로 돌아온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그를 잊지 않고 그런 삶을 살아가느냐가 아닐까 싶다. 매일 기도하고, 글을 쓰는 이유도 그를 더 잘 기억하기 위함이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매일, 매 순간, 소중히 여기며, 한 번뿐인 이 생을 살고 있는 나 자신과 내 주변의 이들에게 더 다정하게 대하며, 아낌없이 사랑하며 살아가는 삶이길 오늘도 소망하고,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