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아직 마감일자가 남은 신문사를 찾아 신춘문예 공모를 했다. 오래도록 묵혀두었던 글들을 최근에서야 풀어놓기 시작했다. 10여 년 전 출판의 기회가 있었지만, 나의 삶이 아직 충분히 익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 미루었는데, 결혼을 하고 두 아이를 기르다 보니 시간이 빨리 흘렀다.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가는 의미를 찾기 위해, 꾸역꾸역 밀려드는 삶을 소화하기 위해서, 아내로, 엄마로 살아가며 빠르게 변화하는 것들 속에서 내 삶을 놓지 않기 위해 나는 글을 써왔다.
최근에는 상담대학원 석사 논문을 완성했다. 오랫동안 쓸 일이 없었던 논리적인 글을 쓰기 위해 부단한 노력이 필요했다. 작년부터 쓰고자 했던 논문을 올해 끝냈다. 입학 이후 10년 만의 졸업인 셈이었다. 코로나 팬더믹 속에서 어린이집에도 잘 가지 못하고 감기를 달고 사는 아이들을 돌보며, 갑자기 쓰러지셨던 아빠의 병원을 오가며 몇 차례 논문을 미뤘다. 때때로 숨이 벅차 왔고, 나조차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에 수시로 눈물이 났다.
며칠 전에 본심사에 통과했다는 교수님의 말씀을 들으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던 것은, 아마도, 그럼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글을 써왔던 나의 무수한 밤들이 떠올라서였을 것이다.
오늘은 어딘의 책을 읽다가 나의 상황, 그리고 심정과 너무나 닿아있는 글귀를 만났다. 주부로 살아가며 글 쓰는 작가로 살아갔던 이들의 치열하면서도 충만한 삶의 호흡이 느껴졌다. 그를 담아낸 어딘의 글도 좋았다. 어떤 때는 문장을 읽는 것만으로, 온전히 이해받고, 위로받는 느낌이 든다. 그 순간들을 위해, 나는 글을 읽고, 쓰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랫동안, 아주 오랫동안 박완서 작가는 그 이야기를 쓰고 싶었을 것이다. 밥을 하다, 아이의 머리를 땋아주다, 장을 보다, 문득문득 문장이 떠올랐을 것이다. 손으로는 국을 끓이고 빨래를 하고 아이의 숙제를 봐주고 바느질을 하지만 마음속에는 이야기가 소용돌이쳤을 것이다.
오정희 작가도 그랬다. 식구들이 모두 잠든 밤에 비로소, 쓰기 시작했다고 작가는 말한다. 낮의 일이란, 세금을 내고 이웃과 교류하고 도시락을 싸고 아이를 씻기고 남편의 셔츠를 다림질하는 것. 이 모든 일이 밤의 일을 하기 위한 과제 수행 같은 것이었을 수도 있다.
- <활활발발>, 어딘
오늘도 아이들을 재우고, 글을 쓴다. 피곤한 날엔 함께 잠이 들거나, 아무 생각도 하기 싫어 스마트폰을 붙잡고 있을 때도 있지만, 내 안의 어떤 힘이 기어코 나를 일으켜 의자에 앉게 한다. 고요한 밤, 나는 깜빡이는 별을 헤아리는 마음으로 단어들을 썼다 지웠다 한다. 마치 밤하늘을 보며 길을 찾았던 옛사람들처럼, 나는 내가 쓴 글을 통해 내가 어떤 길을 걸어왔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알게 된다. 글은 북극성처럼 내게 반짝이는 지표가 되어주기도 한다.
"엄마가 이렇게 많은 글을 썼어?"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잠이 깬 둘째가 나와서 노트북을 보며 말한다. 한참을 내 주위에 빙글빙글 돌던 아이는 노트북에 기어코 하트 스티커 하나를 붙여주고 다시 침대 위로 올라간다. 이 밤이 지나고 나면, 밥을 짓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개고, 아이들을 돌보고, 공과금을 챙기는 '낮의 일'이 펼쳐질 것이다. 그렇게 밥을 짓듯 글을 짓고, 일상에서 부지런히 몸을 쓰고, 다정하게 마음을 쓰며 글을 쓸 수 있는 삶이길 바란다.
지금 당장, '작가'라는 타이틀을 달지 않아도, 꾸준히 쓰고있는 글이 내 삶의 길이 되어줄 거라 믿는다. 언젠가, 나의 아이들이 글씨를 읽고 글의 의미를 헤아릴 수 있을 때, 엄마가 쓴 글들이 아이들에게도 밥이 되고, 별이 되고, 길이 되었으면 좋겠다.
춥고, 시린 겨울밤, 타자를 치는 두 손이 따뜻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