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꽃을 선물하고 싶은, 토요일
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읽었다.
네안데르탈인의 유골과 함께 대량의 화분들이 발굴된 적이 있었다. 이것은 당시 원시인들이 죽은 사람들에게 꽃을 바쳤다는 사실을 보여주는데, 제4기에 생존했던 유인원들에게도 '슬퍼하는 마음', '상대방을 생각하는 마음'이 있었다는 거다. 원시 시대를 살아가던 인간에게도 '마음'은 있었다.
현재 우리,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마음은 있다.
'슬퍼하는 마음', '상대방을 생각하는 마음' 그리고 '사랑하는 마음'. 그런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시간과 정성을 내주어야만 한다. 하루하루가 전쟁 같은 우리에겐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우리는 기꺼이 마음을 움직이고 나누면서 산다.
가끔 우리는 '마음이 아프다'고 말하며 가슴을 만진다. 뭉크의 그림에는 실연당한 남자가 아예 심장을 움켜쥔 채 새빨간 피를 흘린다. 하지만 그런다고 마음이 만져지나.
나는 마음이 아프면 열이 나고 머리가 아프다. 팔이며 다리며, 온몸과 손마디 끝까지 다 저리고 아프다. 그런 걸 보면 마음은 꼭 가슴에만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내 머리에도 내 눈에도 내 어깨에도 내 손등에도 내 손톱에도. 내 마음은 그렁그렁 맺혀 뜨겁게 빛나고 있다.
마음은 실체가 없다. 추상적이다. 마음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설명하기 어렵고 오해하기 쉽다. 금방 소홀해지고 때론 배신당한 채 버려진다. 내 마음을 줬던 네게서 마음은 갈기갈기 찢겨져 운다.
그래도 주고 또 주고 싶은,
자존심도 없는 게 이 죽일 놈의 마음.
마음은 가장 인간적인 얼굴과 아이 같은 순수함, 그리고 몇 만년이 흘러도 늙지 않는 나이를 가졌다. 그런 마음에는 뭔가 설명할 수 없는 묘한 힘이 있다. 그래서 일까. 내 마음이 원하는 대로 향하는 건, 남들이 뭐래도 나에게는 언제나 옳다.
나는 네게 작고 향기로운 꽃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너를 사랑하는 나의 마음이다. 비록 이 마음이 보이지 않더라도 알아만 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