짠맛이 나를 키웠다
나는 할머니의 바다로부터 태어났다
할머니는 해녀였다. 해가 떠오르면 찬 바다로 들어갔다. 파도가 잔잔한 날에는 멀고 깊은 바다까지 배를 타고 나갔다. 파도가 세찬 날에는 바위 가까이에 붙어서 물질을 했다. 그런 날에는 어린 나의 엄마도 할머니를 따라나섰다.
할머니가 물질하는 동안에 엄마는 테왁을 끌어안고 바다 위에 둥둥 떠 있었다. 엄마는 할머니가 들어간 물속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짙고 깊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나, 둘, 셋, 넷,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었다. 어린 엄마가 셀 수 있는 숫자가 다 지나가고도 바다는 조용했다. 파도만 처얼썩 치고 사방이 고요했다. 처얼썩 처얼썩. 파도가 자꾸만 가슴을 때리는 바람에 울 것 같은 마음이 되었을 때, 엄마는 눈을 감고 처음부터 다시 숫자를 세었다. 하 나, 둘, 셋, 넷….
호오이 호오이
할머니의 숨비 소리가 들려왔다. 할머니는 참은 숨을 가늘게 뱉으며 망사리를 끌어올렸다. “엄마가 잘도 잡아 왔재.” 찡그리며 웃었다. 그렇게 할머니가 잡아 온 것들은 가족들의 일용할 양식이자 쌀이자 돈이자 옷이자 연탄이 되었다. 할머니가 예순다섯 살까지 바다에 들어가던 모든 날, 엄마는 파도가 가슴을 때리는 것 같은 마음으로 할머니의 숨비 소리를 기다렸다.
호오이 호오이
할머니의 숨비 소리가 꿈에서도 들린 날이 있었다. 엄마는 언덕배기에 서 있었다. 엄마! 엄마는 손을 흔들며 큰 소리로 할머니를 불렀다. 그런데 그날따라 할머니는 밖으로 나올 생각도 없이 테왁을 부둥켜안고 둥둥 떠 있기만 하더란다.
“엄마, 뭐 해?” 할머니는 엄마를 올려다보며 히, 하고 개구쟁이처럼 웃기만 했다. 가만 보니 할머니가 껴안고 있는 건 테왁이 아니라 도람통만 한 커다란 돌덩이 같은 거였다. “단대이 받아라.” 할머니는 그 커다란 걸 엄마에게 던져주었고 엄마는 한 품에 안아 들었다. 묵직하고 따뜻했다. 양팔에 가득 안길 정도로 커다란 전복이었다. 윤기가 차르르 흐르고 오색 빛이 반짝반짝했다. 엄마는 전복을 꽈악 껴안았다. “전복이 얼마나 예쁜지. 엄마는 단번에 알았잖니. 이게 내 딸이구나 하고.”
나는 할머니의 바다로부터 태어났다.
깊고 푸른 바다를 들여다본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물아래를 상상하다가 손가락으로 바닷물을 찍어 맛본다. 짜다. 아마도 내가 생애 처음 배운 맛은 짠맛이었을 것이다. 미역과 톳과 오징어와 고등어를 먹으며 나는 자랐다. 짠맛과 비린내와 할머니와 엄마의 살냄새가 배어 있는 음식을 먹으며 나는 피가 돌고, 살이 찌고, 키가 쑥쑥 컸다.
할머니가 폭 삶아 목걸이처럼 꿰어준 전복치발기를 질겅질겅 씹으며 쌀알 같은 이가 돋아난 나. 엄마가 새벽 어판장서 가져온 생선들을 뼈째 고아 만든 어죽을 넙죽넙죽 잘도 받아먹던 나. 생선 손질하는 두 사람 옆에 쪼그려 앉아 톡톡 부레를 터트리며 놀던 나. 생선 굽는 날이면 눈알이 사람 눈에 좋다면서 죄다 내 밥그릇에 올려주던 할머니와 그걸 꿀떡 꿀떡 넘기던 나. 가자미식해 오징어젓갈 꽁치젓갈 오독오독 씹어 먹고, 성게 멍게 전복 초장에 폭폭 잘도 찍어 먹던 나. 고등어를 하두 좋아해서 내 이름 고수리보다 고등어를 노래처럼 불렀던, 어린 나.
나는 기억하지 못하는 나의 모든 시간에 할머니와 엄마가 지어준 밥이 있었다는 걸, 나도 엄마가 되고서야 깨달았다. 내 새끼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은 따뜻하고 좋은 것들이었으면 하는 마음, 맛있는 거 있으면 한입이라도 더 떼어주고 싶은 마음, 조그만 입으로 밥 들어갈 때마다 배부른 마음이 사랑이었다. 사는 일일랑 언제나 뻑적지근하고 어두컴컴했지만 매일 동그랗게 둘러앉은 작은 상에서 우리는 짭짜름한 바다 것들을 먹으며 웃고 울고 떠들고 힘을 냈다.
내가 스물일곱 되던 해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오래 아프시다가 아이처럼 작아지고 가벼워진 몸으로 떠났다. 그 자그마한 몸에서 나온 자식들이 손주들까지 합쳐 스물이 넘었다. 할머니가 떠난 4월, 바다에는 부슬비가 내렸다. 부슬비를 맞으며 할머니를 보내러 가던 길에 나는 참다가 끝내 조금 울었다. 눈물인지 빗물인지 모를 것이 입속으로 흘러들었다. 입안이 서글프게 짰다.
내가 서른둘 되던 해 엄마는 할머니가 되었다. 팔뚝보다도 작은 아기를 둘이나 안고서 집으로 돌아왔던 2월. 작고 작은 두 삶의 무게가 어찌나 무거운지 가슴이 내려앉던 날, 영문도 모른 채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들을 보면서 나도 어쩔 줄 몰라 엉엉 같이 울었다. 전화기 너머로 엄마는 말했다. “그렇게 엄마가 되는 거란다. 강해져야 한다, 내 새끼.” 아기들도 울고 나도 울고 엄마도 울고. 입안이 얼얼하게 짰다.
짠맛이 나를 키웠다. 눈물이 많은 할머니와 엄마를 닮아서 나는 잘도 운다. 우는 일은 지는 일, 약한 일, 나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도 엄마가 되어 보니 우는 일은 강해지는 일, 살아내는 일, 그렇게 엄마가 되는 일이었다.
호오이 호오이
할머니와 엄마와 나에게 눈물은 숨비 소리 같은 것. 눈물이 차오를 때마다 파도에 씻어내고 어두컴컴한 바다로 들어가던 할머니와 눈물이 차오를 때마다 밤바다에서 몰래 울고 돌아와 우리 남매를 홀로 키운 엄마를 기억하며. 두 사람이 나에게 지어준 사랑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