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오이 호오이

동그랗고 따스한 이름

by 고수리
바다에서 나고 자랐다. 글 쓰는 나를 만든 몇 가지를 알고 있다. 엄마와 바다와 밤과 눈. 이 책은 엄마와 바다에 관한 이야기다.


이 문장은 제가 쓴 이 책의 작가 소개인데요. 바다에서 나고 자란 어린 시절의 기억은, 글 쓰는 제 삶에 아주 커다란 영향을 미쳤습니다. 바다를 떠나 도시에 살고 있는 지금도 저는, 비 오는 날 자동차가 지나가는 아스팔트 소리에서, 푸른 날 뭉게구름이 드리운 하늘에서, 바닷소리를 듣고 바다의 얼굴을 발견하곤 하거든요.


깊고 푸른 바다에서 할머니가 건져 올린 몰캉한 것들, 엄마가 지어준 짭쪼롬한 것들을 먹으며 저는 피가 돌고, 살이 찌고, 키가 쑥쑥 컸습니다. 무사히 잘 자라 작가가 되었지요. 그래서 늘 생각했습니다. 엄마와 바다에 관한 이야기를, 언젠가는 꼭 한 번 써보고 싶다고요. 하지만 어떻게 써야 할지 막연해서 막막하기만 했어요. 할머니와 엄마의 이야기는 너무나 깊고 넓어서,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알 수 없었거든요. 그런데 정말이지 신기한 건, 제가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을 때, 그때야 비로소 엄마들의 이야기가 살아나더라고요.


할머니와 엄마와 나. ㅡ 그러니까 엄마의 엄마와, 엄마, 그리고 엄마가 된 나. 삼대에 걸친 세 명의 엄마들에 관한 이야기를 책 한 권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 어찌나 뿌듯하고 뭉클하고, 기쁘던지요. 이 작은 책은 저에게 바다만큼 큽니다.


특히나 이 책을 여는 프롤로그, ‘짠맛이 나를 키웠다’는 <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바다처럼 짰다>라는 제목을 만들어준 글이기도 합니다. 나는 미처 알지 못했고, 기억조차 하지 못했던, 그러나 먼 옛날 바다로부터 이어져 왔던, 가장 강렬했던 엄마들의 기억을 모아 쓴 글입니다.


우리집 모녀 삼대의 기억들을 이어준 것은 다름 아닌 음식이었습니다. 한 집안의 맛이라는 것이, 얼마나 고유하고 중요한지 실감했지요. 책을 쓰면서 엄마와 아주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엄마. 할머니가 물질할 때 엄마 기분은 어땠어? 할머니랑 자주 해 먹었던 음식 기억 나? 엄마는 할머니한테 집밥 지어준 적 있어? 엄마, 우리한테 제일 많이 해준 음식은 뭐였지?


이제 할머니가 된 엄마는 꼬꼬마였던 어린 시절로 돌아갔다가, 똑단발의 야무진 중학생이었다가, 타지에서 외로웠던 새댁이었다가, 홀로 두 아이를 키운 씩씩한 엄마가 되었다가, 쌍둥이 손자들의 할머니가 되어 제가 처음 듣는 귀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었습니다. 엄마의 입에서 조곤조곤 흘러나오는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반짝였는지요. 제가 묻지 않았다면, 영영 몰랐을 이야기였으니까요.


톨톨, 챨챨챨챨, 치글치글, 숭덩숭덩. 엄마의 맛깔스러운 표현들과 살아있는 입말들은 녹취해두었다가 잘 다듬어 책 속에 함께 실었습니다. 예를 들면 '엄마가 쥐여준 보따리를 먹기만 할 때는 몰랐지' 글에서 나오는 이런 말처럼요.


“딸, 잘 들어라. 잘 들으래도 너는 듣지 않겠지만. 인생이 그렇다. 부모가 중요하다고 여러 번 일러줄 때는 귀찮고 부아가 나서 잔소리라고만 여겼던 것이, 시간이 지날수록 새록새록 중요하게 느껴지고 중요하게 나타난단다. 그걸 깨닫고 배우고 싶어서 달려가면 부모는 없어. 그 맛도 이미 없고. 그게 얼마나 허망한 마음인지 아니. 나중에 후회하지 않으려면 부모가 중요하다 하는 것들에 대해 조금은, 아니 조금만 너그럽게 돌아봤으면 좋겠어. 엄마가 살아 있을 때 말이야.” - 고수리 <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바다처럼 짰다>


엄마는 글을 쓰지 않으니까요. 엄마의 말을 제가 대신 글로 옮겨 쓰고 싶었습니다. 이 책을 쓰는 동안 여느 때보다 엄마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더 가까워졌던 거 같아요.


호오이 호오이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호오이 호오이’ 숨비 소리가 내내 맴돈다는 독자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호오이 호오이. 이 소리도 엄마가 전해준 입말이에요. 할머니는 바다에서 물질할 때 ‘호오이 호오이’ 숨을 쉬었단다. 그 소리가 어찌나 울컥하고 마음이 놓이는지. 엄마도 따라 부르곤 했어. 호오이 호오이.


평생을 바다에서 살아온 할머니와 엄마가 그랬듯이,

동그랗게 입을 오므리고 호오이 호오이 발음하고 있자면,


엄마!


엄마를 불러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집니다.

정말이지 동그랗고 따스한 이름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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